며칠 전 SNS에 ‘언론중재법’ 개정안을 반대하는 글을 썼다가 이런 댓글을 받았습니다. “당신이 허위보도 피해자가 돼도 이런 소리를 할꺼죠?” 그래서 문득 5년 전이 떠올랐습니다.

허위 사실로 비난했던 문화일보

당시 저는 A씨의 산재 소송을 대리하고 있었습니다. 삼성 반도체 공장에서 일하다 뇌종양에 걸려 돌아가신 A씨의 아내가 산업재해 피해자임을 입증해야 했습니다. 그런데 2016년 4월 문화일보 방승배 기자가 그 소송과 관련해 저를 비난하는 칼럼을 썼습니다. 제가 “의뢰인을 ‘볼모’로 소송 업무 외의 일을 하고 있다”고 하더군요. “변호사로서 ‘법조윤리’를 잊어버린” 저의 행동이 “삼성 직업병 문제의 온전한 해결에 오히려 걸림돌이 되고 있지는 않은지 차분히 따져볼 일”이라고도 했습니다. 칼럼 제목부터가 무려 “변호사 본분 잊은 반올림 활동가”였습니다.

방 기자가 저에 대해 ‘걸림돌’ 운운했던 이유는 두가지였습니다. A씨에게 두 차례나 소송고지를 하지 않았다는 것과 A씨 소송에서 “산재 입증과 거리가 먼 자료를 무차별적으로 요구”했다는 것이죠. 둘 다 팩트부터 틀렸습니다. 특히 “무차별 요구” 주장은 완전한 거짓이었습니다. 그 자료들은 법원이 산재 입증과의 관련성을 인정해 삼성에 자료 제출을 ‘요청’하거나 ‘명령’한 자료였고, 산재 인정 판결에서 증거로 채택된 자료였으니까요. 당시 법원의 자료제출 요구를 거부하는 삼성의 논리가 “사건과 관련이 없다” 였습니다. 말하자면 방 기자 칼럼은 삼성의 그런 면피성 주장을 사실로 전제해 오히려 저를 비난한 것이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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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6년 4월15일 문화일보 칼럼. 

문화일보 상대 손해배상 소송

저는 문화일보에 대한 소송을 고민했습니다. 처음부터 이길 자신은 있었습니다. 워낙 말도 안 되는 칼럼이었으니까요. 그럼에도 소송은 참 번거로운 일입니다(이 소송도 무려 1년5개월이 걸렸습니다). 그리고 공적 사안에 대한 기사를 이유로 언론사에 소송을 거는 것은 조심스러워야 한다고 생각했습니다. 자칫 누군가의 입을 틀어막는 결과가 되면 안 되니까요.

그럼에도 저는 결국 소송에 나섰습니다. 첫 번째 이유는 해악이 너무 컸기 때문입니다. 반도체 직업병 피해가족들로 하여금 ‘반올림’과 같은 시민단체에 강한 불신을 갖게 하는 칼럼이었으니까요. 실제 A씨는 이 칼럼으로 인해 저와 ‘반올림’을 의심하기 시작했습니다. 칼럼 내용 처럼 소송에서 ‘딴짓’을 하고 있다고 말이지요. 만일 이런 칼럼이 계속 나온다면 직업병 피해자들이 더 이상 제보하지 않을 것이고, 그래서 ‘반도체 직업병 문제’는 은폐되고 말 것입니다. 삼성이 원하던 대로 말이지요. 그리고 A씨 사건. 저는 당시 A씨를 겨우 설득해 소송을 계속 맡게 됐고, 2017년 대법원에서 결국 승소 판결을 받아냈습니다. 반도체 노동자의 뇌종양 사망을 산업재해로 인정한 첫 사례였습니다. 이런 칼럼이 계속된다면 그 판결이 나올 수 있었을까요? 잘 모르겠습니다. 어쩌면 이 칼럼의 해악은 방승배 기자가 막연히 생각했던 것 보다 훨씬 더 컸을지 모릅니다.

소송에 나서게 된 두 번째 이유는, 이 칼럼이 분명히 선을 넘었다고 생각했기 때문입니다. 저를 두고 “산재 입증과 거리가 먼 자료를 무차별적으로 요구해 왔다”고 쓰면서, 제가 실제 소송에서 어떤 자료를 요구했는지 취재하지 않았으니까요. 제가 A씨 소송에서 “2013년 안전보건 진단 보고서를 요구했다”고 썼는데, 그 보고서가 “산재입증과 거리가 먼 자료”도 아닐 뿐더러 정작 그 소송에서 그 보고서를 요청한 사실도 없었습니다. 소송 기록만 살펴봤더라도 충분히 알 수 있는 사실인데 그조차 하지 않았던 것이죠. 그래서인지, 소송에서 칼럼의 “무차별 요구” 부분이 거짓이라는 저의 주장에 대해 문화일보는 이렇게 반박하더군요. “삼성전자의 의견을 그대로 전달한 것에 불과합니다.”

소송 결과, 법원은 문화일보가 허위 사실로 저의 명예를 훼손했다며 500만원을 배상하라고 판결했습니다. 당연한 결과였습니다. 오히려 놀라운 것은 그 후 문화일보 태도였죠. 1심 판결이 나오자 항소하지 않고 바로 배상금을 보내더군요. 그때 저는 그런 생각을 했습니다. ‘아, 허위 기사로 누가 피해를 보더라도 얼마 되지도 않는 배상금을 물어주면 그만이라고 생각하는 구나. 그래서 그렇게 기사를 막 쓰는구나.’

그래서 저는 예전부터 악의적 허위 보도에 대한 ‘징벌적’ 손해배상이 꼭 필요하다고 생각했습니다. 이 따위 생각을 하지 못하도록, 나쁜 기사 하나로 기자 개인은 물론 언론사 전체가 심각한 타격을 입을 수 있다는 경계심을 갖도록 해야 한다는 것이지요.

[관련기사: 문화일보 ‘반올림 활동가 왜곡보도’ 5백만원 손해배상]

▲지난달 19일 국회 문화체육관광위원회 전체회의에서 국민의힘 의원들이 언론중재법 개정안 처리에 반발하는 모습. ⓒ연합뉴스
▲지난달 19일 국회 문화체육관광위원회 전체회의에서 국민의힘 의원들이 언론중재법 개정안 처리에 반발하는 모습. ⓒ연합뉴스

언론중재법 개정안의 경우

지금 여당이 강하게 추진하고 있는 ‘언론중재법’ 개정안이 과연 그러한 경계심을 갖게 하는 법일까요? 잘 모르겠습니다. “전년도 매출액 고려 손해액 5배 넘지 않는 범위”의 배상액이 과연 충분한가? 라는 의문도 있고, 공익 보도라는 이유로 징벌적 손해배상 대상에서 제외되는 범위가 너무 넓지 않은가? 라는 의문도 있습니다.

뿐만 아니라 ‘허위·조작보도’ 정의 규정 및 ‘고의 또는 중과실’ 추정 규정에 대한 우려도 있습니다. 그 규정들의 모호성 때문입니다. 징벌적 손해배상 대상이 되느냐 안되느냐 판단, 즉 제가 5년 전 문화일보에 대해 가졌던 ‘선을 넘었다’는 판단은 누구나 쉽고 명확하게 할 수 있어야 하는데, 지금 법안은 그렇지 못한 것 같습니다. 그처럼 모호한 부분은 고스란히 기자들의 취재와 보도를 위축시키고, 공익 기사에 대한 보복 소송을 시도하게 하는 영역이 될 것입니다. 요컨대 효과는 강력하되 요건은 명확한 징벌 제도가 돼야 하는데, 지금의 언론중재법은 양쪽 다 부족해 보입니다.

솔직히 저는 민주당이 왜 이토록 논란이 많을 수 밖에 없는 법안을 내놨는지 모르겠습니다. 더 깊이 고민하고 주의했다면, 시민사회 진영과 언론단체 일부도 기꺼이 지지할 수 있는 법안을 만들 수 있지 않았을까요? 물론 그런 법안이 나왔더라도 제1야당과 다수 언론은 길길이 반대했겠지만 그때 반대는 충분히 극복할 수 있었다고 봅니다. 더 넓은 단위에서 지지받을 수 있는 법안이 나왔다면 말이지요. 언론 개혁에 대한 국민적 공감대가 그 어느 때보다 큰 시기이기도 하니까요.

그리고 언론 종사자들이 이번 개정안에 반대하며 ‘자율규제’가 만능인 것처럼 주장하는 모습에는 화가 납니다. 끝없이 반복되는 산업재해 문제와 관련해 기업들이 스스로 잘하면 된다, 중대재해처벌법은 경영 탄압이다, 라고 주장했던 것과 뭐가 다른지 모르겠습니다. 언론사들이 속한 단체의 규제 권한을 강화하는 것도 하나의 방안은 될 수 있겠습니다. 다만 아주 강력한 규제에 언론사들이 동의하고 따르도록 만들어야 겠지요. 그리고 그것만으로 안 된다는 생각도 함께 하면 좋겠습니다. 악의적 허위 보도에 대한 법률적 책임을 강화하는 것은 이미 거스를 수 없는 흐름이라고 저는 생각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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