대학에 희망은 있는가. 서울대 청소노동인의 죽음이 남긴 물음이다. 유족은 관리팀장이 바뀐 뒤 고인이 힘들어했다며 진상 규명과 재발방지 대책을 촉구했다. 이틀 뒤다. 서울대 학생처장이 나섰다. “산 사람들이 너도나도 피해자 코스프레하는 게 역겹다”며 “언론과 정치권과 노조 눈치만 봐야한다는 사실에 서울대 구성원으로서 모욕감을 느낀다”고 부르댔다.

대단한 ‘용기’다. ‘서울대 교수’를 즐겨 인용하는 조선일보는 기다렸다는 듯이 그 말을 부각했다. 궁금하다. 대체 무엇에 ‘모욕’을 느낀 걸까. 서울대에서 청소노동인의 죽음은 처음이 아니다. 2019년 8월에도 무더위에 에어컨은 물론 창문조차 없는 지하휴게실에서 숨진 채 발견됐다. 잇따른 죽음에 보직교수라면 자책이 마땅함에도 모욕을 느꼈다고 되술래잡는 행태는 살스럽다.

청소노동인들에게 ‘건물 이름을 한자와 영어로 쓰라는 시험을 냈다’는 보도에 그는 유학생이 많아 외국인 응대가 많아서라고 언죽번죽 말했다. 직무교육이었을 뿐이라고도 했다. 청소노동인들에게 필기시험을 치른 사실 자체가 ‘갑질’임을 이해하기 어려운 걸까. ‘인사고과에 반영되지 않는 시험’이라는 학교 측 설명도 거짓말로 판명됐다. 시험을 보며 “점수는 근무성적 평정에 적극 반영할 계획”이라고 못 박은 사실이 드러났다.

▲ 7월7일 서울대학교 행정관 앞에서 열린 ‘서울대학교 청소 노동자 조합원 사망 관련 서울대학교 오세정 총장 규탄 기자회견’에서 민주노총 조합원들이 관련 내용이 적힌 손피켓을 들고 있다. ⓒ 연합뉴스
▲ 7월7일 서울대학교 행정관 앞에서 열린 ‘서울대학교 청소 노동자 조합원 사망 관련 서울대학교 오세정 총장 규탄 기자회견’에서 민주노총 조합원들이 관련 내용이 적힌 손피켓을 들고 있다. ⓒ 연합뉴스

학생처장 구민교는 “역겹다”는 말도 해명했다. 고인이 “삐뚤삐뚤 쓰신 답안지 사진을 보며 뜨거운 것이 목구멍으로 올라온다”고 밝힌 이재명 경기지사를 콕 집으며 정치권을 염두에 두었단다. 그 시점에 기고한 신문칼럼에서 구 교수는 “선동이 잘 먹혀들게 하려면 국민의 마음속에 숨어 있는 열망, 시기와 질투, 분노에 불을 붙여야 한다”며 문재인 정부의 “권력 사유화” 를 비판했다. 물론 권력에 대한 올곧은 비판은 지식인의 의무이다. 그런데 그가 근거로 내세운 사례는 황당하다. “소득주도성장, 최저임금제, 주52시간제”를 들먹이곤 “코로나 상황에서 재난지원금을 쪼개어 나누어 주는 일이 빈번하더니 기본소득 논란이 등장했다”고 훌닦는다. 이쯤이면 그가 “역겹다”고 쓴 까닭이 짐작된다. “내 재산이 소중한 것만큼 남의 재산을 소중히 여기는 이들은 납세자의 돈을 헤프게 축내지 않는다”며 민주주의와 민주공화정에 대한 오해와 몰이해를 꾸짖는 그에게 가만히 상식을 들려주고 싶다. 내 생명이 소중한 만큼 남의 생명도 소중히 여기는 이들은 유족 앞에서 헤프게 따따부따하지 않는다.

구민교는 보직에서 물러났을 뿐 앞으로도 정년까지 행정학을 가르칠 터다. 딴은 어디 그만의 문제일까. 서울법대 학장을 지내고 장관과 국회의원을 누리던 정종섭은 당시 대통령 박근혜를 ‘예수’에 비유할 정도로 기상천외한 학식을 과시한 바 있다. 오세정 총장은 취임할 때 서울대가 “지성의 전당 기대에 부응해왔는지 자문해야 한다”며 근본적 혁신을 촉구하고 “타인과 공동체를 살피는 넓은 시야와 협동심”을 강조했다. 그것이 말 뿐이 아니라면 유족에 ‘협동심’부터 가질 일이다.

서울대만도 아니다. 한국의 교수들에게 미국 대학의 청소노동인 휴게실은 넓고 쾌적하며 연구실 바로 옆 사무실이 그분들의 휴게실이라는 코넬대학 엄치용 연구원의 증언은 어떻게 다가올까. 하긴 대학을 ‘지성의 전당’으로 호명하는 자체가 어느새 남세스런 일이 되고 말았다. 이미 2008년에 최장집 교수도 정년퇴임 강연에서 대학이 “신자유주의적 세계화를 추동하는 본산이자 동시에 그 세계화의 부정적 결과가 그대로 집중되는 곳”이라고 비판했다. 그 오염된 ‘지성의 전당’을 늘 깨끗이 청소하는 노동인들 앞에 이 땅의 교수들은 어떤 학문을 내놓고 있는가. 나 자신부터 역겨운 오늘이다. 그래서 더욱 희망을 찾는다. 공부한 진실을 나눌 때 눈빛에 윤슬 어리는 청년들이 마지막 보루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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