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팝콘 브레인’이라는 표현이 있다. 오랜 스마트폰 사용으로 인해 뇌가 튀어오르는 팝콘처럼 즉각적인 자극에 반응하는 대신 일상 생활에는 흥미를 느끼지 못하고 타인의 감정을 읽는데도 어려움을 느끼는 증상을 빗댄 표현이다.

‘팝콘 브레인’은 자녀 스마트폰 이용을 경고하는 언론의 단골 소재다. 포털에 ‘팝콘 브레인’으로 검색하면 주기적으로 기사가 뜬다. 2013년 헬스조선의 “‘스마트폰에 빠진 우리 아이 뇌는 ‘팝콘 브레인’” 기사로 시작해 2016년 “‘팝콘 브레인’에서 벗어나라” 등 보도가 이어졌고, 최근까지도 대동소이한 기사가 쏟아지고 있다. 이들 기사는 부모들이 자녀의 스마트폰 이용을 막아야 한다는 생각이 들게 만든다.

정현선 경인교대 국어교육학과 교수는 지난 3일 열린부모교육학회와 굿네이버스가 공동주최한 학술대회 기조 강연을 통해 ‘팝콘 브레인’ 기사로 대표되는 단편적인 보도 경향을 지적했다. 정현선 교수는 자녀의 스마트폰 이용을 막는 것을 넘어 보다 실효성 있는 육아 차원의 접근 방법을 제안했다.

▲ 정현선 경인교대 국어교육학과 교수. 사진=미디어오늘
▲ 정현선 경인교대 국어교육학과 교수. 사진=미디어오늘

우려 쏟아내는 기사들 “업데이트 안 돼”

정현선 교수는 “다소 차이가 있지만 (팝콘 브레인을 다룬) 각 기사의 제목들은 ‘중독’ ‘금지’ ‘늪’ ‘문제’ ‘독’과 같이 직접적으로 부정적 가치를 지닌 단어를 사용해 스마트폰을 지칭하기도 하고, ‘팝콘 브레인’을 직접 언급하거나 ‘뇌 모양도 바꾼다’ 등의 표현을 통해 스마트폰으로 인한 뇌의 비정상적 변화를 기정 사실로 제시하기도 한다”고 설명했다.

정현선 교수는 “정작 스마트폰 사용이 뇌에 미치는 부정적 영향의 의학적 근거로 소개되는 팝콘 브레인에 관한 내용은 미국 CNN 방송에서 2011년 6월 보도한 미국 워싱턴대 데이빗 레비(David Levy) 교수 연구 결과”라며 “후속 연구 등 어떠한 추가적인 내용도 인용되고 있지 않다”고 지적했다.

특히 ‘팝콘 브레인’에 대한 보도를 보면 “심해지면 ADHD(주의력결핍 과잉행동장애)나 틱장애, 발달장애 등으로 이어질 수 있다”는 분석이 뒤따른다.

이와 관련 정현선 교수는 “질병을 진단하고 치료하는 전문학회의 공식 홈페이지에서는 스마트폰 과다 이용을 ADHD의 원인이라고 제시하지 않았음을 확인할 수 있다”며 “그런데도 확인 절차를 제대로 거치지 않고 스마트폰 과다 이용을 특정 질병과 연관 짓는 기사는 해당 질병에 대한 진단과 치료가 필요한 어린이와 그 부모들에 대한 편견과 고통만 증가시킬 뿐”이라고 비판했다. 

미디어에 대한 제한 지침이 고정불변의 것이 아님에도 과거 사례가 계속 인용되는 경향도 있다. 일례로 미국소아과학회는 ‘2x2 법칙’을 통해 만 2세 미만의 경우 영상 미디어를 노출해도 안 되고 그 이후라도 2시간 이내만 가능하다고 권고한 바 있다.

그러나 2016년 권고안을 개정해 만 18개월로 시청 가능 연령대를 낮추는 대신, 18~24개월 사이의 경우 교육적 가치가 높은 영상 프로그램을 선별적으로 허용했다. 또한 18개월 이하의 영아라도 가족과 영상통화를 허용하기도 했다. 정현선 교수는 “최신 권고안이 아니라 과거의 내용을 인용하는 보도가 지속되고 있고 과거의 내용이 여전히 인터넷에서 검색 가능한 상태로 남아 있어 부모들에게 혼란을 야기한다”고 지적했다.

전반적인 연구 경향에 대해 정현선 교수는 “만 18개월이든 만2세이든 영아기의 미디어 이용 제한에 대해서는 대부분의 전문가들이 공통된 의견을 보인다”면서 “그러나 그 이후 초등학생과 청소년 시기를 거치는 자녀에게 미디어 이용이 어떤 영향을 미치는가에 대한 연구 결과들은 엇갈리며 전문가들의 의견도 일치하지 않는다”고 전했다.

▲ 스마트폰을 보고 있는 어린이. ⓒgettyimagesbank
▲ 스마트폰을 보고 있는 어린이. ⓒgettyimagesbank

정서적 연결, 사생활 존중, 은근히 물어보기

미디어 이용의 부정적 면이 과장됐다곤 하지만 그렇다고 방치할 수도 없는 상황이다. 특히 코로나19 국면에서 미디어 이용 시간이 늘어나면서 우려는 더욱 커지고 있다. 

정현선 교수는 “스크린 타임 조절과 제한에 집착하다가 자칫 자녀가 디지털 세계에서 경험하게 될 진짜 위험들에 대해 들으며 자녀의 곁에서 구체적으로 조언하며 문제 해결 방법을 함께 모색할 수 있는 중요한 육아의 시기를 놓치게 될 수 있다”고 강조했다. 

정현선 교수는 “최근 연구들은 미디어 과다 이용이나 사이버 범죄로부터 자녀를 보호하는 가장 좋은 방법은 자녀 스스로 자신을 조절하고 자신의 온라인 행동을 성찰하도록 돕는 것이라는 점을 보여주고 있다”고 했다. 그러면서 “이러한 연구들은 미디어 이용시간을 제한하는 조치보다는 자녀들이 만드는 미디어 메시지나 생산물의 내용, 그것의 맥락, 그리고 누구와 연결되어 있는지에 초점”을 두는 것 등이 중요하다고 전했다.

정현선 교수는 대책으로 “정서적 연결 상태를 유지하고 사생활을 존중하며 은근히 물어보기”를 제안했다. 그는 “문제가 복잡해 보일수록 기본을 돌아볼 필요가 있다”며 “자녀 미디어 이용에 대한 부모의 중재에서 가장 중요한 것은 부모 자신이 자녀로부터 신뢰를 받는 어른으로서 우호적 관계를 유지하는 것”이라고 했다.

호주 정부의 육아정보 웹사이트는 태아, 갓 태어난 아기, 아장아장 걷는 아이, 유아, 학령기, 10대 이전 어린이, 10대, 성인, 자폐, 장애 등 범주를 설정해 발달 단계 및 장애 여부별로 분류한 육아 정보를 제공하고 있다. 이와 관련 정현선 교수는 “자녀의 연령 뿐 아니라 자녀가 지닌 특별한 기질과 신체 및 정신적 조건을 고려해 육아의 방향이 다양할 수밖에 없음을 보여준다”며 “아이의 상황을 먼저 살피고 이해하는 것이 육아의 정석임을 환기할 필요가 있다”고 했다. 

▲ Ⓒgettyimagesbank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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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현선 교수는 10대 이하 자녀에 대해 “자녀가 어떤 내용의 책을 읽는지, 텔레비전 프로그램은 무엇을 보는지, 컴퓨터나 인터넷에서 무엇을 보고 어떤 행동을 하는지 등에 대해서도 부모는 대체적으로 알고 있어야 한다”며 “일거수일투족을 감시하라는 것이 아니라 자녀의 친구에 대해 알고 있어야 하는 것처럼, 이런 정도는 부모가 알고 있어야 한다는 뜻”이라고 했다.

10대가 된 청소년의 경우 “이 시기 청소년들에게는 자신이 속한 공간에서 안전하고 책임감 있는 결정을 내리는 방법을 배우는 것이 중요하다”고 조언했다. 그는 “이 시기의 청소년들은 사생활 보호와 개인의 공간을 갖는 것을 중시한다는 점도 고려해야 한다. 따라서 지나친 간섭보다는 자녀의 생활 전반에 대해 관심을 갖고 은근히 물어보는 것이 중요하다”고 했다.

정현선 교수는 “무엇보다 중요한 것은 자녀가 미디어 이용 방식에 대해 편견을 갖지 않고 있는 그대로 이해하는 마음을 갖는 것“이라며 “자신이 일상적으로 자녀와 어떤 관계를 맺고 있는지, 그리고 디지털 환경에서 무엇이 쟁점이 되고 있는지를 돌아보고 알아가는 노력을 기울일 필요가 있다”고 덧붙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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