국가인권위원회가 징벌적 손해배상제 도입을 골자로 한 언론중재법 개정안에 “개정 취지에는 공감하나 일부 신설 조항이 언론의 자유를 위축시킬 우려가 있다”는 의견을 국회의장에게 표명하기로 결정했다. 징벌적 손해배상의 청구조건인 고의‧중과실 추정요건은 삭제해야 한다고 밝혔다. 

국가인권위는 17일 공개한 국가위원회 결정문에서 “어디까지를 진실성을 갖춘 보도이고 허위의 사실에 기반한 보도로 볼 것인지 명확히 확정하기 어렵고, 다의적이고 중의적인 해석이 가능해 규제하고자 하는 ‘허위사실에 따른 언론보도’ 개념이 모호해질 우려가 있다”고 했으며 “조작보도 개념도 주관적이고 자의적인 해석에 맡겨질 가능성이 높다”고 밝혔다.

그러면서 “고의·중과실 추정요건으로서 보복적으로 허위·조작보도를 한 경우나, 기사의 본질적인 내용과 다르게 제목·시각자료를 조합하여 새로운 사실을 구성하는 등 기사 내용을 왜곡하는 경우는 그 내용이 매우 추상적이고 불명확하다”고 우려했다. 더불어 “언론보도 ‘매개’ 행위까지 징벌적 손해배상의 대상으로 삼는 것은 매개자인 인터넷뉴스서비스사업자에 대해 필요 이상의 책임을 부여한다는 비판을 피하기 어렵다”고 덧붙였다. 

이 같은 모호성으로 인해 “진정한 의미의 허위·조작보도 외에도 정치적 성향이나 이념이 다른 비판적 언론 보도나 범죄, 부패, 기업 비리 등을 조사하려는 탐사 보도까지도 허위·조작보도 규제 범위로 포섭시킬 가능성을 배제시킬 수 없고, 사전에 보도의 내용과 불법성 여부를 인지하기 어려운 인터넷뉴스서비스사업자에게도 허위·조작보도의 책임을 지울 수 있도록 함으로써 언론보도에 대한 위축효과를 가져올 우려가 있다”는 게 인권위 결론이다.

▲국가인권위원회. ⓒ국가인권위
▲국가인권위원회. ⓒ국가인권위

인권위는 “‘가짜 뉴스’로 인한 사회적 폐해와는 별개로, ‘가짜 뉴스’ 근절을 이유로 국민의 기본권을 제한하는 법률을 제정하려고 할 때는 국민의 인권보호를 위해 헌법에서 요구하는 ‘과잉금지의 원칙’이나 ‘명확성의 원칙’ 등이 엄격하게 준수될 필요가 있다”고 강조했다.

인권위는 언론중재법 개정안의 개선방안으로 “허위·조작보도 개념에 적어도 ①허위성 ②해악을 끼치려는 의도성 ③정치적‧경제적 이익을 얻으려는 목적 ④검증된 사실 또는 실제 언론 보도가 된 것으로 오인하게 하는 조작행위 등의 요건 등이 포함되는 것이 바람직하다”고 밝혔다. 또한 “고의·중과실 추정규정은 그 요건 개념이 추상적이고 불명확해 언론에 대한 부당한 위축효과를 가져올 수 있으므로 삭제가 바람직하다”고 밝혔다. 이어 “허위‧조작보도 개념 중 ‘매개’ 행위를 삭제해 인터넷뉴스서비스사업자를 징벌적 손해배상 대상에서 제외해야 한다”고 제안했다. 

이 같은 개선방안과 관련, 앞서 송영길 더불어민주당 대표는 16일 MBC ‘100분 토론’에 출연해 “고의‧중과실 추정 조항을 삭제하겠다”고 선언했다. 민주당은 개정안 통과를 예고한 27일 본회의까지 인권위가 제안한 대로 고의‧중과실 추정 조항 삭제와 허위‧조작보도 개념 구체화 등 수정 작업에 나설 가능성이 있다. 인권위는 개정안에서 신설된 징벌적 손해배상제와 열람차단청구권 신설 등에 대해선 판단을 내리지 않았다. 

한편 국가인권위는 이날 결정문에서 “언론의 자유는 언론사주의 자유나 기자의 특권이 아니라 시민의 권리로 발달해 온 것임에도 오히려 시민의 권리를 침해하고 언론의 자유를 악용하고 있는 ‘가짜 뉴스’의 폐해는 사회적으로 점점 심각해지는 상황인 만큼, 타인의 명예나 권리를 침해할 수 없다는 헌법적 제한을 받는 언론의 자유 역시 필요에 따라 제한될 수밖에 없고, 특히 언론은 그 책임성이 보다 강조되어야 하므로 개정안의 입법을 찬성하는 여론 또한 존재하고 있다”고 밝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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