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난달 25일 혈중알코올농도 면허 취소 수준의 만취 운전자가 성동구 뚝섬역 인근 도로에서 지하철 방음벽 철거 작업 중이었던 60대를 들이박은 사고가 발생했다. 윤창호법 시행 이후에도 좀처럼 사망사고가 줄지 않은 가운데 또 한 명의 희생자가 나온 것이다. 언론도 안타까운 사고를 조명했다.

언론 보도 제목은 두 갈래로 극명히 나뉘었다. 한쪽은 60대 피해자를 ‘노동자’라고 했고 다른 한쪽은 ‘인부’라고 했다. 노동자는 노동력을 제공해 임금을 받고 생활을 유지하는 사람을 일컫는다. 인부는 품삯을 받고 육체노동을 하는 사람이라고 정의한다. 노동자가 정당한 노동의 대가를 받는 사람이라는 의미가 강한 반면, 사회 통념상 인부는 하루 벌어 하루를 사는 사람을 낮춰 부르는 뉘앙스가 포함돼 있다.

과거 건설 노동 현장에서 일하는 사람을 ‘노가다꾼’으로 부를 때도 있었지만 건설 일용직, 건설 현장 노동자라고 순화해야 한다는 지적이 있었다. 국립국어원은 인부와 비슷한 뜻으로 쓰이는 일용잡급(日傭雜給)이라는 말을 일용직으로 다듬어야 한다고 지적했다. 2030세대에도 인부라는 말 자체는 낯설다. 2021년 ‘인부’라는 말을 쓰는 게 과연 맞는 용례일까.

언론이 건설 노동자 혹은 일용직 노동자라고 하면 될 걸 굳이 인부라는 말을 쓴 이유는 고급승용차를 몬 가해자와의 극적인 대비를 하기 위한 것일게다. 한 매체 기자는 “기사 본문에선 분명 노동자라고 썼는데 편집에서 기사 제목이 인부로 바뀌었다”며 “근로자를 노동자로 바꿔 부르자는 참에 굳이 인부라는 말을 쓴 건 이해되지 않는다”고 털어놨다.

인부라는 말이 틀린 것도 아니지 않냐고 항변할 수 있다. 하지만 말이라는 건 사회를 반영한다. 역으로 온전한 명명(命名)을 통해 사회 변화를 이끌 수도 있다. 우리가 쓰는 말의 쓰임은 사회와 연결돼 있기 때문에 언론도 신중해야 한다는 얘기다.

▲ 노동자. ⓒ gettyimagesbank
▲ 노동자. ⓒ gettyimagesbank

국회에서 ‘근로자의 날’을 ‘노동자의 날’로 법률(근로자의 날 제정에 관한 법률 개정안)을 바꾸자는 움직임도 같은 맥락이다. 국가 통제 의미가 담겨 ‘부지런히 일한다’라는 뜻의 근로라는 말을 가치 중립적 용어인 노동으로 바꾸자는 주장이다. 5월1일 ‘노동절’에 유급휴일을 인정받지 못하는 노동자도 있는데 ‘노동자의 날’로 바꿔 모든 노동자가 쉬게 하자는 내용도 담겨 있다.

근로자의 날은 노동이 존중받지 못한 세태를 반영했다. 과거 노동자는 불순한 무리였고, 노동조합은 빨갱이의 대명사였다. 노동자를 가린 법률부터 바꿔보자고 했지만 한국사회 문턱은 여전히 높았다. 지난해 여당 의원이 대표 발의한 개정안은 올해 환경노동위원회 고용노동법안심사소위를 통과하지 못했다. 5년 전 비슷한 개정안이 발의됐을 때 헌법에 근로라는 용어가 들어가 있고 다른 법률에도 미치는 영향이 크다며 반대하는 논리도 달라지지 않았다.

노동의 가치를 있는 그대로 받아들이자는 상식적 주장에 답을 내놓지 못한 건 노동을 천시한 언론 보도 탓도 크다. 지난달 27일자 “인명사고 나면 거의 공장 전체가 스톱… 수백억씩 손실”이라는 제목의 조선일보 보도를 보자. 노동자 사망사고가 발생하면 ‘중대 재해 등 발생 시 작업중지 명령·해제 운영기준’에 따라 작업중지를 하고 있는데 조선일보는 재계 관계자 말을 인용해 ‘사고와 직접 관계없는 장소’까지 적용해 피해가 막심하다고 주장했다. 노동 현장을 철저히 무시한 내용이다.

지난달 26일 화장지 생산업체 운송지에서 화물을 내리다 화물차 기사가 300㎏ 파지 더미에 깔려 숨진 사고가 발생했다. 공개된 CCTV 영상에 따르면 화물차 기사가 참변을 당하고 난 뒤 28분 만에 작업을 재개한 모습이 나온다. 현장에서 화물차 기사를 덮친 폐지 더미를 치우는 등 사고 현장까지 훼손하는 장면까지 나왔다.

중대 재해가 발생했을 때 즉시 작업을 중지시키고 안전상 조치를 취한 뒤 작업을 재개해야 한다는 산업안전보건법이 현장에서 지켜지지 않고 있는 것이 ‘진짜’ 현실이라고 보도하는 게 언론 역할이다. 교통사고를 당한 60대 피해자를 굳이 인부라고 쓴 것부터 우리 언론이 바뀌어야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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