문재인 대통령이 지난 20일 ‘기자의 날’ 기념식에 축전을 보내 “언론 뒤에 따라올 수 있는 단어는 오직 자유다. 독재와 검열 언론 통제에 맞선 전남매일신문 기자들의 사직서 제출과 한국기자협회의 검열거부라는 용기 있는 행동이 있었기에 오월의 진실은 광장으로 나올 수 있었다”고 밝혔다. ‘기자의 날’은 1980년 5월20일 전두환 신군부의 언론 검열에 맞서 전국 기자들이 제작거부에 들어간 날을 기념하기 위해 2006년 제정됐다.

1980년 언론계 저항의 역사적 장면이 전남매일신문 기자들의 집단 사표다. 1980년 5월20일 기자들은 전남매일신문 사장에게 다음과 같은 내용의 사직서를 제출했다. “우리는 보았다. 사람이 개 끌리듯 끌려가 죽어가는 것을 두 눈으로 똑똑히 보았다. 그러나 신문에는 단 한 줄도 싣지 못했다. 이에 우리는 부끄러워 붓을 놓는다.” 이 사직서는 오늘날까지 광주민주화운동 당시 기자 정신의 ‘상징’으로 이어지고 있다. 

당시 검열거부를 주도하며 사표를 제출했던 박화강 전남매일 기자는 과거 미디어오늘과 인터뷰에서 “정부 발표만 나오는 신문은 더 이상 안 나오게 하는 것이 마지막 양심이라는 생각으로 사표를 썼다”고 회상했다. 당시 기자들은 공동 사표 2만 장을 인쇄해 광주 시내에 뿌렸고, 그날 밤 광주 시민들은 광주MBC 방송국을 불태웠다. 이후 박화강 기자의 사표는 반려됐으나, 그해 8월 해고됐으며 전남매일은 신군부의 ‘1도1사’ 계획에 따라 전남일보로 흡수됐다. 이후 박 기자는 1988년 한겨레 창간에 함께해 16년간 한겨레 광주 주재 기자로 활동했다.

▲1980년 5월20일 전남매일신문 기자들의 사직서. ⓒ박화강 전 전남매일신문 기자 제공
▲1980년 5월20일 전남매일신문 기자들의 사직서. ⓒ박화강 전 전남매일신문 기자 제공

박화강 기자는 이제 5·18민주화운동 관련자로 인정받을 수 있을 것으로 보인다. ‘기자의 날’ 다음날이었던 지난 21일 ‘5·18 민주유공자 예우에 관한 법률’ 및 ‘5·18민주화운동 관련자 보상 등에 관한 법률’ 개정안(민형배 더불어민주당 의원 대표 발의)이 국회 본회의를 통과했다. 신군부에 맞서 제작거부 투쟁을 벌이고 강제 해직된 80년 해직언론인들이 5·18민주화운동 관련자로 인정받을 수 있게 됐다. 해직언론인 및 유족은 보상심의를 거쳐 보상금을 받을 수 있다. 

전두환 신군부는 1980년 권력 찬탈 과정에서 언론 통폐합, 언론기본법 제정과 더불어 언론인 1000여 명을 불법 해직시켰고 심지어 ‘블랙리스트’를 만들어 취업을 방해했다. 박화강 기자 역시 취업이 쉽지 않았다. 불법 해직된 언론인들은 1984년 ‘80년 해직언론인협의회’를 만들어 저항을 이어갔다. 해직언론인협의회에 따르면 검열과 제작거부 투쟁으로 해직된 이 230여명이다. 

고승우 ‘80년 해직언론인협의회’ 공동대표는 지난해 ‘5·18 광주민주화운동과 5·20제작거부 운동 40년’ 기획세미나에서 “광주항쟁과 80년 언론인 해직은 동일한 시기에 동일한 취지로 발생한 동일한 역사적 사안”이라고 강조하면서 “그러나 그 같은 동질성이 인정받지 못한 부적절한 현상이 지난 세월 동안 지속된 것은 이 사회 반민주·반역사적 세력의 집요한 책동 결과”라고 주장했다. 그리고 늦었지만, 드디어 80년 해직언론인들이 5·18 광주민주화운동 관련자로 인정되었다. 보상금보다 가치있는 것은 ‘명예’다. 

 

한국기자협회 “1980년 언론투쟁이 광주항쟁과 하나가 되었다”

한국기자협회는 지난 25일 성명을 내고 “이로써 전두환 신군부의 광주학살 만행에 항거해 검열, 제작거부를 벌인 언론투쟁이 광주항쟁과 하나가 되었다”며 개정안 통과를 환영했다. 한국기자협회는 “1996년 5·18특별법 제정 당시 광주항쟁의 큰 틀과 내용이 담겼던 것과는 달리 80년 언론투쟁과 불법해직은 대상에 포함되지 못해 아쉬움을 남겼지만 이번 개정을 통해 언론인들의 투쟁이 법적으로 인정받음으로써 광주항쟁과 언론투쟁에 대한 역사 바로잡기에 한 발 더 다가서는 계기가 되었다”고 평가했다. 

한국기자협회는 “이번 입법 조치는 41년 전인 1980년 5월20일부터 27일까지 한국기자협회 소속 전국의 언론사들이 전두환 신군부의 광주학살에 항거해 검열거부와 제작거부 투쟁을 벌인 것에 대한 역사적, 법률적 의미를 부여하는 것으로 1980년 언론투쟁의 큰 매듭을 지은 것을 의미한다”고 강조했다. 그러나 “안타깝게도 1980년 해직언론인 가운데 근거 없이, 법적 절차 등을 전혀 거치지 않은 채 불명예스러운 명목으로 신군부의 블랙리스트에 기재된 해직 기자들이 아직도 수백여명”이라며 “이에 대한 적절한 법적 조치가 추가적으로 요구된다”고 밝혔다. 
 
한국기자협회는 “1980년 언론투쟁에 대한 역사적 자리매김이 이뤄진 것을 계기로 박정희 정권이 자행한 언론 탄압을 상징하는 75년 동아·조선 투쟁 등 해방 이후 전개된 언론 민주화투쟁 등에 대한 올바른 자리매김과 원상회복도 시급히 취해져야 한다”고 강조했다. 이어 “오늘의 언론은 5·18 민주화운동 정신이 현실 속에 정착할 수 있도록 노력해야 할 것”이라고 덧붙였다.

저작권자 © 미디어오늘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