범여권 인사들을 겨냥한 검찰의 ‘고발 사주 의혹’을 둘러싸고 여·야 공방이 점입가경이다. ‘손준성 검사→김웅 미래통합당 후보(현 국민의힘 의원)→뉴스버스 제보자’ 순서로 알려진 고발장 전달 사건이 제보자 등장과 함께 ‘국가정보원 게이트’로 쟁점화하면서다.

자신이 제보자라고 밝힌 조성은씨는 지난 10일 오후 JTBC 뉴스룸을 통해 자신의 실명과 입장을 밝혔다. 제보자가 직접 언론 앞에 얼굴을 공개한 것이다. 조씨는 지난해 총선 무렵 고발장을 전달한 김 의원이 자신에게 “(고발장은) 꼭 대검 민원실에다가 접수해야 하고, 중앙지검은 절대 안 된다”고 밝혔다고 말했다.

이날 인터뷰는 윤석열 검찰총장 시절의 검찰이 야당을 통해 최강욱·유시민 등 범여권 인사와 검찰을 비판했던 기자들에 대한 고발을 사주했다는 기존 의혹을 제보자 조씨 입으로 직접 제기하는 내용이었다. 하지만 JTBC 앵커와 조씨 사이 오간 질의응답에서 윤석열 이름 석 자가 언급된 것은 한 차례뿐이었다. 조씨가 직접 언론에 등장했음에도 검찰의 고발 사주를 윤 후보가 직접 지시했다고 단언할 만한 구체적 근거는 현재까지 존재하지 않는다. 

▲ 조성은씨는 지난 10일 오후 JTBC 뉴스룸을 통해 자신의 실명과 입장을 밝혔다. 사진=JTBC 뉴스 갈무리
▲ 조성은씨는 지난 10일 오후 JTBC 뉴스룸을 통해 자신의 실명과 입장을 밝혔다. 사진=JTBC 뉴스 갈무리

같은 날 TV조선은 “이 사건을 최초 보도한 인터넷 매체가 제보를 받고, 첫 보도를 내기 직전인 지난달 초 조씨가 서울 모처에서 박지원 국가정보원장을 만난 사실을 확인했다”고 보도했다. 지난달 서울 도심의 한 호텔 식당을 찾은 조씨의 SNS 사진을 바탕으로 “당시 조씨가 식사를 함께 한 인사는 박지원 국정원장으로 확인됐다”는 것이다.

TV조선은 “인터넷 매체 뉴스버스가 조씨로부터 텔레그램 대화 캡처를 제보 받았다고 밝힌 날짜인 지난 7월21일과 첫 보도가 나온 9월2일 사이 시점”이라고 덧붙였다. 박지원 국정원장은 “(조씨와) 자주 만나는 사이이고 그 이후에도 만났다”면서도 “이번 사건과 관련한 대화는 전혀 없었다”고 밝혔다.

조씨도 11일 자신의 SNS에 “이 사건 본질은 적어도 저와 관련해선 2020년 4월3일~8일 이미 종료된 범죄 사건이라는 것”이라며 “이 시기 이후 특정인들과 식사를 했느니 등 여부는 애초부터 이 사건과 연관될 여지가 없다”고 밝혔다.

조씨는 “박지원 대표님은 법사위를 오래 하셔서 윤석열 전 총장과도 친분이 있으신 것으로 알아 그 어떤 상의를 할 대상으로 고려하지도 않았다”며 “애초부터 이미 ‘조작타령’, ‘추미애 타령’, ‘박지원 타령’ 등등으로 프레임 씌우기를 시도하려는 것은 충분히 예상했던 바 그것을 방지하기 위해 모든 자료를 가장 먼저 수사기관에 제출했다”고 반박했다.

수세 국면이던 윤석열 캠프는 대대적 공세에 나섰다. 윤 후보 캠프 총괄실장인 장제원 국민의힘 의원은 12일 기자회견을 통해 “박지원 국정원장이 야당의 유력 주자를 제거하기 위해 대선에 개입한 의혹”이라고 규정하며 “국정농단이자 국기문란행위로 대한민국의 민주주의를 말살하려는 최악의 사건”이라고 목소리를 높였다. 윤 후보 측은 13일 박 원장을 국정원법, 공직선거법 위반 혐의 등으로 고발키로 했다.

국정원의 선거 개입으로 규정하기엔 ‘만남’ 외 근거는 부실하다. 그러나 박 원장의 부적절한 처신을 비판하는 목소리는 나온다. 시사평론가 유창선씨는 “그(박지원)가 실제로 개입했는지 여부는 알 수 없다. 박지원이 주도하지는 않았을 것으로 생각되지만, 최소한 조성은이 상의했을 가능성은 열려 있고, 국정원장은 그것만 갖고도 큰 파장이 생겨날 수 있는 위치”라고 비판했다.

▲ 윤석열 국민의힘 대선경선 예비후보. 사진=윤석열 캠프
▲ 윤석열 국민의힘 대선경선 예비후보. 사진=윤석열 캠프

조씨는 JTBC 인터뷰 이후 언론에 적극적으로 목소리를 내고 있다. 윤 후보를 겨냥해 추가 의혹을 제기하기도 했다. ‘기자 사찰’ 의혹이다. 그는 12일 조선일보 인터뷰에서 “지난해 검찰이 ‘검·언 유착’ 의혹 등과 관련해 언론인들을 내사 또는 사찰한 정황이 있다”고 주장했다.

조씨는 이날 인터뷰를 통해 “국민의힘 김웅 의원이 지난해 4월3일 손준성 대검 수사정보정책관으로부터 받아 저에게 텔레그램으로 전달한 고발장을 보면, 피고발인에 황희석·최강욱 등 여권 인사뿐 아니라 여러 언론인들이 실명으로 기재됐고, 이 기자들의 각종 활동상이 상세하게 파악돼 있다”면서 “수사기관이 아니면 알 수 없는 내용이 가득하다. 고발장이 아니라 거의 공소장 수준”이라고 밝혔다.

그는 이어 “이 고발장을 보면, 어느 기자가 누구를 취재했는지, 여권 누구와 어떻게 공모했는지 적시하고 있다”며 “이런 것은 검찰이 문제 삼은 보도가 나오기 전부터 이 보도를 했던 기자들을 사전에 내사 또는 수사했던 것은 아닌가 하는 의구심을 갖게 한다”고 주장했다.

뉴스타파, MBC 기자들의 취재 과정을 상세하게 고발장에 적시해놓고 있다는 게 조씨의 주장이다. 그러나 고발장 내용은 뉴스타파·MBC 보도 취재원인 지아무개씨 행위를 주로 서술하거나 두 매체 보도 내용과 취재 과정 등을 요약한 것이다. 통상 사찰이라고 말하는 기자 개인 행적이나 신상정보, 뒷조사 내용 등을 기록했다고 보긴 어렵다.

더구나 현재 언론에 알려진 ‘2020년 4월3일’ 고발장에는 전송 시점 이후에나 알 수 있는 내용들이 포함돼 있어 논란을 부르고 있는 상황이다. ‘박지원 게이트’ 만큼이나 ‘검찰의 기자 사찰’이라는 워딩 역시 현재로서는 과장됐다고 봐야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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