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16년 1학기부터 초등학교 6학년 학생들이 배울 사회(역사)교과서가 “오류투성이에 편향된 교과서”라는 지적이 나왔다. 해당 교과서는 박근혜 정부가 지난해 11월 역사교과서 국정화를 고시한 뒤 처음으로 배포된 교과서다. 당시 박근혜 정부는 “오류 없고 편향되지 않는 교과서”를 만들겠다고 주장한 바 있다.

29일 역사교육연대회의가 해당 교과서를 분석한 결과 박정희·이승만 정부를 강조하고 김대중·노무현 정부의 업적을 축소했고, 근대사 특히 일제강점기를 대폭 축소하는 등 편향되게 서술했다고 밝혔다. 또한 역사적 사실의 오류나 부적절한 표현, 비문 뿐 아니라 초등학생들이 이해하기 어려운 표현들도 다수 발견돼 역사에 흥미를 잃을 가능성도 지적했다.

이승만 14번·박정희 12번·정조 5번 언급

해당 교과서는 임진왜란(1592년)부터 노무현정부(2007년)까지 다루고 있다. 400년이 넘는 역사를 다루며 가장 많이 언급(사진 포함)한 인물은 이승만(14번)과 박정희(12번)였다. 이는 세 번째로 많이 다룬 인물인 정조(5번)에 비해 압도적으로 많은 양이었다. 국정교과서가 이승만·박정희 정부를 미화할 것이라는 우려가 현실이 된 것이다.

배경식 역사문제연구소 부소장은 이승만에 대해서는 4·19혁명을 다루면서 과오를 언급하지만 박정희에 대해서는 경제성장에 대한 부분만 강조할 뿐 ‘독재’ 등의 표현을 삭제해 “박정희를 미화했다”고 비판했다.

유신에 대한 부분을 보면 “1972년, 박정희 정부는 국가 안보와 지속적인 경제 성장이 필요하다고 주장하면서 10월 유신을 선포하고 헌법을 고쳤다”며 “이에 따라 장기집권이 가능해졌다”(131쪽)고 표현했다.

이에 배 부소장은 “헌법을 중단하고 비상계엄을 선포해 군을 이용해 국회를 해산하고 각종 정치적 자유를 박탈했다”며 “‘10월 유신을 선포하고 헌법을 고쳤다’는 부분은 사실 오류”라고 지적했다. 또한 “유신은 헌법중단 사태인데 이것이 왜 나쁜지에 대한 설명은 없다”고 덧붙였다.

▲ 2016년 2월 배포한 6학년 1학기 초등학교 사회(역사)교과서 140쪽. 박정희 정부 시절인 1977년 수출100억 달러 달성만 특별하게 강조했다.

1970년대 경제발전을 강조하며 박정희를 미화하는 부분도 있었다. 경제발전 부분에는 1960년대 이후 수출액 변화를 나타내는 그래프가 나오는데 특별하게 1977년 ‘수출 100억달러 달성’만 따로 표기를 해 강조했고, 수출 100억달러 달성 관련 사진까지 추가했다. 배 부소장은 “1964년 1억달러, 1995년 1000억 달러, 2011 5000억달러 돌파 등도 중요하다고 볼 수 있는데 100억달러 돌파만 따로 표기한건 누구를 위한 것인가”라고 지적했다. 그래프 상으로도 수출액 변화 기울기가 급격하게 치솟는 부분은 1995년 이후다.

배 부소장은 경제발전을 언급하며 주어를 ‘박정희 정부’로 사용한 것도 지적했다. 그는 “2014년 실험본 교과서에도 ‘경제개발 5개년 계획’, ‘외환위기 극복’등을 언급하며 주어를 언급하지 않았는데 유독 이번 교과서에서 ‘이승만 정부의 원조경제’, ‘박정희 정부의 경제개발 5개년 계획과 새마을운동’을 언급했다”고 말했다.

남북정상회담 사진, 김대중은 이름도 안 써놔

반면 김대중·노무현 정부에 대한 서술은 명확하지 않다는 지적이 나왔다. 교과서 뿐 아니라 대학수학능력 시험에서도 김대중·노무현 정부의 남북정상회담 등 대북정책은 중요하게 다룬 업적이었다. 하지만 이번에 배포된 교과서에는 1991년 남북기본합의서만 설명했을 뿐 200년(김대중)과 2007년(노무현) 남북정상회담에 대해서는 “남북한 정상이 만났다”고만 표기했다.


▲ 2016년 2월 배포한 6학년 1학기 초등학교 사회(역사)교과서 150쪽. 사진 캡션에 당시 김대중 대통령과 김정일 국방위원장에 대한 언급은 없다.
▲ 2016년 2월 배포한 6학년 1학기 초등학교 사회(역사)교과서 129쪽. 본문에는 제2공화국에 대한 설명이 없지만 사진 캡션에는 윤보선 대통령과 장면 총리에 대한 언급은 있다.

배 부소장은 “현재 초등학생은 2000년 이후에 태어나 사진만 보면 누군지 모르는데 교과서에는 ‘남북한 정상의 만남’이라고만 돼 있다”고 지적했다. 해당 사진은 2000년 남북 정상인 김대중-김정일이 만난 사진이었다. 이어 배 부소장은 “이 교과서에는 제2공화국에 관한 설명도 없는데 다만 사진에는 윤보선 대통령과 장면 국무총리를 언급했는데 김대중 전 대통령은 캡션에도 설명하지 않았다”고 지적했다.

일제강점기 대폭 축소, 국가입장에서 서술

이준식 민족문제연구소 연구위원은 근대사 서술이 줄어든 데 대해 “박근혜 정부의 방침에 따른 것”이라고 봤다. 기존 교과서에는 근대사 부분이 ‘개항에서부터 한일강제병합까지’와 ‘일제강점기’ 크게 두 부분으로 나눴는데 이번에 배포된 교과서는 개항부터 일제강점기를 하나로 묶으면서 일제강점기 부분이 대폭 축소됐다는 게 그의 지적이다.

이 연구위원은 “정부와 여당이 자학사관 비판하고 긍정적인 역사관을 강조했는데 그렇다고 주권 빼앗긴 것도 우리 역사인데 이를 빼놓은 것은 잘못”이라며 “대한제국은 자주독립국가를 지키기 위해 열심히 노력했다고 돼 있고 갑자기 1910년에 강제병합되는데 이럴 경우 책임져야 할 사람에 대한 서술이 사라진다”고 지적했다.

이어 “일제강점기 부분에도 친일파 얘기가 거의 없고 딱 한번 나오는데 하위관료에 대한 부분뿐이고 상류층 친일파에 대한 내용은 없다”고 덧붙였다.

그러면서 국가의 입장에서 서술했다는 게 이 연구위원의 지적이다. 해당 교과서는 1910년 한일강제병합 이전 부분을 다룬 단원 이름을 ‘나라를 지키기 위한 노력’, 일제강점기 부분을 ‘나라를 되찾기 위한 노력’이라고 달았다. 지속적으로 교과서의 주어가 국가, 정부, 나라인 것이다.

초등역사교육 방향의 문제

결국 이런 문제점은 역사를 처음 배우는 초등학생에게 어떠한 역사를 가르쳐줄 것인가에 대한 교육부의 고민이 부족한 결과로 볼 수 있다는 주장도 나왔다. 양정현 부산대 역사교육과 교수는 “11쪽 한쪽만 보더라도 전란, 조정, 노동력, 경직 등 초등학생이 이해하기 어려운 단어들이 사용돼 있거나 모내기법 같이 조선후기 사회 변화에 중요하고, 어렵기도 한 사안을 역사전공을 하지 않은 초등학교 선생님들이 대다수가 도시에서 사는 아이들에게 가르쳐야 하는지 의문”이라고 말했다.

양 교수는 “심지어 교과서 끝부분에는 ‘보다 나은 미래의 대한민국을 만들기 위해서 해결할 과제로 복지향상, 인권존중, 안전 등의 얘기라 나오는데 이는 아이들에게 할 얘기가 아니라 어른들이 만들어서 물려줘야 할 사회”라며 “만약 이런 글을 읽힌다는 것은 어른들이 이런 사회를 만들 생각이 없으니 너희들이 만들어야 한다는 것으로 오해할 여지도 있다”고 비판했다.

역사교육연대회의는 해당 교과서의 비문 8개, 사실 오류 29개, 오류는 아니지만 부적절한 표현 56개, 편향된 표현 31개 등 총 124개의 문제점을 지적했다. 양 교수는 “이런 문제의 근본적인 원인은 국정제”라며 “전문가에게 검토했다고 해도 최종본이 권력 맘에 안 드는 내용을 수정해도 국정제에서는 법적으로 문제가 없기 때문”이라고 말했다.

▲ 역사교육연대회의가 29일 서울 중구 서울NPO센터에서 6학년 1학기 초등학교 사회(역사)교과서의 문제점을 지적하고 있다. 사진=이치열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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