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00년대를 풍미한 두 명의 ‘천재’ 예능PD가 있다. 짐작하듯 나영석과 김태호다. 나영석 KBS PD는 2012년 12월, CJ E&M으로 떠났다. 나영석 PD의 사표는 CJ E&M과 종합편성채널 등의 성장과 지상파3사 독점시대의 붕괴를 알리는 사건이었다. 9년이 흐른 2021년, 김태호 MBC PD의 사표는 지상파냐 케이블이냐를 넘어 ‘콘텐츠’를 둘러싼 주도권이 플랫폼에서 제작자(크리에이터)로 넘어간 상징적 사건이 될 것으로 보인다. 

김태호PD는 지난해 9월 미디어오늘과 인터뷰에서 ‘놀면 뭐하니?’의 최종 목적지가 ‘방송시간이 정해진 지상파 편성의 틀을 넘어서는 콘텐츠’라고 했다. 그러면서 그는 “MBC PD가 아닌 ‘놀면 뭐하니’ PD라고 생각해야 한다”라는 의미심장한 말을 남겼는데, 이제 그 뜻을 온전히 이해할 수 있다. 지상파PD라는 ‘규정’은 더 이상 경쟁력이 없다. TV조선에서 예능 프로그램 최고시청률이 나오고, 쿠팡이 ‘SNL코리아’를 만드는 시대다. 

그는 당시 인터뷰에서 “플랫폼에 최적화된 콘텐츠를 만들어야 하지만, 반대로 콘텐츠에 적합한 플랫폼을 선택할 기회도 늘어났다”고 밝혔다. 그리고 그는 이제 매우 자유롭게 플랫폼을 ‘선택’하기로 했다. 그는 지난 7일 자신의 SNS에 “무모한 불나방으로 끝날지언정, 다양해지는 플랫폼과 급변하는 콘텐츠 시장을 보면서 이 흐름에 몸을 던져보기로 마음먹었다”고 밝혔다. ‘무한도전’ PD의 최종 도전은, ‘사원증 반납’이다. 

▲김태호 MBC PD. 올해를 끝으로 그는 MBC를 퇴사한다. ⓒMBC
▲김태호 MBC PD. 올해를 끝으로 그는 MBC를 퇴사한다. ⓒMBC

김태호 PD의 사표에는 이유가 있다. 2002년 입사해 올해 20년 차인 그는, 이제 관리자로서의 역할을 요구받는 연차다. 그의 퇴사 결정은 끝까지 ‘연출 PD’로 남기 위한 결정일 수 있다. 그러면서 그는 MBC라는 안정적인 ‘인하우스’ 대신 ‘자율성의 최대치’를 선택했다. 멈출 수 있을 때 멈추고, 쉴 수 있을 때 쉬고, 시즌제를 할 수 있으며, 능력이 허락하는 만큼 조연출과 제작비를 마음껏 쓸 수 있다. 

무엇보다 그는 ‘구시대’적인 지상파 방송심의에서 ‘탈출’ 버튼을 눌렀다. 김태호PD의 ‘탈 지상파’에서 주목해야 할 대목은 사실 지상파 심의제도다. ‘지상파=온 가족이 모여 시청하는 보편적 서비스’가 옛말이 되었지만, 지상파 PD들은 여전히 20세기 심의에 구속되어 창발성을 스스로 제한한다. 김태호PD는 ‘무한도전’ 무한상사편에서 배현진 아나운서를 출연시켜 심의제도를 풍자한 적도 있는데, 그럼에도 심의제도는 ‘유부장’처럼 견고했다. 

그의 팬들이 ‘사표’ 소식에 아쉬움보다 기대감을 드러내는 이유도 주 1회 편성이란 고정틀과 함께 심의에서 해방되어서다. PD들이 느끼는 지상파 ‘비대칭규제’는 사실 심의다. 이제 지상파에서 ‘도제식 교육’을 마친 예능PD들은 ‘일을 할 만하면’ 회사를 떠난다. 이 같은 구조적 환경을 외면하는 한 지상파 콘텐츠 경쟁력은 계속해서 뒤처질 수밖에 없으며, 김태호 PD를 끝으로 이제 지상파 3사에서 ‘스타PD’는 등장하지 않을 것이다. 

김태호는 20년 근속으로 MBC에 충분히 보답했다. 이제 김태호PD의 연출작은 넷플릭스에서, 웨이브에서, 혹은 카카오TV에서 등장할 것이다. 그는 앞선 미디어오늘 인터뷰에서 “플랫폼이 많아지면서 실시간 TV시청자 수는 줄었지만 전체적인 콘텐츠 이용자 수‧이용시간은 늘어났다. ‘놀면 뭐하니’ 스튜디오 PD로서 이 기회를 잘 이용하려 한다. 유튜브, 넷플릭스, 카카오TV는 경쟁상대가 아니라 우리의 새 놀이터다. 재밌게 놀 자신이 있다”고 말했다.

결국 그는 더 재밌게 놀기 위해 MBC를 떠난다. 

▲MBC '무한도전'의 레슬링 특집 편. 정준하와 정형돈의 멋진 포즈. ⓒMBC
▲MBC '무한도전'의 2010년 레슬링 특집 편. 정준하와 정형돈의 멋진 포즈. ⓒMBC

김태호PD는 이제 무엇을 연출할까. 1년 전 인터뷰를 다시 꺼내 보자. “2008년부터 그렸던 큰 그림이 ‘무한도전 스튜디오’였다. 무한도전에서 발생한 캐릭터가 타 프로그램에서 소모되고, 무한도전의 특별한 에피소드들이 타 채널 정규프로그램들로 만들어지는 걸 보면서 우리가 성장시킨 캐릭터와 개발한 포맷들을 우리 시스템 안에서 소화할 수는 없을까, 우리 능력 안에서 지상파가 아닌 플랫폼에 특화된 스핀오프를 만들 순 없을까 고민했다.”

“토요일 저녁 ‘무한도전’과 별개로 월요일 밤 ‘시트콤 무한상사’나, 시니어 대상 프로그램 ‘하와 수’, 예능계 후배 육성 프로그램 ‘무한도전 마이너리그’ 등을 제작하는 식인데, 당시 가능성이 있겠느냐는 반문이 있었다. 지금도 똑같은 고민을 하고 있다.” 여전히 유튜브에서, 웨이브에서 ‘무도’를 즐겨보며 그리워하는 시청자들이 적지 않다. 넷플릭스 오리지널 ‘먹보와 털보’에서 김태호PD는 노홍철과 만난다. 무도 팬에게 좋은 징조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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