세월호 참사 100일 서울시청 광장이 눈물 바다가 됐다.

23일 안산 분향소에서 출발해 24일 서울광장에 도착한 유족들은 ‘네 눈물을 기억하라-세월호참사 100일 추모 시낭송 그리고 음악회’에 참석한 시민 5만여명(주최측)과 함께 눈물을 흘렸다.

이번 행사는 세월호 특별법 제정을 위한 시민들의 바람을 전하는 것과 동시에 세월호 참사 100일을 맞아 유족을 위로하는 자리로 마련됐다.

행사는 '네 손가락의 피아니스트' 이희아씨의 연주로 시작해 세월호 희생자를 추모하는 시낭송으로 이어졌다.

   
주최측 추산 5만여 명의 시민들이 세월호 유가족들과 함께 추모문화제에 참여했다.
이치열 기자 truth710@
 
   
‘네 눈물을 기억하라-세월호참사 100일 추모 시낭송 그리고 음악회’의 사회를 맡은 이지애 아나운서(오른쪽)와 첫 무대를 장식한 피아니스트 이희아 씨
이치열 기자 truth710@
 

 딸의 편지(강은교)

엄마, 여긴 추워요
엄마, 여긴 진흙이 너무 많아요
진흙이 내 팔을 휘감고 있어요
진흙이 내 입술을 꼼짝달싹 못하게 하고 있어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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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른들은 기다리래요
어른들은 춤추면서, 우리들의 바다를 밟아대면서
기다리래요, 기다리고 또 기다리래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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평화란 이런 것인가 봐요, 아무도 없는 것, 아무것도 보이지 않는 것, 진흙들만 살아서 나를 먹어버리는 것, 진흙의 가품이 되는 것

69인의 시인들은 세월호 참사를 추모하는 내용의 시집을 출간했고 판매 인세 전액을 기부하기로 했다. 
 

   
이날 추모공연에서는 한국작가회의 시인 69인의 작품으로 발간한 시집 '우리 모두가 세월호였다'의 저자들이 직접 시를 낭송했고, 많은 참가자들의 심금을 울였다. 강은교, 김기택, 함민복 시인(왼쪽부터)
이치열 기자 truth710@
 
   
바이올린 연주와 함께 문동만 시인의 시 '소금속에 눕히며'가 낭송되고 있다.
이치열 기자 truth710@
 

故 박성호군의 박보나씨는 시집을 건네받고 편지로 화답했다.

"아무것도 해주지 못해 미안합니다. 힘들다고 말해서 미안합니다. 지친다고 말해서 미안합니다. 참 진실을 알려주지 못해 미안합니다. 결코 포기하지 않고 무너지지 않고 진실을 밝히겠습니다."

"절대 잊지 않겠습니다. 정말 미안합니다. 사랑합니다. 멋진 모습으로 만나러 가겠습니다. 아직도 바다에 있는 분들 어서 빨리 만나길 바라겠습니다. 사랑합니다."(박보나씨)

행사는 저녁 8시 30분경 유가족 260여명과 시민 2천여 명이 서울 광장에 도착하고 시민들이 일어서 박수를 치고 유족을 맞이하면서 절정을 이뤘다.


 유족들이 광장에 들어서자 시민들은 양 옆으로 길게 쭉 늘어서 "수고하셨습니다. 사랑합니다"라며 응원을 보냈고 "특별법 제정하라"는 구호가 울려퍼졌다.

시청광장은 가수 김장훈이 마이크를 잡고 노래를 부르자 일부 시민들이 흐느끼기 시작하면서 눈물로 뒤덮였다.

가수 김장훈은 세월호 참사와 비슷한 내용의 가사라며 첫 노래로 '친구'를 선곡했다고 밝혔다.

"검푸른 바닷가에 비가 내리면 어디가 하늘이고 어디가 물이요. 그 깊은 바닷 속에 고요히 잠기며 무엇이 잠겨지고 무엇이 죽었소. 눈 앞에 떠오른 친구의 모습. 휘날리는 꽃잎 위에 아른거리오. 저 멀리 들리는 친구의 음성. 울고 있는 저 바다가 대답하려나"(노래 '친구')

김장훈은 곡을 마칠 때 쯤 감정이 복받친 듯 얼굴을 찡그리며 눈물을 참는 모습을 보였지만 끝내 눈물을 보였다.

김장훈은 이어 “슬퍼하고 힘들면 제 조카도 힘들 것 같았다. 그 친구들이 앞으로 고통 없는 곳에서 잘 살기를 바라는 마음”이라며 “축복합니다”라는 노래를 불렀다.

김장훈은 유족을 비난하는 보수단체와 누리꾼에 대해서도 따끔한 쓴소리를 내놨다.

김장훈은 “하늘에 있는 고인들 절대로 상처를 입지 마라”며 “(가족들은) 비참한 가족 희생자들이 나오지 않도록 안전하고 정의로운 대한민국을 만들어달라고 설 힘도 없는데...이런 가족들에게 정말 단 한명의 가족이라도 폄하에 신경쓰지 마라. 그것은 인간이 아닌 것”이라고 말했다.

그러면서 김장훈은 “100일째 싹 다 정리하고 101일째부터 다시 시작하자. 세월호 유족들이 저를 놓지 않으면 절대 저는 놓지 않겠다”고 말했다.


 가수 김장훈는 무대 뒤에 마련된 화면 속 이보미 양을 바라보며 노래를 불렀다. 

“그래요 난, 꿈이 있어요. 난 꿈을 믿어요. 나를 지켜봐줘요”

생전 가수가 꿈이었던 故 이보미양이 가수 김장훈과 함께 부른 듀엣곡 ‘거위의 꿈’이 흘러나오면서 울음소리가 시청을 뒤덮였다. 머리를 숙이거나 안경을 벗고 눈물을 훔치고 흐느껴 울다가 자리를 뜨는 시민들도 보였다.

   
단원고 2학년 고 이보미 양이 생전에 불렀던 노래 '거위의 꿈' 영상을 가수 신해철 씨 등의 도움으로 가수 김장훈 씨와 이 양의 듀엣곡으로 태어났다. 가수가 되고 싶다던 고 이보미 양의 꿈이 이루어지는 순간이다.
이치열 기자 truth710@
 
   
김장훈 씨와 고 이보미 양이 함께 부르는 '거위의 꿈' 영상이 시작되자 유가족들이 오열하고 있다.
이치열 기자 truth710@
 
   
추모문화제에 참석한 시민들 뒤로 보이는, 서울광장에 여전히 자리 잡고 있는 세월호 희생자 합동분향소에는 발길이 뜸하다.
이치열 기자 truth710@
 

시민들의 눈물 속 무대에 오른 유족들은 아이들을 위해 반드시 세월호 특별법을 제정하겠다는 뜻을 전했다.

故 김동혁군 어머니 김성실씨는 “자식 죽은 이유를 밝혀달라는 것이 욕심일까. 죄스러움에 울고만 있지 않기로 했어. 특별법을 제정해 그날 고통이 되풀이 되지 않도록 약속한다”며 “그래도, 그래도 하고 싶은 말은 ‘내 새끼가 너무 보고 싶다’...미안하고 사랑한다”고 말했다.

故 김빛나라양 아버지 김병권씨는 “(세월호 특별법 제정을) 무리한 요구라고 주장하는 것은 도대체 왜 그런 것일까요”라며 “진실이 밝혀질까 두려워하기 때문”이라고 말했다.

김씨는 “가족들의 뜻을 반영한 특별법을 제정하겠다고 한 대통령의 약속을 지킬 것을 요구한다”며 “서명운동도 계속하고 광화문과 국회도 계속 지킬 것이다. 단식도 중단없이 계속될 것”이라고 말했고 시민들은 큰 박수로 호응했다.

   
한 시민이 유가족들이 원하는 세월호 참사 특별법 제정을 촉구하는 손피켓을 들고 있다.
이치열 기자 truth710@
 

가수 김장훈에 이어 무대에 오른 이승환은 유족들에게 위로의 메시지를 던지면서 오히려 “즐겁게 모여서 끝까지 잊지 말자”고 말했다.

이승환은 “우리는 어느 순간부터 참 불쌍한 국민이 됐다. 너무 알아차려버려서 불쌍한 국민, 국가가 우릴 지켜주지 못한 혹은 지켜주지 않은...(중략)...어떤 일에도 책임지지 않는 모습도 알아차렸다”며 “아마도 국가라고 불린 부류는 오늘만 넘기면 된다고 생각할 수 있다. 많은 분들 모였고 다시는 모이지 않을 것이라는 헛된 믿음을 가질 수 있다”고 말했다.


 

그러면서 이승환은 “잊지 않으려면 밥 많이 먹고 힘내고, 지치지 않고 즐겁게 모여서 끝까지 잊지 말자”며 노래를 불렀다.

10시 30분께 추모문화제를 마친 참가자들은 서울광장을 출발해 유족들이 단식 농성 중인 광화문 광장으로 행진을 시작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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