90여개 언론·시민단체들로 구성된 언론장악저지공동행동이 15일 서울 용산구 대통령실 인근에서 기자회견을 열고 이른바 ‘언론인 회칼 테러’ 발언을 한 황상무 대통령실 시민사회수석 사퇴와 윤석열 대통령의 사과를 요구했다.

14일 MBC는 황 수석이 MBC 등 일부 언론사 출입기자들과의 식사 자리에서 “MBC는 잘 들어” “내가 (군)정보사 나왔는데 1988년 경제신문 기자가 압구정 현대 아파트에서 허벅지에  칼 두 방이 찔렸다”는 말을 했고, 정부 비판적 기사가 문제가 된 것이라는 취지로 발언했다고 보도했다. ‘해병대 채 상병 사망사건 수사외압 의혹’ 핵심 피의자인 이종섭 전 국방부장관이 호주 대사로 발령된 뒤 그가 출국금지라는 MBC 단독보도를 시작으로 비판이 거세지자, 대통령실 관계자가 이를 ‘공수처 야당 좌파 언론이 결탁한 정치공작’이라고 규정했다는 보도가 나온 날이었다.

언론장악저지공동행동은 기자회견에서 “대통령이 의혹의 꼭지점에 있는 사안에 대한 언론의 비판을 정치공작이라고 규정하자, 황 수석이 행동대장을 자처하며 ‘칼 몇 방 맞을 각오하라’며 비판 언론을 협박하는 장면은 우리에게 익숙한 조폭 느와르 영화의 한 장면과 정확히 겹친다”며 “최근 스웨덴의 민주주의 다양성 연구소는 윤석열 정부에 대해 ‘독재화가 진행 중인 나라’로 규정했다. 대통령의 복심인 수석비서관의 언론인 테러 협박은 교과서에서나 보던 군사독재 시절의 국가폭력이 광범위하게 일상화된 한국 민주주의의 참담한 현실을 증명하며, 국제사회의 냉혹한 평가가 사실임을 여지없이 드러내고 있다”고 주장했다.

▲2024년 3월15일 서울 용산 대통령실 인근 전쟁기념관 앞에서 90여개 언론, 시민, 노동단체 등으로 구성되언론장악저지공동행동이 황상무 대통령실 수석비서관의 이른바 '언론인 회칼 테러 협박' 논란을 비판하는 기자회견을 진행하고 있다. 사진=노지민 기자
▲2024년 3월15일 서울 용산 대통령실 인근 전쟁기념관 앞에서 90여개 언론, 시민, 노동단체 등으로 구성되언론장악저지공동행동이 황상무 대통령실 수석비서관의 이른바 '언론인 회칼 테러 협박' 논란을 비판하는 기자회견을 진행하고 있다. 사진=노지민 기자

이 자리에 참석한 이호찬 전국언론노동조합 MBC본부장은 “이종섭 전 국방부 장관의 출국금지 사실을 MBC가 단독 보도하고 호주대사를 하겠다고 몰래 도망가는 이 전 장관을 집중 취재해서 국민의 비판이 높아지자 이제는 MBC를 향해 정권 비판적 보도를 하면 ‘회칼 테러’도 받을 수 있다는 식의 협박을 자행하고 있다”며 “(황 수석 발언에) 윤석열 정권의 공영방송에 대한 시각, MBC에 대한 입장이 녹아 있다고 생각한다”고 했다.

이 본부장은 “(MBC 기자들은) 윤석열 정권 들어 비판적인 보도를 하거나 권력 감시자 역할을 수행할 때마다 극우세력에 ‘좌표’ 찍히면서 온갖 협박에 시달렸다”며 “윤 대통령이 도어스테핑(출근길 문답) 과정에서 ‘MBC가 악의적 보도를 했다’고 하자 ‘무엇이 악의적이냐’ 물었다는 이유로 MBC 기자가 살해 협박을 받았고 한동안 경찰의 신변 보호를 받아야 했다. ‘바이든-날리면’ 관련 보도를 했던 기자는 무참한 사이버 공격을 당하며 해외에 있는 가족들 신상까지 털리면서 극심한 공포에 시달렸다”고 전하기도 했다.

박상현 언론노조 KBS본부 지역부본부장은 “(대통령 배우자가) ‘명품백’ 받은 걸 ‘조그마한 파우치를 놓고 갔다’고 얘기하는 방송을 하는 것이 부끄럽다. 선거 뒤에 방송되는 세월호 다큐가 ‘선거에 영향을 줄 수 있다’며 불방되는 상황이 부끄럽다. 그리고 대놓고 언론에 테러 협박을 하는 황상무를 선배로 둬서 부끄럽다”고 했다.

이어 황 수석이 2020년 KBS에서 퇴사하며 남겼던 글에 빗대어 “언론판을 ‘킬링필드’로 만들겠다는 사람이 누구인가. 바로 언론인들에게 대놓고 테러 협박을 하고 있는 황상무 본인 아닌가”라며 “검사 조직이 조폭과 같다는 말이 있다. 검사 출신 윤석열 대통령 밑에서 시민사회수석을 해서인지 어떻게 그렇게 조폭이 하는 행태를 닮았는지 모르겠다”고 비판했다.

▲ 지난해 12월20일 황상무 대통령실 시민사회수석이 서울 용산 대통령실 청사에서 국민제안 정책화 과제 관련 브리핑을 하고 있다. ⓒ 연합뉴스
▲ 지난해 12월20일 황상무 대통령실 시민사회수석이 서울 용산 대통령실 청사에서 국민제안 정책화 과제 관련 브리핑을 하고 있다. ⓒ 연합뉴스

윤창현 언론노조 위원장은 “군에 보낸 아들이 구명조끼 하나 없이 수해 복구에 나섰다가 주검으로 돌아왔는데, 대통령이 그 책임자를 해외로 빼돌리고 범죄를 은폐하려는데, 언론이 그걸 보도하면 협박 당하고 테러의 공포에 떨어야 하는 나라가 됐다”며 “자유를 수도 없이 외치는 윤석열 대통령, 당신의 비서가 언론인들을 회칼로 어찌어찌 하겠다는둥 허벅지 두 방이 뭐라는둥 5·18 배후에 누가 있다는둥 이런 막말을 일삼아도 그냥 놔두는 것이 당신의 자유인가”라고 물었다. 5·18 민주화운동 폄훼 발언을 한 후보를 공천했다 취소한 국민의힘의 한동훈 비상대책위원장을 향해서도 “대통령에게 이 자를 해임하라고 바른 소리를 할 수 있나”라고 했다.

신미희 민주언론시민연합 사무처장은 “윤석열 정권 언론탄압·언론장악이 언론인 목숨을 위협하는 지경까지 이르렀다”며 “(황상무 수석은) 시민사회수석으로서 시민사회와의 소통이 주 본연의 역할일 텐데 자질도 자격도 없는 자”라며 윤 대통령을 향해 “당장 파면하라”고 촉구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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