대통령의 취임사처럼 기회는 평등하고 과정은 공정하고 결과는 정의로워야 한다. 사회 각 분야에서 이 원칙이 지켜지는 세상은 오지 않았지만 그런 세상이 오더라도 결과가 정의로울지 의문이다. 경쟁에 참여하는 각 주체들의 조건이 다르기 때문에 평등하게 기회를 제공해도 소수자·약자 입장에선 공정하다고 느끼기 어렵기 때문이다. 이런 가운데 강자에게 더 많은 자원을 배분하는 전통적인 분야가 다른 영역의 자원배분 권한을 가지고 있는 정치권이다. 

미디어오늘이 조정훈 시대전환 의원실에서 받은 올해 3분기 정당별 국고보조금(경상보조금) 지급 내역을 보면 전체 약 115억6000만원 중 더불어민주당(171석) 약 52억5000만원, 국민의힘(104석) 46억4000만원 등 두 정당이 약 85%의 보조금을 받아갔다. 국회의원을 배출한 원내정당 중 가장 의석수가 적은 기본소득당(1석)은 약 800만원(0.07%), 시대전환(1석)은 약 450만원(0.04%)를 받았다. 국회의원이 없는 원외정당인 민생당(0석)은 약 2억3000만원을 받았다. 1분기와 2분기에도 대체로 비슷한 금액을 받았다. 

세가지 문제를 생각해볼 수 있다. 첫째, 왜 의석수에 비례하지 않고 거대 양당이 과도하게 많은 보조금을 받는가다. 시대전환 기준으로 민주당은 의석이 171배 많지만 3분기에 받은 보조금은 1177배 많다. 둘째, 원내정당인 기본소득당·시대전환 등보다 의원이 없는 민생당이 더 많은 보조금을 받을 수 있는지다. 시대전환 기준으로 민생당은 3분기에 받은 보조금이 약 52배 많다. 셋째, 이러한 국고보조금 제도의 문제점을 개선하거나 없애면 대안은 무엇이 있을까.  

▲국회 앞 정문. ⓒ연합뉴스
▲국회 앞 정문. ⓒ연합뉴스

 

▲ 2021년 1,2,3분기 정당별 국고보조금(경상보조금). 자료=조정훈 의원실
▲ 2021년 1,2,3분기 정당별 국고보조금(경상보조금). 의석수가 같더라도 득표율, 정책 등의 차이로 보조금에 차이가 있다. 자료=조정훈 의원실

 

국고보조금 배분, 거대양당에게 유리한 정치자금법

국고보조금 중 경상보조금은 정치자금법 27조(보조금의 배분)에 따라 자신의 정당소속 의원들로 교섭단체를 구성한 정당에 대해 50%를 정당별로 균등하게 분할한다. 3분기 기준으로 약 115억6000만원의 총액 중 약 58억원은 일단 교섭단체를 구성한 민주당과 국민의힘, 두당의 몫이다. 

나머지 정당 중 5석 이상의 의석을 가진 정당(정의당)에게 5%, 5석 미만 의석을 가진 정당의 경우 일부조건을 충족할 경우 2%씩 배분한다. 이렇게 배분하고 남은 보조금 중 다시 절반은 각 정당의 의석수 비율로 다시 배분하고, 잔여분은 국회의원선거(총선) 득표수 비율에 따라 배분한다. 

요지는 무소속 의원을 빼고 정당별 의석수에 비례해 배분하는 게 아니라 교섭단체가 있는 거대정당이 그 이상을 가져가도록 룰(정치자금법)이 설계돼 있다는 뜻이다. 법을 개정해야 하는 문제지만 교섭단체조차 꾸리지 못한 20석 이하의 소수정당들은 법개정을 추진할 능력이 되지 않고, 법개정에 결정권이 있는 민주당과 국민의힘은 법을 개정할 의지가 없다. 사실 그들 입장에선 법을 개정할 이해관계가 없다. 강자에게 유리한 룰, 전형적인 불공정 경쟁의 모습이다. 

▲ 사진=pixabay
▲ 사진=pixabay

 

의원은 없지만 재정 풍족한 민생당

그렇다면 원내정당인 기본소득당과 시대전환보다 의원을 당선시키지 못한 민생당이 30~50배가량 많은 보조금을 받는 이유는 뭘까. 정치자금법 27조를 보면 지난해 총선(21대 총선)에서 득표수 비율이 2% 이상인 정당은 보조금을 받을 수 있는데 민생당이 이에 해당한다. 

올해 1·2·3분기를 합하면 올해 민생당은 약 7억원의 보조금을 받았다. 4분기까지 받으면 올해 9억원이 넘는 보조금을 받을 것으로 보인다. 미디어오늘 취재결과 현재 민생당에는 50억원이 넘는 재정이 있다. 대선을 완벽히 치를만한 금액은 아니지만 대선에서 아무런 역할을 안 하기엔 넉넉한 금액이다. 

여기에 매년 10억원 가까운 경상보조금을 받으며 다른 주요정당처럼 여의도 국회 앞에 당사가 있지만 국회의원이 없다는 이유로 언론의 감시에서 벗어나 있는 곳이 민생당이다. 

지난해 총선을 앞두고 바른미래당, 대안신당, 민주평화당이 합당해 만든 민생당은 지난 20대 국회 때 원내정당이었다. 하지만 총선때 당선자를 내지 못하면서 언론의 관심에서 멀어졌고 4·7재보선에서 서울과 부산에 시장후보를 냈지만 존재감을 드러내지 못했다. 

그 와중에 당 지도부를 차지하려는 세력간 갈등이 극심해졌다. 비상대책위원장이 사퇴하겠다고 했다가 이를 번복하거나 구파와 신파, 그 이상으로 갈라져 내분이 커졌다. 지도부직을 두고 법원에 가처분을 신청하는 등 법적다툼까지 번졌다. 민생당은 지난달 말 전당대회를 통해 민주평화당 최고위원을 역임했던 서진희 당대표와 진예찬·이진·이승한 최고위원을 선출했다. 

▲ 지난달 28일 선출된 민생당 지도부. 왼쪽부터 이승한 최고위원, 서진희 대표, 이진 최고위원, 진예찬 최고위원. 사진=민생당
▲ 지난달 28일 선출된 민생당 지도부. 왼쪽부터 이승한 최고위원, 서진희 대표, 이진 최고위원, 진예찬 최고위원. 사진=민생당

관련 소식은 언론에서 찾기 어렵다. 정치부 기자들조차 민생당 상황을 잘 알지 못했다. 일부의 보도를 통해 본 민생당의 내분사태는 소위 ‘눈먼 돈’을 차지하려는 권력다툼으로 비칠 가능성이 크다. 정당 보조금을 분기별로 수억원씩 받는 정당에 대한 언론과 시민들의 관심이 필요한 이유다.  

동시에 신생정당으로서 당원모집과 지역정당 창당에 힘을 쓰고 있는 기본소득당과 시대전환 입장에서보면 정당활동과 의정활동을 열심히 하는 곳에 보조금이 공정하게 배분되는지 의문을 가질 수 있다. 

득표율에 비례해 지급 또는 정치기본소득

현행 정당 국고보조금 지급이 거대 양당에게 특혜라는 지적이 꾸준히 나오는 가운데 대안은 두가지로 볼 수 있다. 

먼저 교섭단체 몫을 먼저 배분하는 특권을 없애고 선거 때 득표율에 따라 배분해서 비례성을 강화하자는 주장이 가능하다. 2016년 야당이었던 민주당은 의석수에 비례해 지급되는 정당 국고보조금을 득표율에 비례해 배분하는 방식으로 변경하는 방안을 여당인 새누리당(현 국민의힘)에 제시했지만 새누리당은 받아들이지 않았다. 소수정당들이 오래전부터 주장해 온 대안이다.

정당 국고보조금은 지금껏 다룬 경상보조금과 선거때 받는 선거보조금이 있는데 거대 양당은 이번 총선 때 각각 위성정당을 만들었고 해당 위성정당(더불어시민당·미래한국당)에도 보조금을 받았다. 중앙선거관리위원회는 이처럼 위성정당을 만들어 비례대표 당선자를 배출하고, 선거보조금을 받는 것이 문제가 없다고 했다.

▲ 원내정당인 시대전환
▲ 원내정당인 시대전환
▲ 원내정당인 기본소득당
▲ 원내정당인 기본소득당

기본소득을 주요 의제로 하는 시대전환과 기본소득당은 현행 정당 국고보조금제와 정치후원금 세액공제 대신 정치기본소득을 주장한다. 

조정훈 시대전환 의원은 지난 2월26일 국회 본회의에서 “저소득자들이 정치후원금을 내지 않아 정치로부터 소외되고, 날 포함한 국회는 그들의 목소리를 대변하기 어려울 수밖에 없다”며 “정치후원금 양극화를 해소하는 방법은 모든 유권자에게 ‘정치기본소득 바우처’를 제공하는 것”이라고 말했다. 1인당 연간 1만원의 바우처를 지급할 경우 총선 유권자 수가 약 4400만명이니 연간 4400억원의 예산만 있으면 가능한 정책이다. 

조 의원이 중앙선관위에서 받은 지난해 국회의원 후원금 모금내역 등을 본 결과 양극화가 뚜렷해 이런 아이디어를 제안했다. 안정적인 소득이 있을 경우 정치인들에게 후원금을 내고 연간 10만원씩 소득공제로 돌려받지만 저소득층은 후원하기도 벅차기 때문이다. 이러한 제도를 도입할 경우 민주주의 원리에 따라 더 많은 재정을 확보할 가능성도 있다. 

신지혜 기본소득당 대표는 지난 10일 미디어오늘과 통화에서 “국고 보조금 제도와 현행 세액공제 제도를 폐지하고 유권자에게 정치쿠폰을 제공해 원하는 당이나 정치인에게 후원할 수 있는 정치기본소득을 제안한다”며 “안정적인 소득이 있는 사람은 후원을 하고 세액공제로 돌려받을 수 있지만 저소득층을 그러기 어려워 불평등하다”고 말했다. 이어 “당에서 정책을 만들 땐 1년에 1인당 10만원으로 설계했지만 5만원이든 3만원이든 일단 시작을 하는 게 중요하다”고 덧붙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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