광복 70주년을 맞는 8월 15일이 지났다. 사장 교체를 앞둔 공영 방송은 박근혜 대통령을 내세워 적극적인 애국 마케팅을 펼쳤고 보수 언론은 이에 부합하며 ‘건국절’이라는 프레임 뒤집기에 나섰다. 

KBS는 지난 15일 서울 상암월드컵 경기장에서 ‘광복 70주년 특집 프로그램 국민대합창-나는 대한민국’ 본행사를 열고 박근혜 대통령을 특별 게스트로 초청했다. 지상파 방송사 중 유일하게 대대적으로 광복 70주년 기념 행사를 준비한 KBS는 안팎에서 조대현 사장의 연임 프로젝트라는 비판을 받았다. 

KBS노동조합과 전국언론노동조합 KBS본부는 △갑작스러운 프로그램 편성 △지상파 방송사 중 유일한 광복 70주년 특집 프로그램 편성 △자체 제작 단일 프로그램에 50억원이라는 거액 예산 투입 △예산 부족으로 기자를 기업 협찬·광고에 동원하고 타 프로그램 예전 전용 등 준비되지 않은 프로그램이 임기 말 사장의 치적을 쌓기 위해 갑작스럽게 추진되고 있다는 정황을 꾸준히 제기했다. 

박 대통령의 참석은 조 사장의 연임을 위한 ‘무리수’라는 평가가 지배적이었다. 실제로 KBS는 상암월드컵 경기장에서 본행사가 열린 하루 뒤인 16일 <뉴스9>에 박근혜 대통령과 조대현 사장을 같은 화면에 담은 장면을 보도하기도 했다. 

   
▲ KBS <뉴스9> 16일 방송 화면.
 

 

하지만 박 대통령이 지난 13일 ‘나는 대한민국’ 본행사에 참석할 것이라는 소문이 미디어오늘 단독 보도로 알려진 후 실제로 상암월드컵 경기장 본 행사에 참석해 ‘우리의 소원은 통일’, ‘애국가’를 제창하면서 행사의 주인공은 박 대통령이라는 인상을 심기에 충분했다.  

박 대통령은 “지난 70년을 돌아보면 우리 국민들은 한 마음으로 뭉쳐서 세계가 놀란 경제 발전과 위대한 역사를 만들어왔다”며 산업화의 긍정적인 부분만 언급했으며 “광복의 기쁨을 완성하는 마지막 길이 되는 한반도 통일을 이루기 위해 모든 국민들의 힘과 마음을 하나로 모아주시기 바란다“고 말했다. 일부 보수 세력과 보수 언론이 최근 띄우고 있는 ‘건국절’과 ‘통일’ 주장의 완곡한 변형이었다. 

KBS 한 PD는 “‘국가주의 행사’나 ‘정부 홍보 방송’이라는 우려를 전달했음에도 박 대통령이 출연했다”며 “KBS가 북조선TV와 무슨 차이가 있겠느냐”고 강하게 비판했다. 정연우 세명대 광고홍보학과 교수는 “광복절을 계기로 박근혜 대통령과 조대현 사장의 이해관계가 맞아 떨어지면서 각자의 기반을 강화하기 위한 정치 이벤트로 전락했다”고 비평했다. 

일부 보수인사들의 ‘건국절’ 주장은 박근혜 대통령 뿐 아니라 보수 언론을 통해 접점을 넓혀가고 있다. 박근혜 대통령은 광복절을 맞는 지난 15일 열린 정부 공식 행사 중 경축사를 통해 “오늘은 광복 70주년이자 건국 67주년을 맞는 역사적인 날”이라며 광복과 건국을 함께 언급했다. 

조선일보는 같은 날자 1면 <진정한 광복은 통일이다> 머리기사를 통해 “광복 70주년을 맞아 여야 정치권에서 보수·진보를 아우르는 새로운 한반도 통일 방안을 마련해야 한다는 목소리가 동시에 나왔다”며 광복 70주년과 통일을 강조했다. 

   
▲ ▲ 박근혜 대통령이 15일 서울 상암월드컵경기장에서 열린 KBS 광복 70주년 특집 프로그램 국민대합창-나는 대한민국 프로그램에 참여해 김연아씨를 비롯한 참석자들과 애국가를 부르고 있다.
 

 

조선일보는 사설에서 “광복은 지금껏 미완의 상태로 남아 있다”, “광복을 완성하고 대한민국이 새롭게 도약하기 위해서라도 통일은 더 이상 미룰 수 없는 과제”라고 거듭 강조했다. 

이는 1945년 일제에 해방된 ‘광복’의 의미를 축소하고 1948년 대한민국 정부 수립일 의미의 ‘건국’을 강조하는 인식이 바탕에 자리 잡고 있다. 이는 곧바로 남한 단독 정부가 아닌 통일 정부 건설로 나아가야 한다는 ‘통일론’의 당위성을 제공하기도 한다. 

문제는 이런 흐름이 1948년 이전까지의 ‘친일과 독립’이라는 구도를 은폐하고 남과 북, 좌익과 우익의 대립이라는 구도를 전면에 내세운다는 점이다. 

경향신문은 17일자 사설에서 “제헌헌법은 전문에서 ‘기미 3·1운동으로 대한민국을 건립해…민주독립국가를 재건함에 있어’라며 1919년 대한민국을 건국하고 1948년 재건했음을 분명히 했다”며 “대통령이 위헌 소지가 있는 발언을 하는 것은 부적절하다”고 지적했다. 

김승수 전북대 교수는 “사회를 어지럽히는 우익 일방의 사고를 깨우쳐줘야 할 언론이 그에 편승해 역사에 트집을 잡고 있다”며 “민족사관과 언론 보도가 사람들의 삶에 어떤 영향을 주는지를 중시하는 저널리즘이 필요하다”고 말했다. 

한편 이번 광복절에서 이런 애국 마케팅과 건국절 논란보다 눈길을 끈 것은 지난 15일 KBS ‘나는 대한민국’에 출연한 박 대통령과 김연아씨의 ‘손길’ 논란이다. 한 언론이 김연아씨가 손을 잡는 박 대통령의 손길을 뿌리쳤다고 보도한 이후 이는 18일 현재까지 논란이 계속되고 있다. 

저작권자 © 미디어오늘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