최재형 전 감사원장은 윤석열 전 검찰총장의 대안으로 자신이 거론되는 걸 거부하며 “난 나 자체로 평가받고 싶다”고 했다. 그동안 언론에서 최 전 원장을 대권주자로 거론하며 윤 전 총장의 대안으로 그렸기 때문이다. 

최 전 원장이 국민의힘에 입당하며 정치행보에 본격 나서자 조선일보를 중심으로 ‘윤석열 대안론’프레임을 벗겨내는 보도가 이어지고 있다. 윤석열·최재형 두 야권 주자를 다루는 언론의 서로 다른 시각을 살펴봤다. 

사실 조선일보는 최 전 원장 관련 보도에서 ‘윤석열 대안론’, ‘윤석열의 플랜B’로 표현하는 걸 극도로 자제해왔다. 최 전 원장을 윤 전 총장의 대안이라고 표현하는 정치권 관계자들의 발언을 인용한 기사 조차 7월 내내 1건에 불과할 정도였다. 자연스레 두 주자를 보도할 때도 둘의 관계에 대해서 딱히 언급하지 않고 별도의 장점을 부각했다. 

▲ 19일자 조선일보 6면
▲ 19일자 조선일보 6면

 

조선일보 지난 19일 “윤석열은 ‘감독형’…최재형은 ‘경청형’”를 보면 두 주자의 관계보다는 각각의 스타일을 별도로 강조하고 있다. 보도를 보면 윤 전 총장은 세세한 사안을 직접 결정하고 지휘하는 ‘감독형’이고 최 전 원장은 다양한 의견을 듣고 협의해 결정하는 ‘경청형’인데 윤 전 총장은 검사 출신이고 최 전 원장은 판사 출신이란 점도 강조했다. 지면에서도 둘을 비슷한 비중으로 다루며 누가 누구의 대체관계라는 관점을 탈피했다. 

지난 17일자 정치면을 봐도 마찬가지다. 정치면 톱기사에 윤 전 총장과 최 전 원장의 제헌절 행보와 메시지를 각각 동일한 비중으로 배치했다. 두 개의 기사제목과 내용을 살펴봐도 최 전 원장을 다룰 때 윤 전 총장과의 관계 속에서 다루지 않았다. 

▲ 17일자 조선일보 6면
▲ 17일자 조선일보 6면

 

이는 현재 야권 전체로 볼 때 합리적인 전략이다. 현직 감사원장이던 최 전 원장을 대권주자로 만드는데 있어선 윤 전 총장의 대안 성격을 드러내는 게 유리했을지 모르지만 최 전 원장은 정치 행보를 시작했다. 이준석 국민의힘 대표가 말한 ‘비빔밥론’으로 대표되는 야권의 다양한 주자들이 서로 다른 색채로 흥행을 가져가는 게 현재 야권의 목표다. 

비슷한 생각은 조선일보 19일자 ‘류근일 칼럼’에서도 확인할 수 있다. 언론인 류근일은 “(윤석열·최재형) 단일화는 막판에 가서 할 일이고 그때까지 흥행을 위해 단일화보단 윤·최 ‘경쟁 속 협력’이 더 적절하다”며 “이러지 않고 둘이 피차 상처만 입히면 결과는 공멸일 것”이라고 주장했다. 서로에 대한 비판이나 견제보다는 각자의 영역에서 지지율을 끌어올려야 한다는 주문이다. 

다만 이는 조선일보만의 관점일 수 있다. 일부 언론에서 최 전 원장의 지지율이 상승세라고 띄우고 있지만 여전히 모든 여론조사에서 차기 대권 지지율에서 한자리수를 기록하고 있다. 야권에선 윤 전 총장, 여권에선 이재명 경기도지사와 이낙연 전 더불어민주당 대표 등 3강 구도에서 의미있는 변수가 되지 못하고 있다. 

따라서 최 전 원장이 새로운 인물이고 감사원장 자리에서 제1야당으로 직행하는 등 여러 논란거리가 있어 기사화하고는 있지만 여전히 윤 전 총장의 그림자 속에서 다뤄질 수밖에 없다.

▲ 경향신문 17일자 정치면
▲ 경향신문 17일자 정치면

 

다른 신문들을 보면 조선일보의 기사와 뚜렷하게 대비된다. 

지난 19일 한겨레는 “후발주자 최재형, 차별화 전략은 ‘직접 소통’”이란 기사에서 최 전 원장이 윤 전 총장과 반대 행보를 보이고 있다고 보도했다. 최 전 원장과 윤 전 총장이 기존에 이미지가 겹치는 주자라는 걸 전제로 한 기사다. 같은날 경향신문은 “최 전 원장에게 주어진 시간은 길지 않다”며 “윤 전 총장에 비해 낮은 인지도와 지지율을 단기간에 끌어올리면 ‘대안주자’로서 명확한 존재감을 보일 수 있다”고 보도했다. 

지난 17일 경향신문 “윤석열이 반면교사? 반대로 가는 최재형”이란 기사 역시 두 주자가 대체관계라는 관점에 기반했다. 국민의힘 밖에서 중도층 확장을 꾀하는 윤 전 총장과 달리 지지율과 조직 모두 약점인 최 전 원장이 반대 행보를 할 수밖에 없다는 분석도 덧붙였다. 같은날 한겨레는 “최 전 원장 메시지가 나온 지 한 시간여 지난 시점에 윤 전 총장의 메시지가 나와 ‘윤-최 경쟁 구도’가 이미 시작됐다는 해석이 나온다”고 보도했다. 

▲ 최재형 전 감사원장이 국민의힘에 입당한 날인 12일 중앙일보 보도
▲ 최재형 전 감사원장이 국민의힘에 입당한 날인 12일 중앙일보 보도

 

진보성향의 신문뿐 아니다. 지난 8일 중앙일보는 “정치 참여 최재형, 다음은 팀…측근 ‘다양한 사람 모을 것’”이란 기사에서 “국민의힘 일각엔 ‘윤 전 총장이 혹독한 검증을 뚫고 대선까지 계속 갈 수 있겠나’란 의심의 눈초리도 있다”며 “이런 상황에서 최 전 원장은 ‘대안’이나 ‘보험’ 카드가 될 수 있다”고 보도했다. 사실상 조선일보를 제외한 대다수 언론이 최 전 원장을 윤 전 총장의 그림자로 다루는 분위기다. 

최 전 원장은 이를 의식한 듯 지난 12일 “윤 전 총장의 대안이 아니라 나 자체로 평가받고 싶다”고 말했다. 아직 정치선언, 대권출마를 공식화하지 않은 상황에서 ‘윤석열 대안론’ 프레임에 말려든 꼴이다. 대안론 관련 질문에 답하기 보단 윤 전 총장과 다르다는 걸 몸소 실천해 자신에 대한 평가를 바꿔나가는 게 낫지 않았을까.

‘코끼리를 생각하지 말라’는 말을 들으면 코끼리가 생각난다. 스스로 ‘MB 아바타’가 아니라고 말해 ‘MB 아바타’가 아니냐는 의심을 샀던 안철수 국민의당 대표나 어떤 기자도 기사에 담지 못했던 ‘쥴리’란 표현을 먼저 사용한 윤 전 총장의 배우자 김건희씨만큼은 아니지만 최 전 원장도 ‘윤석열 대안론’에서 벗어나긴 쉽지 않아 보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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