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난해 상반기 한국 사회를 흔들었던 일명 ‘검언유착’ 의혹은 결국 법원에서 확인할 수 없었다. 

유시민 노무현재단 이사장의 비위 정보를 알려달라며 취재를 하다 미수에 그친 혐의(강요미수)로 기소된 이동재 전 채널A 기자에게 법원이 1심에서 무죄를 선고했다. 지난해 3월31일 MBC의 ‘검언유착’ 의혹 첫 보도 이후 473일 만이다. “검찰이 제출한 증거만으로는 피해자에게 발생 가능한 구체적인 해악을 고지했다는 사실이 합리적 의심이 없을 정도로 증명됐다고 보기 어렵다”는 게 재판부 결론이다. 

서울중앙지법 형사1단독 홍창우 부장판사는 16일 선고 공판에서 “검찰 고위 간부를 이용해 선처 가능성을 언급한 건 명백히 취재윤리를 위반한 것으로 도덕적으로 비난받아 마땅하다. 다만 언론의 자유는 민주주의를 지키는 최후의 보루라 언론인이 취재 과정에서 저지른 행위를 형벌로 단죄하는 건 매우 신중하고 엄격하게 판단해야 한다”고 밝혔다. 취재윤리를 위반한 것은 맞지만, 형사처벌은 과하다는 판단이다. 

앞서 검찰은 이동재 전 채널A 기자와 후배 백아무개 기자가 신라젠 대주주였던 이철 전 벨류인베스트코리아 대표이사를 협박해 법률상 의무 없는 유시민 등 여권 인사의 비리 정보를 진술하게 하려 했으나 미수에 그쳤다며 강요미수 혐의로 지난해 8월 구속 기소했다. 검찰은 이 전 기자에게 징역 1년6개월, 백 기자에게 징역 10개월을 구형했다. 

검찰은 공소장에서 “(2020년) 3월13일 (이철 대리인) 지현진씨와 만남에서 (피고인들이) 유시민 등의 비리 정보를 진술하지 않으면 피해자 본인은 물론 가족까지 중형을 선고받고 숨겨둔 재산까지 박탈당할 것이라는 취지로 겁을 주고, 검찰 고위층과 연결되어 있다는 점을 확인시켜주기 위해 한동훈을 익명의 검찰 고위 간부라고 언급하며 그와 나눈 대화 녹취록이라고 하면서 ‘만약 이철이 유시민의 비리를 제보하면 선처를 받을 수 있도록 수사팀과 연결시켜 주겠다’고 말하는 내용 등이 기재된 녹취록을 보여줬다”고 주장했다. 

▲디자인=안혜나 기자.
▲디자인=안혜나 기자.

이 전 기자가 다섯 차례에 걸쳐 이철씨에게 보낸 편지와 이씨 대리인 지씨와의 수차례 만남이 남긴 녹취, 그리고 채널A의 ‘진상조사보고서’로 드러난 사안의 심각성은 명확해 보였다. 하지만 법원은 법적 처벌까지 나아가지 않았다.

재판부는 “이동재는 피해자에게 수사가 과도하게 이뤄져 가족의 재산까지 모두 몰수될 거라는 내용의 편지를 보냈다. 피해자는 실제로 심각하게 받아들여 변호사와 본격적으로 논의했다”고 밝히면서도 “이 발언 자체로 검찰과 연결됐다고 볼 수는 없다”고 판단했다. 재판부는 한동훈 전 검사장과의 대화라며 녹취록을 보여준 행위에 대해서도 “검찰과 연결됐다고 믿게 한 자료라고 해도 지씨의 요구에 따라 만들어낸 녹취록이다. 검찰총장 측근과 관계가 있다는 사실을 암시한 게 구체적 해악의 고지라고 보기 어렵다”고 판단했다. 

무엇보다 검찰 공소장에서부터 ‘한동훈’이란 이름이 30회 넘게 등장했지만 공모 여부를 적시하지 못했고, 검찰은 공모 여부를 증명할 직접적 증거를 내놓지 못했다. 사건의 핵심 관계자로 볼 수 있는 지현진씨는 끝까지 증인신문에 나타나지 않았다. 그 결과 여당에서 주장했던 ‘검언유착’은 기자 개인의 ‘취재윤리위반’에서 나아가지 못했다. 

▲올해 초 한 시민이 채널A 앞에서 피케팅을 하는 모습. ⓒ정철운 기자
▲올해 초 한 시민이 채널A 앞에서 피케팅을 하는 모습. ⓒ정철운 기자

지난해 4월 일명 ‘검언유착’ 논란으로 유례없는 재승인 조건을 받았던 채널A는 이날 판결로 재승인 취소 위기를 넘는 분위기다. 지난해 6월 한상혁 방송통신위원장은 채널A·TV조선 재승인을 취소해달라는 국민청원에 답하면서 “채널A 기자의 취재윤리 위반 사건은 언론기관에서 해서는 안 되는 일이었다”면서도 “사법당국의 조사가 현재 진행 중인 점 등을 감안해서 재승인을 의결하되, 향후 취재윤리 위반 사건이 방송의 공적책임·공정성에 중대한 문제가 있었던 것으로 확인될 경우 본 재승인 처분을 취소할 수 있음을 명확히 했다”고 밝혔다. 

방통위는 지난해 4월20일 채널A를 재승인하며 위와 같은 내용의 ‘철회권 유보 조건’을 달았다. 방통위가 ‘실체적 진실’을 파악하지 못한 데 따른 대안으로, 이 전 기자에 대한 판결에 따라 채널A의 재승인 취소 여부가 다시 논의될 것이란 예측이 지배적이었다. 하지만 이날 무죄판결로 방통위가 당시 사건을 두고 “방송의 공적책임·공정성에 중대한 문제가 있었던 것”으로 판단해 재승인 취소를 결정하기는 사실상 어려워졌다. 

채널A 기자들은 이날 판결로 지난해 경영진의 판단을 비판할 가능성이 높다. 경영진은 논란 당시 ‘진상조사보고서’를 내고 그해 6월 이동재 전 기자를 해고했다. 이후 채널A 내부에서 젊은 기자들을 중심으로 ‘실적을 요구하는 사내문화 속에 무리하게 특종을 위해 취재하다 일이 잘못되면 회사가 기자를 지켜주지는 않는다’는 분위기가 형성되며 사내 분위기가 좋지 않았던 것으로 전해졌다. 이번 판결로 이 전 기자는 해고 무효소송 승소 가능성이 높아졌다. 

이동재 기자 측은 1심 판결 직후 입장을 내고 “어떠한 정치적 배경으로 사건이 만들어졌는지, 진행 과정에서 정치적 외압은 없었는지, 제보자, MBC, 정치인 간의 ‘정언유착’은 없었는지도 ‘동일한 강도’로 철저히 수사해 줄 것을 검찰에 촉구한다”고 밝혔다. 이어 채널A 측에도 “해고 근거가 없어졌으므로 복직을 결정해 달라”고 요청했다. 당분간 판결의 파장은 적지 않을 것으로 보인다. 제1야당과 보수언론을 중심으로 한 ‘권언유착’ 주장은 거세질 전망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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