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세월호 보도개입’에 따른 방송법 위반으로 유죄를 선고 받았던 이정현 박근혜정부 청와대 홍보수석(전 새누리당 의원)이 관련 법조항 자체가 위헌이라며 헌법소원을 냈지만 받아들여지지 않았다. 헌법재판소는 31일 재판관 전원일치 의견으로 해당 법률이 합헌이라고 결정했다.

앞서 세월호 참사가 발생한 2014년 4월, 이정현 홍보수석은 김시곤 KBS 보도국장에게 전화를 걸어 해경에 비판적인 보도를 중단하거나 대체할 것을 요구했다. 그리고 2018년 12월 서울중앙지방법원은 이 전 수석이 방송편성에 관해 규제·간섭할 수 없는 방송법 제4조 제2항을 위반했다면서 징역 1년 집행유예 2년을 선고했다. 방송법 위반으로 유죄가 인정된 최초의 사례였다. 2심에선 벌금 1000만원으로 감형되었으나 유죄가 유지됐고, 지난해 1월 대법원이 벌금 1000만원을 확정했다.

이 수석은 해당 방송법 조항이 위헌이라는 주장을 이어왔다. 2019년 7월 위헌법률심판을 제청했지만 기각됐고, 같은 해 11월 지금의 헌법소원심판을 청구했다.

이 전 수석은 “누구든지 방송편성에 관하여 이 법 또는 다른 법률에 의하지 아니하고는 어떠한 규제나 간섭도 할 수 없다”는 방송법이 ‘정당한 언론비판’, ‘공정하고 객관적 보도를 시청할 권리’, ‘왜곡된 보도에 대한 의견 개진 내지 비판’ 등을 가로막는다고 주장했다. 해당 조항이 간섭 행위의 내용과 범위를 명확하게 규정하지 않아 “명확성 원칙”에 위반되며, 시청자의 의견·비판 권리를 간섭이라며 금지하고 처벌하는 것은 “과잉금지원칙” 위반이라는 취지였다.

헌법재판소는 결정문에서 이런 주장을 조목조목 반박했다. 헌법재판소는 “심판대상조항은 방송편성에 개입하여 부당하게 영향력을 행사하는 경우만을 규율한다”며 “방송편성에 관한 모든 의견 개진이나 비판을 금지하는 것이 아니라 그것이 금지조항이 규정하는 ‘간섭’ 행위에 이르렀을 경우에만 금지하고 나아가 처벌하는 것”이라 밝혔다.

‘간섭’ 행위를 세부적으로 모두 규정하는 일은 불가능하고 적절하지 않다고도 했다. 헌재는 “방송에 대한 간섭의 방식은 시대에 따라 다양하고 새로운 방식으로 끊임없이 등장할 것이므로 행위를 일일이 규정하는 것은 오히려 입법 취지에 반할 수 있다”는 판단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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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6년 6월30일 김시곤 전 KBS 보도국장이 이정현 전 청와대 홍보수석의 보도 개입을 폭로한 통화 내용을 뉴스타파가 재구성해 만든 ‘이정현-김시곤 통화내용(전체)’ 영상 갈무리

결정문 가운데 ‘국가·정치권력 등이 방송 장악을 시도하고, 방송이 권력에 편승한 역사’를 일침한 대목도 눈에 띈다. 헌재는 “이 사건에 있어서도 청와대 홍보수석비서관이라는 지위에 있던 청구인(이정현)은 보도자료 배포나 언론 브리핑 같은 공식적이고 정상적인 방법을 취하는 대신, 방송종사자에게 직접 전화를 걸어 자신에게 유리한 방향으로의 보도를 유도함으로써 방송에 간섭”했다면서 “이는 일종의 잘못된 관행으로서 방송편성 간섭 행위를 엄격히 금지해야 할 필요가 크다는 점을 확인시켜 준다”고 분명히 밝혔다.

헌재는 한편 “국가권력은 물론 정당, 노동조합, 광고주 등 사회의 여러 세력이 법률에 정해진 절차에 의하지 아니하고 방송편성에 개입하여 자신들의 주장과 경향성을 대중에게 전달하고 여론화하는 일이 발생한다면, 국민 의사가 왜곡되고 우리 사회의 불신과 갈등이 증폭되어 민주주의에 중대한 위해가 발생하게 된다”며 “시청자는 보다 질 좋고 공정하며 다양한 방송프로그램을 보고 즐기며 지적ᆞ정서적 자극을 받을 수 있어야 하고, 그러기 위해서는 방송사업자가 자율적으로 방송편성을 할 수 있도록 방송편성의 자유와 독립이 지켜져야 한다”고 강조했다.

이정현 전 수석은 31일 미디어오늘에 “헌재판결을 존중한다”며 “국가 기관들과 내 자신을 포함 모든 사람들이 언론자유의 존엄함과 엄중함을 다시 생각하는 기회가 되었으면 하는 바람”이라고 밝혔다.

전국언론노동조합 KBS본부도 이날 “헌법재판소의 결정에 환영의 뜻을 표한다. 이번 결정으로 방송에 대한 부당한 개입을 방지하고자 한 방송법의 제정 취지는 거듭 확인됐다고 판단한다”며 “이번 헌재 결정의 뜻을 존중하기 위해서라도 정치권력으로부터 독립된 공영방송 지배구조를 ‘입법의 형태’로 완성해나가기 위해 모든 노력을 이어나갈 것이다. 특히 대선을 코앞에 둔 9월 정기국회에서 반드시 공영방송 지배구조 정상화를 위한 방송법 개정안을 통과시킬 것”이라 밝혔다.

아울러 “정치 상황에 따라 KBS가 함께 휘청거려 왔던 데에는 근본적으로는 지배구조 등 제도의 한계가 있겠지만, 동시에 방송독립의 가치를 모든 구성원이 뼛속까지 체화하지 못하고 있었다는 방증이기도 할 것”이라며 “방송법 등 관련 제도를 바꿔내는 노력과 동시에, 모든 KBS 구성원들이 스스로 권력 독립이라는 가치를 근본 철학으로 새기려는 노력이 함께 병행돼야 할 것”이라고 내부 노력의 중요성을 함께 강조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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