도무지 지나침을 모른다. 101세 철학자는 한가위 연휴인 일요일에도 MBN과의 인터뷰에서 “제일 먼저 해야 할 일은 편 가르기 없애기”라며 영어 문화권에 사는 사람들을 보면 흑백논리가 없다고 주장했다. 언론과 기회 닿을 때마다 흑백논리를 비판하는 김형석 전 철학교수다.

하지만 이상하다. 흑백논리를 비판하는 철학자 자신이 흑백논리에 흠뻑 사로잡혀 있다. 더구나 다가오는 대통령선거에 편향적 발언을 거침없이 쏟아낸다. 기실 바로 그래서 조중동 신방복합체가 부쩍 그를 부각하고 있다. 자신들의 이해관계와 딱 맞아떨어지기 때문이다.

▲ MBN 시사스페셜-김형석 명예교수 직격 인터뷰 “제일먼저 해야 할 일은 편 가르기 없애기” 유튜브 갈무리
▲ MBN 시사스페셜-김형석 명예교수 직격 인터뷰 “제일먼저 해야 할 일은 편 가르기 없애기” 유튜브 갈무리

조선일보가 101세 철학자를 우려먹는 풍경은 안쓰럽기조차 하다. 조선닷컴은 그가 문재인 정부 들어 “나라가 무너지고 있다”고 개탄했다는 발언을 대대적으로 부각했다. 그 인터뷰를 대서특필한 날, 조선일보는 “늑대가 자기들은 안 잡아먹을 줄 아나” 제목으로 류근일 전 주필의 칼럼을 실었다. 83세의 그는 지금 대한민국에서는 최후의 결전이 벌어지고 있다며 “자유주의 진영과 좌파 파시즘 세력의 싸움이 그것”이란다. 더 나아가 “대한민국이냐 반(反)대한민국이냐의 사생결단”이란다.

참으로 궁금하다. 대체 그는 누구를 염두에 둔 걸까. 그가 말하는 “온건 진보를 수정주의로 매도하는” 이들은, 한국에 있다는 “좌파 탈레반”은, “좌파 파시즘”은 누구를 지칭하는 걸까.

우리 시대의 철학자라라면, 더구나 ‘원로’라면 바로 조선일보가 노상 펴나가는 흑백논리를 바로 잡아주어야 옳다. 논리학의 상식에 ‘허수아비 때리기 오류’가 있다. ‘상대의 주장을 반박하기 쉽도록 왜곡한 후 그것을 반박하는 오류’를 83세 언론인과 101세 철학자가 난형난제로 펴간다. 대한민국 언론의 수치요, 철학의 희화화다.

101세 철학자는 숱한 인터뷰나 기고문에서 조중동의 오래된 흑백논리를 전혀 비판하지 않는다. 아니, 문제의식조차 없어 보인다. 인터뷰를 보자. 조선일보 기자가 “흑백논리와 편 가르기가 고질적인 문제”라고 묻는다. 김 교수가 답한다. “영국이나 미국 사람을 만나보면 흑백논리가 없다. 우리는 조선왕조부터 원수 갚느라 다 죽이고 은혜 갚느라 끼리끼리 뭉쳤다… 세계는 다원사회로 가고 있다. 진보냐 보수냐, 좌냐 우냐는 낡은 생각이다.”

▲ 조선일보 “北서 살 때 경험해보니 언론통제는 자유통제 신호… 文 대통령은 시계를 거꾸로 돌리고 있다” 기사 갈무리. 사진=조선일보 홈페이지
▲ 조선일보 “北서 살 때 경험해보니 언론통제는 자유통제 신호… 文 대통령은 시계를 거꾸로 돌리고 있다” 기사 갈무리. 사진=조선일보 홈페이지

질문한 기자와 답한 철학자 공히 허수아비 때리기, 유체이탈의 오류에 갇혀있다. 심지어 식민사관 인식마저 묻어난다.

김 교수는 문재인 정부를 “사회주의적 경제관을 절대시하는 과오”를 범한다거나 “150년 전 계급투쟁의 폐습을 계승”한다는 주장을 펴왔다. 조선일보의 내로라하는 전‧현직 주필들이 문재인을 좌파정권으로 몰아치는 수법과 똑같다.

하지만 냉철히 짚어보자. 바로 그것이 흑백논리의 전형 아닌가. 한국의 부익부빈익빈 경제 질서에 대해 조금이라도 개혁 정책을 펼라치면 ‘좌파’로 훌닦고 있지 않은가. 대체 문재인 정부의 어떤 정책에서 ‘사회주의적 경제관의 절대화’를 읽을 수 있단 말인가.

사대주의 사고가 또렷한 그의 발언도 짚어보자. 유럽 정치가 그의 말처럼 대화로 문제를 풀어가는 이유는 보수정당과 진보정당이 정권을 주고받는 틀이 마련되어 있기 때문이다. 문재인 정부가 사회주의 경제관을 절대시하는 정권이라는 김 교수의 잣대로 본다면, 그가 칭송하는 영국‧프랑스‧독일에서 사회민주당 계열의 정부가 집권해 복지정책을 편 사실은 뭐라 할 것인가. 그들은 극좌란 말인가. 우리는 진보정당이 국회에서 원내교섭단체를 가진 ‘경험’도 없다.

이승만, 박정희, 전두환 시절 흑백논리가 대한민국을 지배했다. 철학자 김형석은 그 시대의 흑백논리에 침묵했다. 그리고 지금 나라가 무너진다며 흑백논리로 소리친다. 과거에도 그랬듯이 지금도 젊은 세대를 오도할까 우려스럽다. 나라가 무너지는 상황 아니니 편안히 노후를 보내시길 충정으로 권해드린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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