더불어민주당·국민의힘 8인 협의체가 오는 27일 본회의에서 언론중재법 개정안을 처리하기로 합의한 가운데 언론 현업단체와 사용자단체가 개정안에 반대하며 언론피해구제 대안으로 ‘통합자율규제기구’를 내놓기 위한 논의에 속도를 내고 있다. 핵심은 기사 내용심의를 통한 포털에서의 노출 제재 규제다. 

신문협회, 방송협회, 인터넷신문협회, 신문방송편집인협회 등 사용자단체와 기자협회, 언론노조, 방송기자연합회, 여기자협회 등 현업단체를 포함한 8개 단체는 지금껏 자율규제기구가 형식적으로 운영되어온 측면이 있으며 강력한 실효성을 담보한 통합자율기구를 만드는 데 뜻을 모은 것으로 전해졌다.

앞서 언론노조 등 언론현업 5단체는 언론 문제를 자율적으로 바로잡기 위한 방안으로 언론단체들과 인터넷뉴스서비스사업자, 언론‧법 학계 및 언론시민단체들이 추천하는 위원으로 구성된 ‘저널리즘 윤리위원회’(가칭)를 제안했다. 이후 지난 2일 현업단체들이 사용자단체와 첫 만남을 가졌고, 오는 23일 관련 기자회견을 예고했다. 자율기구 제재 강화를 바탕으로 언론중재법 개정안의 본회의 처리 명분을 없애겠다는 취지로 읽힌다. 

▲지난 1일 언론현업 5단체 기자회견 모습. ⓒ언론노조
▲지난 1일 언론현업 5단체 기자회견 모습. ⓒ언론노조

김동훈 한국기자협회장은 “논의의 궁극적인 목표는 방송통신심의위원회나 언론중재위원회처럼 정부 기관이 통제하는 심의기구가 아니라, 민간에서 자율적으로 국민이 납득할 수 있는 제재에 나서 언론의 신뢰를 회복하는 것”이라 설명하면서 “실효성 있는 기구를 만들기 위해 포털사업자와 플랫폼사업자까지 참여‧구성 범위에 포괄할 계획”이라고 밝혔다. 

이들이 생각하는 실효성 있는 자율규제는 포털에서의 ‘기사 노출중단’이다. 김동훈 회장은 “자율규제기구가 법적제재 권한은 없어도 포털 노출중단 결정은 가능할 수 있다”면서 “조선일보 조국 삽화 논란과 관련해 지금은 신문윤리위원회에서 경고 처분이 끝이지만, 만약 이런 사건이 재발한다면 자율기구 징계 결정에 따라 바로 기사를 노출 중단하거나 또는 포털에서 일정 시간 해당 매체의 노출을 중단하는 실효적 조치를 하는 식”이라고 전했다. 

기존 포털 뉴스제휴평가위원회(제평위)가 언론사의 네이버·다음 입점과 퇴출을 관리하고 있지만 ‘내용 심의 및 규제’는 하지 않고 있는데, 통합자율규제기구에선 기사 내용 심의 및 규제에 나서겠다는 것이다. 김동훈 회장은 “포털과는 아직 소통을 못 했다”고 전했으며 “향후 한국인터넷기업협회와 한국방송채널진흥협회 등에 접촉할 생각”이라고 전했다. 

이 같은 아이디어는 당장 실효적 제재가 가능해 보이지만 기존 제평위 구조와 유사한 통합기구가 또 하나 만들어져 제평위가 하지 않았던 민감한 기사 내용심의에 제재까지 나서겠다는 것이어서 역으로 표현의 자유가 위축될 수 있다는 반론도 있다.

▲게티이미지.
▲게티이미지.

포털 뉴스제휴평가위원인 심영섭 경희사이버대 미디어영상홍보학과 겸임교수는 “제평위는 사적 계약에 의해 계약조건을 위반했느냐만 보기 때문에 위헌 소지가 없다. 그러나 통합자율규제기구의 경우 언론계 스스로 기사를 검열하겠다는 셈이어서 위헌소지가 있을 수 있다”고 설명했다. 

심영섭 겸임교수는 “신문윤리위원회 같은 자율기구에는 제재수단이 없다. 만약 통합자율기구에 권한을 부여해 포털 뉴스 삭제를 명령하는 것은 권한 밖의 일로, 법적 강제력을 갖는 순간 위헌 소지가 있을 수 있다”고 전하면서 “결국 자율적으로 규약에 따라 삭제 등의 제재를 준수해야 하는데 이 경우 규약을 준수했을 때 민·형사소송에서 벗어날 수 있다는 식의 인센티브가 있어야 한다”고 지적했다. 이래야 일사부재리 원칙에도 맞다. 

하지만 이를 위해선 통합자율기구에 행정기구적 권한을 줘야 하는데 이 역시 위헌 소지가 있어서, 결국 포털 기사 삭제같은 강력한 제재를 통합자율기구가 권고해도 회원사들이 따르지 않을 것이란 회의적 시각이 있다. 

심영섬 겸임교수는 “제평위가 지금 기사 내용 심의를 못하는 이유가 다 있다. 내용 심의하면 위헌이고, 검열이다”라고 전하면서 “결국 통합자율기구도 따르지 않으면 아무 의미가 없다. 인센티브는 결국 소송면제인데, 소송면제를 제공할 순 없다. 언론사 입장에서도 권고를 수용하게 되면 잘못을 인정하게 되는 셈이라 소송에서 불리한 위치에 가는데 받아들일 리 없다”고 지적했다. 

이 때문에 사용자-현업단체 협의체 내에서는 ‘협약서’를 쓰자는 논의도 나오고 있다. ‘미디어바우처’를 인센티브로 활용하자는 제안도 있는 상황이다. 성재호 방송기자연합회장은 지난 9일 국회에서 열린 한 토론회에서 “언론계 내부에서 마땅한 자율규제기구가 없었던 게 사실”이라며 “언론 스스로 악의적 보도에 대한 책임을 규제하고 불이익을 주고 통제해 보도 관행을 바꿔나갈 수 있게끔 노력하겠다”고 밝혔다. 

▲게티이미지.
▲게티이미지.

하지만 이 같은 통합자율규제기구 움직임에 회의적 시각도 있다. 오랜 시간 삼성직업병 피해자를 변호했으며 KBS ‘저널리즘토크쇼J’에서 미디어비평가로 출연했던 임자운 변호사는 “언론 종사자들이 개정안에 반대하며 ‘자율규제’가 만능인 것처럼 주장하는 모습에 화가 난다. 끝없이 반복되는 산업재해 문제와 관련해 기업들이 스스로 잘하면 된다, 중대재해처벌법은 경영 탄압이다, 라고 주장했던 것과 뭐가 다른지 모르겠다”고 지적했다. 

임자운 변호사는 “언론사들이 속한 단체의 규제 권한을 강화하는 것도 하나의 방안은 될 수 있겠지만 아주 강력한 규제에 언론사들이 동의하고 따르도록 만들어야 한다. 그리고 그것만으로 안 된다는 생각도 함께 하면 좋겠다”면서 “악의적 허위보도에 대한 법률적 책임을 강화하는 것은 이미 거스를 수 없는 흐름”이라고 밝혔다. 

언론인권센터는 14일 성명을 내고 “그동안 언론으로 인한 보도 피해, 신뢰도 하락 등 언론의 많은 문제가 꾸준히 제기되어왔다. 그때마다 언론은 자정을 말해왔다. 그러나 근본적인 문제는 해결되지 않았고 오히려 새로운 미디어 환경에서의 문제들까지 쌓이고 있다”며 이번 통합자율규제기구 논의를 두고 “언론중재법 개정안 통과 저지를 위한 면피용 제안이 아닌지 의심스러운 이유”라고 지적했다.

언론인권센터는 “언론은 언론중재법을 시민들의 피해구제 관점에서 바라봐야 할 필요가 있다. 언론중재법 논의가 시작된 배경을 다시 돌아보고 언론이 해야 하는 역할에 대해 고민해야 한다. 지금까지 자율규제로 지켜지지 않았던 문제들을 인정하고 개선의 태도를 보여야 할 것”이라고 강조했다. 8인 협의체를 구성한 양당을 향해서는 “피해구제의 필요성을 깨닫고 실질적 피해 구제 방안에 대해 논의해야 한다”고 요구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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