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언론중재법 논의가 ‘찬성하면 민주당 편’, 이런 식으로 정파적으로 흐르고 있다. 민주당도 별 실효성 없는 내용을 갖고 헛심 쓰는 것 같다. 법을 이렇게 만들면 다 되겠지, 안이한 생각을 하는 것 같은데 판례를 잘 모르는 사람이 만든 것 같다.”

언론 보도 피해자 민사소송 경험이 매우 풍부한 A변호사는 익명을 전제로 “오죽하면 이런 법이 나왔을까, 법을 만들게 된 심정은 충분히 이해한다. 하지만 법을 만들어봤자 고의‧중과실 보도가 전체 언론 사건에서 몇 퍼센트나 될 것이며, 요건이 된다고 한들 (손해액의) 5배 이하까지 할 수 있다고 해놨으니 법원의 실무 관행으로 보면 아마 5배수를 적용하는 것은 1년에 1건 나올까 말까 할 것”이라고 말했다. 사법부가 법적 안정성을 중시하는 곳이라는 점을 감안하면 합리적 예측이다. 

A변호사는 “형법상 출판물에 의한 허위사실 적시 명예훼손죄가 7년 이하 징역인데, 변희재가 태블릿PC 조작설로 받은 게 겨우 2년 실형이었다. 형사사건에서 법정 최고형이 나오기 어렵듯 민사도 마찬가지”라면서 현재 여당이 올린 중재법 개정안은 피해구제 실효성이 매우 떨어지는 법안이라고 평가했다. 그러면서 “실제 피해구제를 위해선 법원에서의 위자료 제도 변화가 우선 필요하다. 국민소득이 늘어난 만큼 위자료 액수도 비례해 늘었는지 연구도 필요하다”고 지적했다. 

언론중재위원회에 의하면 언론 보도 손해배상 인용액 평균값은 2010년 2424만 원에서 2019년 1464만 원으로 줄었고, 중간액도 2010년 1000만 원에서 2019년 500만 원으로 정확히 절반 줄었다. 1990년부터 2004년까지 15년간 손해배상 인용액 평균값은 4141만 원, 중간액은 3000만 원이었다. 배상액이 줄어든 배경은 다양할 수 있다. 그러나 이 같은 수치는 징벌적 손해배상을 요구하는 이들에게 효과적 지표로 활용될 수밖에 없다. 

▲게티이미지.
▲게티이미지.

또 다른 문제는 ‘판사의 성향’이다. 앞서 지난해 말 언론중재위원회가 실시한 ‘언론에 대한 징벌적 손해배상제 도입’ 관련 토론회에 참석한 박재영 서울고등법원 부장판사는 “(미국에서) 이 제도의 가장 큰 문제는 (위자료) 예측 가능성이 없다는 것으로, 법의 지배 원리에 반한다”고 지적하면서 만약 국내에 관련 제도가 도입될 경우 “재판관이 편파적이고 일관성 없는 배상액 산정에 나설 위험을 어떻게 제어할지 연구해야 한다”고 강조했다. 심지어 한국은 미국과 달리 배심원제도 없어서, 판사의 판단이 절대적이다.  

박재영 부장판사는 “언론 보도에 따른 정신적 손해는 굳이 징벌적 손해배상제를 도입하지 않아도 법원 재량으로 정할 수 있다. 현행 실무상 위자료를 적게 인정하는 경향이 있었던 것은 사실이지만 2016년 10월 대법원이 새로운 위자료 산정기준을 냈다”며 언론 보도 피해구제 문제는 “재판에서 위자료를 높이는 방안으로 해결하는 게 정도(正道)”라고 밝혔다. 하지만 이 같은 산정기준만으로는 실제 판례가 달라지기엔 “엉성하다”는 평가다. 

언론 관련 민사판례에 매우 밝은 B변호사는 “법원 내에 형사사건 양형 기준표 비슷하게 초상권 침해‧사생활침해‧명예훼손 등 인격권침해와 관련한 위자료 산정 기준표를 구체적으로 만들어야 한다”고 제안했다. B변호사는 “배상액 산정에서 특히 위자료는 법관 재량인데, 재량으로만 맡겨놓으니 기존 판례를 보고 액수를 산정한다. 그걸 깨기 위해 명예훼손의 경우 유형에 따라 위자료 기준 등을 정해 놓는 게 필요하다”고 지적했다. 일련의 중재법 개정논의의 ‘목적’이 언론보도 피해구제 현실화라면, 사법부도 변화가 필수적이라는 의미다.

▲지난달 19일 국회 문화체육관광위원회 전체회의에서 국민의힘 의원들이 언론중재법 개정안 처리에 반발하는 모습. ⓒ연합뉴스
▲지난달 19일 국회 문화체육관광위원회 전체회의에서 국민의힘 의원들이 언론중재법 개정안 처리에 반발하는 모습. ⓒ연합뉴스

 

“이 법안대로라면…연예인 사생활 보도만 징벌배상”

언론보도 피해구제 필요성에 공감하는 변호사들이 가장 우려하는 것은 법안의 실효성이다. 일단 언론중재법 개정안 제30조2 허위 조작 보도 특칙에 명시된 고의‧중과실 추정규정을 없애야 한다는 데에는 법조인들의 판단이 거의 일치하고 있다. 표현의 자유에 심각한 악영향을 주고, 실무와도 맞지 않다는 이유다. 그러나 법안을 두고 다른 문제 제기도 있다. 

B변호사는 “제30조2 3항에 따라 공직자윤리법상 공인과 그 후보자와 대기업 및 주요 주주, 임원은 징벌적 손해배상을 청구할 수 없고, 4항에 따라 공익신고자보호법상 공익침해행위와 관련한 언론 보도, 부정청탁금지법상 금지 행위와 관련한 언론 보도, 그밖의 언론의 사회적 책임을 수행하는 데 필요하다고 인정되는 언론 보도도 징벌적 손해배상 적용에서 제외하기로 했다”면서 “이렇게 되면 징벌배상을 적용할 수 있는 사건은 연예인 사생활침해밖에 없을 것”이라고 지적했다. A변호사 역시 “지금 법안은 차 떼고 포 떼고 다 떼어버린 상황”이라며 실효성이 없다고 했다. 

언론인권센터 언론피해구조본부장인 김준현 변호사는 “지금도 공익적 목적으로 보도했다고 판단되면 위법성 면책 사유가 있어서 (제30조2 4항은) 굳이 명시할 필요도 없다”고 전한 뒤 “이 법안이 이대로 가면 연예인 사생활 보도만 징벌배상의 대상이 될 것이다”라고 우려했다. 김 변호사는 “공인을 징벌적 손해배상 청구대상에서 제외해선 안 된다. 공인을 다루는 공적 보도가 허위사실이라면 당연히 징벌배상의 대상이 되어야 한다”고 주장하며 ‘공인의 징벌배상 청구 제외’를 요구한 언론현업단체들을 이해하기 어렵다고 밝혔다. 

▲언론중재위원회.
▲언론중재위원회.

 

언론중재법과 함께 주목해야 할 언론중재위원회

징벌적 손해배상보다 언론중재위원회에 주목해야 한다는 의견도 있다. A변호사는 “현재 중재위원의 5분의1을 법원행정처장이 추천하고, 법원에 있어야 할 부장판사들이 격무에 시달리면서도 중재부장을 차지하고 있다”며 “판사 추천 조항을 삭제하고, 대신 분쟁 조정에 효과적인 상담‧심리‧조정‧화해 전문가를 중재위원으로 위촉해야 한다”고 주장했다. 그러면서 “언론보도 피해구제는 결국 감정적 문제를 다루는 것이다. 보도 피해자의 감정을 잘 헤아릴 수 있는 전문가들이 중요하다”고 강조했다. 반면 B변호사는 “사실 여부를 다투는 곳에서 화해‧조정 기술이 의미가 있을지 회의적”이라고 지적했다.  

A변호사는 “언론중재위원회를 언론통신분쟁조정위원회로 바꾸고, 피해구제기관으로 자리매김하게끔 하는 것도 방법”이라고 했다. A변호사는 “언론보도 피해는 불법행위다. 중재는 계약관계가 있어야 성립되는 건데, 계약관계가 전혀 없는 상황에서 불법행위가 발생했는데 중재가 가능한가”라고 되물으며 “문체부에서 독립된 기구로서 정보통신망에서의 인격권침해 정보까지 다룰 수 있는 언론통신분쟁조정위원회를 만들어 총괄적인 피해구제에 나서야 한다”고 했다. 이 경우 현재 언론중재위의 권한과 강제력은 높아질 수 있다. 

여기에도 반론은 있다. 김준현 변호사는 “전 세계 유일무이한 언론중재위원회의 목적은 신속한 피해구제를 위한 중재다. 중재위에 권한을 더 줄수록 언론사나 언론피해자가 받아들이지 않고 법원으로 갈 가능성이 높다”고 우려했다. 지금도 중재위가 직권조정 결정을 하더라도 이의신청이 있으면 법원으로 가는 상황에서 권한이 늘어날수록, 법원으로 가는 사례가 늘어나 피해구제가 더 어려워질 수 있다는 의미다. 

김 변호사는 그러면서 “개정안대로 정정보도를 원 보도의 최소 2분의1 크기 이상으로 하도록 규정하는 조항이 통과되면 조정 불성립에 따른 민사소송이 늘어날 것”이라고 전망하기도 했다. 이와 관련해 김성순 민변 미디어언론위원장(변호사)은 “언론중재위 조정절차에선 권고 수준으로 하고, 소송 절차에서는 원 보도와 동일한 크기 수준도 가능하게끔 해야 한다”고 제안한 바 있다. 

물론 언론중재법 개정안 국면에서 언론중재위원회 역시 지금까지의 업무 관행을 되돌아볼 필요가 있다. 한 언론보도 피해자는 “법적 대응이 힘들어 중재신청을 하려고 했는데 중재가 결렬되면 그냥 끝이고, 어차피 민사를 준비해야 한다. 시간만 소요된다는 생각이 든다”고 밝혔다. 한 언론사 관계자는 “중재위가 잘잘못을 가리지 않고 중재만 하려 든다. 중재위원 가운데 고압적인 언론인 출신 중재위원들도 문제”라고 밝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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