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만수가 이렇게 중얼거리자 이순신이 고개를 내밀고 굴다리식당의 허름한 미닫이식 유리 출입문을 살펴보았다. 아니나 다를까, 김두길과 김동필이 얼쑤패 문화교실 10월 강연회 뒤풀이 장소인 그 식당 안으로 들어가고 있었다.“형님, 어떻게 하실꺼요?”김만수의 질문은 골목 밖으로 나가서 식당 안으로 들어갈 것인지를 묻는 것이었다.“글
“자, 서해훼리호 참사와 관련된 얘기는 이만 접구요. 오늘의 주제인 남북통일시대를 대비한 생활법률 이야기를 시작해 볼까 합니다. 여러분, 남북한이 하나가 되면 우리의 삶이 더 팍팍해질까요? 아니면 더 나아질까요?”무민국의 질문에 50여명의 수강생 중 답변하는 사람은 한 명도 없었다.“네, 남북통일이 되면 초기엔 분명 우리의
“아, 뭣하시오! 대답을 좀 해 보시라구요! 스승이라는 백운봉 선생이 형 관상이 어떻다고 말을 했는지?”“그걸 임마, 이런 길바닥서 꼭 듣고 싶냐? 허이고 너도 참말로…”박정기는 짜증을 내며 Y빌딩이 있는 연세대 쪽으로 발걸음을 옮겼다. 잰걸음으로 쫓기듯 앞서 걸어가고 있는 박정기를 따라 김만수와 이순
“우야튼 간에 덕수 이씨 가문의 명예를 걸고 내가 너 헌티 한 가지는 분명허게 약속허마. 다른 위도후배들은 몰러도 희오허고 문수, 그라고 너 헌티는 참말로 잘난 선배는 못 되도 못난 선배는 되지 않을 자신 있응께 그리 알고 아까 내가 부탁을 힜던대로 그 돈은 얼쑤패 후원금으로 전해도라!”“네, 그렇게 하겠습니다. 근데요, 형
“허허허…”택시 기사가 너털웃음을 터뜨리자 비위가 상했는지 이순신의 목소리가 퉁명스러워졌다. “아니 기사님, 으째 그러키 웃으신다요?” 이순신이 기분 나쁘다는 듯이 이렇게 묻자 분위기를 알아차린 택시 기사가 곧바로 정중하게 사과했다. “지 생각이요, 사장님 생각허고 벨반 차이가 읎는 것 같어
“근디 만수야, 얼쑤패 피습사건이 아직까장 해결이 안 된 모양인디, 무민국 전 의원이 도와준 게 있남?”김만수의 말을 귀담아 듣고 있던 이순신이 물었다.“사건이 발생했던 1988년엔 무민국 전 의원이 큰 도움을 주진 못했지만 최근에 그 사건 변론을 맡어주겠다고 먼저 제안을 했다고 허던걸요.”“무민국 전
택시 앞자리의 김만수가 무민국을 인권변호사의 길로 들어서게 한 사람 이름이 생각나지 않아 애가 타는데 택시 기사가 입을 열었다.“저기 사장님, 고 양반이요, 혹시 김광수 변호사 아닌가요?”“아, 네 맞네요. 김광수 변호사였지요. 그 양반이 당시 무민국 변호사 더러 부림사건 변호를 맡아달라고 부탁했었죠. 그래서 무민국 전 의원
“오늘 얼쑤패 강연회에 무민국 전 의원이 강사로 나온다고 해서요, 도대체 어떤 인물인지 알아보려고 도서관에 가서 신문도 뒤져 보고 자료도 좀 찾아봤는데요, 형님도 무민국 전 의원이 5년 전 청문회 스타였다는 건 알고 계시죠?”“어따, 야가 사람을 멀로 보고 이러는 것이여. 얌마, 아무리 내가 배운 것도 읎고 격포 방파지서 해
정훈철의 제안에 난처한 표정을 짓던 김동필이 맞은편에 앉아 있는 김두길을 쳐다보았다. 어떻게 하면 좋겠냐고 묻는 눈빛이었다. 그런데 김두길이 멋쩍게 씩 웃더니 입을 씰룩거렸다. “아아 아니다. 만나기로 헌 시간은 좀 지났다만 김 의원님이 곧 오실턴께 됐다 됐어!”약속 시간이 약간 지나자 아직 금수호텔 지하 사우나에 있다는 김금수를 데리
문민정부. 군인이 아닌 민간인 출신의 대통령이 통치하는 정부를 일컫는다. 대한민국은 1961년 5․16군사쿠데타로 정민국 대통령이 집권한 이후, 32년 동안 군인출신이 통치했다. 정민국 정부에서 시작된 군사정권은 두민국 정부로 이어졌고 1987년 6월의 민주항쟁 덕분에 대통령 직선제가 실시되었지만 역시 군인 출신의 태민국 대통령이 군사정권의 맥을
김두길에게 단단히 경고한 뒤, 조희진은 식당 밖으로 나왔다. 이른 아침 석금 방파제에서 칠산호에 선원 짱구와 매제 용삼영을 태우고 출항했다. 어머니 이춘심의 시신을 찾으려고 형제섬과 왕등도 앞바다를 샅샅이 뒤진 다음, 오후 3시 쯤 파장금항에 들어왔다. 오후 5시 쯤 뭍으로 나갈 예정인 김두길을 만나서 부안경찰서 유치장에 있는 동생 조희오의 석방을 부탁했는
이른 아침부터 몸부림치며 울부짖은 탓인지 조희오의 몸에서는 금세 맥이 쫙 빠져 나갔다. 맥이 풀린 뒤 쏟아지는 졸음을 견딜 수 없었던지 조희오는 유치장 벽에 등을 기대고 앉아 졸기 시작했다. 깊이 잠들었던 그가 눈을 뜬 건 오후 2시쯤이었다. 이순신이 면회를 왔기 때문이다. 이순신은 그가 해 질 녘에 석방될 것이라고 귀띔했다. 큰형 조희진이 김두길에게 부탁
조희오가 S병원 장례식장 건물 지하 2층 영안실 철문 앞에서 울부짖고 있을 때, 이순신은 일반 병동의 중앙 현관문 밖으로 나왔다. 4층 병실에 있는 김옥자와 강신자를 만나고 병원 앞마당으로 나왔으나 벤치에서 기다리기로 한 조희오가 보이지 않자 이순신은 갑자기 겁이 더럭 났다. “어어! 아니, 야가 으딜 갔다냐, 희오야! 희오야!…&r
제1부 금수공화국(禽獸共和國)꿈아, 무정한 꿈아!④응급실 밖 의자에 앉아 울부짖는 조희오의 곡소리는 10분이 지나도 그칠 줄 모른다. 먼저 울음을 그친 이순신이 그를 부축해서 일으켜 세웠다.“희오야, 바깟티로 나가서 야그 좀 허자!”S병원 중앙 현관문 밖으로 나온 조희오는 담배에 불을 붙였다.
거북바위. 밥섬 식도 뒤편 바다에 떠 있는 이 바위는 거북이 한 마리가 헤엄치고 있는 모습이다. 길이 약 30m, 넓이 15m, 높이 20m의 무인도인 거북바위의 꼬리에 해당되는 부분은 식도 쪽으로, 머리에 해당되는 부분은 고군산열도 쪽으로 향하고 있다. 몸통에 해당되는 부분은 야산 같은데, 멧부리엔 수백 년 동안 인당수의 세찬 갯바람을 견뎌 온 소나무 1
가을의 마지막 절기 상강(霜降)을 앞둔 인당수에 서리를 머금은 어둠이 짙게 깔렸다. 위도면 벌금리 포구의 차가운 어둠속에서도 통곡의 바다는 울고 있는 듯 했다. 조금치 장불 위 언덕배기의 삼성민박 2층에서 흘러나오는 김옥자의 애절한 곡소리 탓도 있을 것이다. “동해 엄만 잠들었냐?”거실 한가운데 차려진 술상 앞에서 TV를 보고 있던 이
사흘 전인 10월17일 오전 11시10분 경. 인당수에 가라 앉아 있던 서해훼리호가 드디어 수면 위로 떠올랐다. 죽음의 바다 인당수가 꿀꺽 삼킨 뒤 일주일 만에 뱉어 낸 서해훼리호의 겉모습은 사고 당시와 크게 다르지 않았다. 끔찍하게 침몰한 여객선인데도 조타실 위의 기둥인 마스트(Mast)만 부러져 쓰러져 있을 뿐 대체로 멀쩡한 상태였다. 새하얀 물거품을
“승무원 유가족 여러분, 정말 죄송합니다. 피치 못할 사정이 있어서 오늘 서해훼리호 조타실과 통신실에서 인양된 승무원 네 분의 시신을 이제사 모셔왔습니다. 인양 현장에서 위도 주민들이 참관한 가운데 승무원들의 시신임을 일차로 확인했습니다. 이차로 유가족의 신원확인 과정이 필요한데 승무원 한 분당 한 명의 유가족을 모실까 합니다. 가급적 남자 분이
물귀신들이 득시글거리고 있는 듯한 시커먼 죽음의 바다 인당수는 닷새 전 무고한 생명들을 한 입에 삼켜버렸다. 희생자 수는 아직도 정확하게 집계되지 않았지만 수백 명에 이른다. 그들은 차갑고 깜깜한 저승길로 들어서며 얼마나 처절하게 몸부림쳤을까? 누구를 원망하고, 누구를 탓했을까? 서해훼리호 참사는 인재(人災)가 틀림없다. 이 땅의 금수들이 만든 인재가 분명
임영범이 섟김에 덤벼보지만 경찰의 저지를 뚫고 아버지 임사공의 주검 앞으로 다가서는데 역부족이다. 옆에 있던 조희오가 사촌형 임영범을 두남둬 보지만 처지가 어금버금했다.“제민호 승조원들에게 알린다!…”선내 방송이 울려 퍼졌다. 해경 소속 경비정 258호가 곧 도착할 것이니 제민호에 있는 4구의 시신을 옮겨 실으라는 내용이었