방송통신위원회가 지난 21일 KBS 이사 지원자 55명과 MBC 대주주 방송문화진흥회(방문진) 이사 지원자 22명을 공개했다. 8월12일 방문진 이사 임기가 끝나고 8월31일 KBS 이사 임기가 끝나는 만큼 임기 종료 시점에 맞춰 양대 공영방송 이사진이 교체될 가능성이 높다. 전국언론노동조합·방송기자연합회·한국PD연합회·한국기자협회 등 언론 4단체가 “7월 임시국회에서 송영길 더불어민주당 대표가 공영방송 이사 추천 불개입과 7월 내 시민참여 공영방송법 통과를 선언하라”고 요구해왔지만 사실상 물 건너가는 분위기다. 

윤호중 민주당 원내대표는 지난 25일 취임 100일 기자회견에서 시급히 통과시켜야 할 ‘언론개혁 3법’으로 언론중재법 개정안, 신문법 개정안, 미디어바우처법을 언급했다. 공영방송지배구조 개선법의 경우 “민주당 미디어혁신특별위원회(미디어특위)와 국회 과학기술정보방송통신위원회(과방위) 위원들과 함께 논의하고 있는데, 거기서 논의가 마무리돼야 입법 절차를 말씀드릴 수 있을 것 같다”고 답했다. 지금껏 공영방송 이사는 7대4(KBS), 6대3(방문진)으로 여야 교섭단체 추천에 의해 암묵적으로 이뤄져 왔는데, 이대로라면 기존 관행대로 추천이 이뤄질 가능성이 높다는 게 언론계 분위기다. 

앞서 언론노조는 21일 오전 10시 윤호중 원내대표와 민주당 소속 이원욱 과방위 위원장, 조승래 간사 등과 ‘국민 참여 공영방송 법안’ 등 언론개혁 입법에 대해 1시간가량 긴급 협의를 진행했다. 이날 언론노조는 △현재 방송통신위원회가 진행하는 공영방송 이사선임 과정에 여당부터 선도적으로 개입하지 말 것 △국민 참여 공영방송 법안 입법 시간표를 7월 안에 확정할 것을 촉구했고, 민주당측은 “공영방송 이사선임에 개입하지 않겠다는 정치적 선언을 추진할 의사가 있으며, 이를 논의하기 위한 당내 절차를 밟겠다”고 했으며 “공영방송에 국민 참여를 보장하기 위한 입법 논의에도 속도를 내겠다”고 답했다. 

▲ 전국언론노동조합 집행부가 7월21일 오전 10시 국회에서 윤호중 더불어민주당 원내대표와 민주당 소속 이원욱 과학기술정보방송통신위원회(이하 과방위) 위원장, 조승래 간사, 김승원 미디어혁신특위 부위원장, 한준호 원내 대변인 등과 ‘국민 참여 공영방송 법안’ 등 언론개혁 입법에 대해 1시간가량 긴급 협의를 진행하는 모습. 사진=언론노조
▲ 전국언론노동조합 집행부가 7월21일 오전 10시 국회에서 윤호중 더불어민주당 원내대표와 민주당 소속 이원욱 과학기술정보방송통신위원회(이하 과방위) 위원장, 조승래 간사, 김승원 미디어혁신특위 부위원장, 한준호 원내 대변인 등과 ‘국민 참여 공영방송 법안’ 등 언론개혁 입법에 대해 1시간가량 긴급 협의를 진행하는 모습. 사진=언론노조

그러나 25일 윤호중 원내대표 발언은 진전이 전혀 없었다는 의미다. 더욱이 지난 6월17일 송영길 민주당 대표가 “공영방송 사장 후보자의 추천권을 국민에게 돌려드리겠다”고 말했고, 김용민 미디어특위 위원장은 “정치권에서 관행적으로 추천했던 KBS EBS 방문진 이사 추천을 제도적으로 정비하겠다”고 밝힌 시점에서 보더라도 전혀 진전이 없었다. 때문에 인내를 가지고 공영방송 입법 개혁을 주도하고 있던 언론노조는 격양된 분위기다. 

언론노조는 26일 성명을 내고 “그동안 민주당의 언행 불일치를 수도 없이 지켜보았지만 당내 책임자들과의 협의라는 점에 (21일 만남에) 일말의 기대를 걸었다. 그러나 윤호중 원내대표는 취임 100일 기자 간담회에서 공영방송 이사·사장 선임에 대한 정치적 기득권 포기를 전제로 한 지배구조 개선 법안 처리에 대해 또다시 구체적 시간표를 제시하지 않았다”고 비판했다. 이어 “민주당은 법을 고치지 못하면 이번 공영방송 이사와 사장 선임에 불개입한다는 선언이라도 하라는 언론노동자들의 요구에 무응답으로 일관하고 있다”고 덧붙였다.

언론노조는 “계속된 민주당의 언행 불일치와 약속 미이행은 결국 공영방송에 대한 정치적 기득권을 내려놓지 않겠다는 의도된 지연행위로 볼 수밖에 없다”고 판단한 뒤 민주당의 현 모습을 가리켜 “국민의힘과 불구대천의 원수처럼 싸우다가도 정치적 기득권을 지키는 일에는 어김없이 적대적 공생을 실현하는 구태”라고 강하게 비판했다. 

앞서 민주당은 지난 19일 과방위-미디어혁신특위 연석회의를 열고 1시간20분간 언론개혁법안 처리 방향에 대해 비공개 논의를 가졌다. 이날 회의에는 윤호중 원내대표, 이원욱 위원장, 조승래 간사 및 과방위 의원들과 미디어특위 소속 김용민 위원장, 김승원 의원 등이 참석했다. 이 자리에서 일부 의원은 언론 4단체의 ‘정치적 후견주의’ 비판과 관련, “국회도 국민을 대변하는 곳”이라고 주장한 것으로 전해졌다. 

현재 민주당 상황은 이미 단일안이 있지만 당 차원에서 공표를 미루고 있거나, 또는 미디어특위와 과방위의 입장이 엇갈려 단일안이 나오지 못했거나 둘 중 하나로 보인다. 만약 전자라면 공영방송 지배구조 개선 입장일 가능성이 높은데, 민주당이 이번 공영방송 이사 추천까지는 개입하고 법을 바꾸겠다는 의도로 읽힐 수 있어 논란은 불가피하다. 후자라면 당내에서 여전히 기득권을 포기하지 않는 세력이 있다는 의미로, 과거 민주당이 야당일 때의 입장과 비교해 ‘내로남불’이란 비판을 피하기 어렵다. 

언론노조는 77명의 공영방송 이사 지원자 중 “국민의힘과 더불어민주당 의원을 추천인으로 떳떳하게 명시한 후보, 노골적으로 ‘노영방송 척결’을 지원 동기와 직무수행 계획에 적은 후보, 공영방송의 공적 책무에 대한 어떤 이해도 없는 후보 등 부적격 인사가 넘쳐난다”며 “의도된 것이라고 볼 수밖에 없는 약속 불이행과 거대양당의 암묵적 공생 속에 공영방송 이사회는 다시 함량미달 부적격 인사들의 난장판으로 변질될 위기에 놓여 있다”고 주장했다. 

언론노조는 “더 이상 공허한 협의와 희망 고문에 매달리지 않겠다”며 강경투쟁을 예고했다. 앞서 성재호 방송기자연합회장은 “(지금 방식대로 뽑으면) 정권이 바뀌었을 때 새 집권당이 과거 집권당에서 뽑았던 사람을 가만 놔두겠느냐”고 되물으며 비극적인 공영방송 장악이 반복되어선 안 된다고 강조한 뒤 “도저히 7월에 (입법을) 못 하겠다면 올해 하반기에 법을 개정하되, 시행시기를 내년 1월로 약속해야 한다”고 밝혔다. 

한편 지원자들이 공개된 이후 언론노조 MBC본부는 △김도인 현 방문진 이사 △최기화 현 방문진 이사 △지성우 성균관대 교수 △차기환 전 방문진 이사 △함윤근 변호사를 “함량 미달 부적격 지원자 5인방”으로 꼽았다. 언론노조 KBS본부는 “지금까지 전력을 다해왔던 ‘공영방송 지배구조 정상화’ 입법 투쟁에 더욱 고삐를 조일 것”이라고 밝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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