김동연. 그는 이명박 정부 당시 기획재정부 2차관, 박근혜 정부 초대 국무조정실장(장관급), 문재인 정부 초대 경제부총리 겸 기획재정부 장관 등 정무직 공무원을 세 번이나 지내면서도 소신파로 분류되는 경제관료였다. 국무조정실장을 관두고 아주대학교 총장을 하며 학생들에게 ‘갓동연’이라는 별명을 얻었고, 경제부총리를 마친 뒤 약 2년 7개월 간 정치권의 영입제안을 모두 거절하며 다양한 삶의 현장을 찾아다녔다. 

김종인 전 국민의힘 비상대책위원장이 대권주자로 거론하면서 더욱 주목받는 김동연 전 경제부총리가 본격 언론 접촉을 시작했다. 지난 4일 매일경제 경제부장과 서면인터뷰에서 “청년들에겐 현금이 아닌 기회가 필요하다”며 자신의 경제관을 밝혔고, 지난 13일 MBC라디오 ‘김종배의 시선집중’에 출연해 “정권교체보다 중요한 것은 정치세력 교체”라고 주장했다. 오는 19일엔 ‘대한민국 금기 깨기’라는 책을 출간한다.

미디어오늘은 지난 13일 그가 이사장으로 있는 사단법인 유쾌한반란 사무실이 있는 서울 광화문 오피시아빌딩에서 김 전 부총리를 만났다. 대권주자로서 정치부 기자와 진행한 첫 인터뷰다. 2시간 넘게 진행한 인터뷰 내내 김 전 부총리는 자신이 진단하는 한국사회 문제와 대안의 방향을 제시하는데 많은 시간을 할애했다. 

▲ 김동연 전 경제부총리가 지난 13일 서울 광화문에서 미디어오늘과 인터뷰를 진행하고 있다. 사진=김동연 전 부총리 측 제공
▲ 김동연 전 경제부총리가 지난 13일 서울 광화문에서 미디어오늘과 인터뷰를 진행하고 있다. 사진=김동연 전 부총리 측 제공

 

김 전 부총리는 사회문제를 풀 방법 중 하나로 정치개혁을 주장했다. 그는 “단임제 대통령제 승자독식 구조에서 정권을 잡으면 성과를 내야하고 조급해진다”며 “정치체제, 선거제도나 정당구조가 바뀌어야 한다는 면에서 개헌을 포함한 정치개혁이 필요하다”고 말했다. 

김 전 부총리와 인터뷰를 일문일답으로 재정리했다. 

-한국 사회의 다양한 문제가 있다. 무엇을 우선 해결해야 하나?

“한국 사회엔 양극화, 저성장, 청년실업 등 여러 문제가 있다. 눈에 보이는 현상들이다. 해결방법으로는 예컨대 확대재정정책을 쓰는 식이다. 그런데 눈에 보이지 않는, 문제의 뿌리도 봐야 한다. 이런 근본적인 문제는 3가지다. 국가과잉, 격차과잉, 불신과잉 이렇게 3대과잉이다. 국가과잉은 국가주의, 관이 개입하는 경제개발 성공공식에서 벗어나지 못한 것이다. 격차과잉은 소득불균형, 교육격차, 자산격차 등 각종 양극화 문제다. 불신과잉은 이러한 과잉들로 빚어진 불공정과 갈등을 말한다. 3대과잉의 뿌리엔 승자독식 구조가 있다.”

-승자독식 구조에서 격차나 불신이 커진다는 뜻인가?

“기여와 노력에 비해 지나치게 많은 보상을 받는 사람들이 나온다. 거꾸로 말하면 그렇지 못한 사람들이 있는 거다. 우월적 지위의 경제주체, 불공정거래, 갑을관계 등이 그렇다. 경제만 그런가. 그러니 교육분야에서도 스카이대학을 가려고 하지 않나. ‘1등만 기억하는 더러운 세상’이란 말도 있다. 그렇다 보니 많은 국민과 시장참여자들은 사회보상체계를 신뢰하지 않는다. 승자와 패자를 결정하는 게임의 룰이 상대적 기준이다. 취직이나 입학에서도 내가 상대보다 1점만 더 얻으면 된다. 냉전 때 미국과 소련이 경쟁하며 상대국보다 조금 더 강한 무기를 가져야 하는 것과 같다. 서로 적이 된다. 무한경쟁이 만들어지며 우리 사회가 전쟁터가 됐다.”

-승자독식 구조의 폐해가 심한 곳이 또 어디가 있나?

“정치권이 전형적인 승자독식 구조다. 국회의원선거는 단순다수소선거구제다. 한표라도 이기면 승자가 되는데 그쪽에 투표한 유권자들은 과잉대표가 되고 그렇지 않은 유권자들은 과소대표되거나 목소리가 무시된다. 단임제 대통령제 역시 승자독식 구조다. 이런 구조에서 정권을 잡으면 성과를 내야 하고 조급해진다. 성과를 내야 하니 국가과잉 현상이 나타난다. 물론 선의일 수도 있지만 권한이 집중되고 재정을 더 써야 하고 시장에 무리하게 간섭을 하게 된다.”

▲ 김동연 전 경제부총리가 지난 13일 서울 광화문에서 미디어오늘과 인터뷰를 진행하고 있다. 사진=김동연 전 부총리 측 제공
▲ 김동연 전 경제부총리가 지난 13일 서울 광화문에서 미디어오늘과 인터뷰를 진행하고 있다. 사진=김동연 전 부총리 측 제공

 

-현재 선거제도, 양당구조가 승자독식과 연결이 되는데 개헌이 해결책이 될 수 있다는 말인가?

“사회문제를 해결할 때 꼭 필요한 일이 사회적 대타협이다. 그동안 사회적 대타협은 노사문제, 즉 노사정위원회로 한정해왔다. 복지수준을 어떻게 할까, 그러기 위한 재원조달은 어떻게 할까 등도 사회적 타협의 대상이다. 교육개혁? 교육계만으로 풀 수 없는 문제다. 입시제도 바꾼다고 교육개혁이 되나. 교육은 사회의 거울인데 사회가 바뀌지 않으면 교육이 바뀌지 않는다. 남북문제와 남남갈등 모두 타협의 과제다. 지금처럼 양당구조로 가서는 한발도 못 뗄 것이다. 선거제도나 정당구조가 바뀌어야 한다. 권력을 나누고 아래로부터의 반란이 필요하다. 이제 방법을 바꿔야 한다. ‘정치대타협’이 필요하다. 정치지도자들이 앞장서서 기득권을 내려놓고 대결의 정치를 타협의 정치로 만들어야 한다. 노사에 앞서 국가지도자들이 먼저 권한을 조금씩 내려놓고 다양한 이익집단의 동참을 호소해야 한다. 그래야 여러 분야의 사회적 대타협을 포괄한 ‘국가적 대타협’을 만들 수 있다.”

권력을 나누는 방안은 구체적으로 분권형 대통령제, ‘아래로부터의 반란’은 더불어민주당과 국민의힘이 담아내지 못하는 의제를 국민들이 직접 제안하는 국민발안제 등으로 해석할 수 있다. 김 전 부총리는 “투쟁의 정치를 끝내고 문제를 해결하는 정치, 국민을 통합하는 정치가 필요하다는 뜻에서 개헌을 포함해 정치개혁이 필요하다”며 “정권교체보다 중요한 게 정치세력의 교체이자 의사결정 세력의 교체”라고 말했다. 

김 전 부총리가 출간할 책 제목이 ‘대한민국 금기 깨기’다. 이는 어떻게 금기와 연결될까. 

그는 1950년대 육상계에서 1마일(1.6km)을 4분 내에 달리지 못할 것이라는 ‘마의 벽’을 깬 로저 배니스터의 이야기를 먼저 꺼냈다. 육상선수들은 1886년 이후 4분벽을 깨지 못했고, 존 랜디 등 육상선수들도 1952년부터 4분 벽에 도전했다. 당시 의료계에서도 4분 내로 달리면 심장과 근육이 파열된다고 예측했다. 그러다 25세에 옥스퍼드 의대생인 배니스터가 1954년 3분59초4로 4분벽을 허물었다. 배니스터는 전통 훈련체계를 따르지 않은 아마추어 선수였는데 놀라운 사실은 그가 4분 기록을 깬지 46일만에 랜디도 3분58초로 신기록을 세웠다. 

김 전 부총리는 “배니스터가 4분벽을 넘은 이후 1년내 37명, 2년대 300명이 기록을 깬다”며 “갑자기 인류가 빨라졌겠나. 금기를 깬 것”이라고 말했다. 심리적 장벽, 할 수 없다고 생각하거나 생각조차 못한 ‘금기’ 중에 승자독식 구조나 양당구조가 있다는 지적이다. 투쟁의 정치, 양당구조 때문에 문제를 해결하지 못한 경험이 있는 걸까. 

▲ 김동연 전 경제부총리가 지난 13일 서울 광화문에서 미디어오늘과 인터뷰를 진행하고 있다. 사진=김동연 전 부총리 측 제공
▲ 김동연 전 경제부총리가 지난 13일 서울 광화문에서 미디어오늘과 인터뷰를 진행하고 있다. 사진=김동연 전 부총리 측 제공

 

“경제분야에서 보수와 진보의 쟁점은 시장에서 정부의 역할이다. 2005년 노무현 정부 당시 비전 2030 작업을 했다. 한국 최초의 국가 장기전략으로 25년간 나아갈 방향과 재정계획을 세웠다. 지금은 누구나 하는 말이지만 복지국가, 동반성장을 처음 꺼냈다. 과거에 경제성장을 해서 낙수효과를 기대하는 틀로는 못 간다고 했다. 양극화와 저출산(저출생), 사회적자본도 처음 꺼냈다. 당시 간부들 앞에서 브리핑했는데 사회적자본을 이해하는 사람이 없을 정도였다. 이를 실현하기 위한 두 개의 전략, 경제사회 전반의 구조개혁과 정부의 선투자를 주장했다.

그런데 보고서가 나오자마자 야당에서 ‘세금폭탄’이라고 비판했다. 세금폭탄 프레임에 갇혀 정쟁에 말려들어서 한 발짝도 못 나갔다. 25년을 내다보고 재원계획까지 세웠는데 정쟁의 대상으로 이념싸움만 해야 하나. 국가의 미래를 위해 철지난 이념논쟁, 진영싸움을 뛰어넘어야 한다. 경제부총리 그만두고 전국의 지역을 다니며 농어민분들 청년 서민들을 만났다. 우리 국민의 잠재력과 저력을 확인했다. 생각이 달라도 이해하려고 노력하고 양보하며 상생하는 모습들이다. 사회 지도층이 커버하지 못하는 엄청난 공감과 에너지가 있다. 보수와 진보라는 구시대 유물로 재단할 수 없는 영역이 있다.”

-보수와 진보의 논쟁은 큰정부 작은정부 논쟁이기도 하지 않나? 

“국제적으로도 정부의 역할은 수렴하고 있다. 큰정부 작은정부도 철 지난 얘기다. 정부의 역할은 이중적이다. 아무리 작은 정부도 양극화와 같은 사회구조적 문제를 외면할 수 없고 아무리 큰정부라도 글로벌 경제체제에서 시장에 마음대로 개입할 수 없다. 시장에서 혁신과 창의가 나오려면 정부의 역할을 줄여야 하고, 양극화가 세습되는 고리를 깨려면 정부의 역할을 늘려야 한다. 능력주의? 일리가 있다. 그렇지만 능력주의의 외피를 쓴 세습주의가 만연하다. 세습경제라는 금기 역시 깨야 한다. 이게 시장과 정부의 새로운 관계다. 더구나 코로나 위기까지 왔다. 희생과 상생의 에너지를 모아야 한다.”

다음 인터뷰에선 김 전 부총리가 말하는 시대정신과 그가 그동안 정치권과 거리를 뒀던 이유 등이 이어진다. 

▲ 김동연 전 경제부총리가 지난 13일 서울 광화문에서 미디어오늘과 인터뷰를 진행하고 있다. 사진=김동연 전 부총리 측 제공
▲ 김동연 전 경제부총리가 지난 13일 서울 광화문에서 미디어오늘과 인터뷰를 진행하고 있다. 사진=김동연 전 부총리 측 제공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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