등잔 밑이 어두웠고, 제 눈에 들보는 보지 못했다. 서울 중구에 위치한 한국언론진흥재단과 서울신문이 공동으로 관리하는 한국프레스센터 건물을 청소하는 노동자들이 수년간 불법 중간착취와 부당노동행위에 시달리고 있었음에도 이들은 ‘없는 사람’이었다. 사회의 공기(公器)라고 하는 언론기관이 모여 있는 이곳에서 벌어진 일이다.  

언론재단과 서울신문이 운영하는 프레스센터에는 한국신문협회를 비롯해 한국신문방송편집인협회·한국기자협회·관훈클럽·언론중재위원회·한국신문윤리위원회 등 각종 언론단체와 전국언론노동조합까지 입주해 있다. 또한 19층 기자회견장과 20층 프레스클럽·국제회의장에서는 각종 세미나와 기자회견 등 언론 행사가 매일같이 열린다.

“우리가 새벽같이 잠도 제대로 못 자고 와서 몇천 명을 위해 일하는데 좋은 시설 갖춘 휴게실 원하는 것도 아니잖아요. 단 10분을 쉬더라도 마음 편히 쉴 수 있었으면 좋겠어요. 어떻게 쉴 수 있는 의자 하나 놓을 수 있는 공간도 없이 화장실 한 칸 더 만들 생각만 하는지…. 우리도 똑같은 사람인데 최소한의 대우는 해줘야 하잖아요.” 

   
한국프레스센터 청소노동자들 휴게실에는 머리 위로 각종 배관이 지나가고 겨울철 난방 패널조차 없이 전기매트가 깔려 있었다. 사진=강성원 기자
 

대부분의 청소노동자들이 그렇듯 프레스센터 노동자들도 새벽에 출근해 입주사들의 출근 시간 전에 청소를 끝내고 아침식사를 한다. 정시 출근 시간은 아침 6시지만, 노동자들은 적어도 이보다 한 시간 전에 와야 아침 청소를 제시간에 끝마칠 수 있다. 정해진 건물 청소 외에도 입주사 간부실 등을 ‘아르바이트’ 식으로 청소하는 이들은 출근 시간이 더 당겨질 수밖에 없다. 

노동자 한 명이 맡은 청소 구역은 600평에 달하는 건물 한 층이다. 한국건물위생관리협회 기준 (여성)1인당 청소 면적 300평보다 2배나 넓다. 몇 해 전까지만 해도 두 명이서 한 층을 담당했지만, 원청에서 인건비를 절감하는 바람에 인원이 줄었다. 지하 1층부터 지상 11층까지는 서울신문이, 12층부터 20층까진 언론재단이 하나의 용역업체를 통해 청소노동자들을 고용하고 있다. 그나마 언론재단은 비상계단 청소 인력을 2명 더 쓰고 있지만 서울신문 층은 한 명이 계단 청소까지 해야 한다. 

실상, 노동 강도보다도 노동자들을 힘들게 하는 건 마음 편히 쉴 수 있는 휴식 공간이 없다는 점이다. 지하 3층 주차장의 쓰레기 더미 옆에 위치한 휴게실을 가려면 관리소장 사무실을 지나쳐야 한다. 칸막이만 설치된 채 천정이 뚫려 있다 보니 방음도 전혀 안 된다. 

“휴식 시간엔 잠도 자야 하고 소장실이 바로 옆에 있어 우리 말소리가 들리면 소장이 시끄럽다고 벽을 쿵쿵 쳐요. 그러다 보니 우리가 소장에게 감시당하는 거 같아서 소장실과 분리해 달라고 작년부터 얘기했어요. 올해 그렇게 해준다고 약속받았는데 마땅히 장소가 없다고 안 해주고 있어요.” 

   
프레스센터 청소노동자 휴게실은 지하 3층 주차장의 각종 쓰레기 더미 옆에 위치해 있다. 사진=강성원 기자
 

머리 위로 각종 배관이 지나가고 여름엔 음식물 쓰레기 악취에, 겨울엔 난방 패널조차 없이 전기매트에 의존해 근근이 휴식을 취하다 보니 사실 청소 아주머니들에겐 각층 화장실 옆 비좁은 탕비실이 유일한 휴식 공간이었다. 하지만 이마저도 최근 양변기 증설 공사가 진행되면서 사라질 위기에 놓였다.

이와 함께 프레스센터 건물 청소 용역회사 (주)진명스탭스에 고용된 미화직 관리소장이 수년간 노동자들이 입사할 때 소개비를 요구하는가 하면, 권고사직이나 산업재해로 퇴직하게 된 노동자들에겐 실업급여 신청 대가로 돈을 받기도 했다는 불만이 터져 나오면서, 공공운수노조 서울경인공공서비스지부 프레스센터분회는 지난달 26일부터 선전전을 시작하고 용역회사와 원청 측에 대책 마련을 촉구하고 나섰다.

이들은 프레스센터에 입주한 언론기관·단체에 “사회적 약자의 편에 서서 사회정의를 실천해야 할 언론기관에서 청소노동자에게 천인공노할 만행이 자행되고 있다”며 “용역회사와 서울신문·언론재단은 서로 책임을 떠넘기며 우리의 외침을 외면하고 있다”고 호소했다. (관련기사 : 프레스센터 청소노동자 “수년간 불법착취 시달렸다”)

   
프레스센터 청소노동자들이 잠깐의 휴식을 취하는 각층 화장실 옆 1평 남짓의 탕비실. 사진=강성원 기자
 

그러자 용역회사 측은 지난달 30일 문제의 장본인으로 지목된 권아무개 관리소장의 권고사직과 함께 청소노동자들의 인권 개선을 위한 열악한 근무 조건 문제 해결을 약속했다.  

용역회사 진명스탭스는 이날 공공운수노조 서경지부와 작성한 확약서에서 오는 20일까지 프레스센터 현장 소장을 사직 처리하고, 올해 임금협약에서 체결된 소장관리실과 노동자 휴게실 분리 문제, 층별 쉼터 문제 해결을 위한 방안을 원청과 논의해 오는 10일까지 제시키고 했다.  
 
노사 간 확약서가 체결됨에 프레스센터 청소노동자 인권문제 해결을 위한 실마리는 찾았지만, 노동자들은 그동안 받았던 부당 착취에 대한 사과와 재발 방지 대책도 필요하다고 말하고 있다.   

프레스센터 청소노동자들이 시급 6000원(내년도 최저시급은 6030원이다), 식대 10만 원을 제외하고 세금 포함 월 125만4000원을 받으며 ‘보이지 않는 곳’에서 일하지만 “몸보다 마음이 힘들다”고 말하는 이유는 심지어 언론인들도 이들의 절실함을 알려고 하지 않기 때문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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