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댁을 비롯한 주위 친지들이 이상한 눈초리로 보는 것 같아 몸 둘 바를 모르겠다. 어린 자녀가 ‘엄마 아나운서가 되려면 다 주어야 한다’는 말이 무슨 뜻이냐고 물었을 때 너무 당황스러웠다.” (결혼한 한 아나운서의 탄원서 중)

강용석 전 의원이 아나운서 성희롱 발언과 관련해 29일 무죄를 선고받았다. 재판부는 판결문에서 “매우 부적절하고 저속한 발언”이라면서도 피해자가 특정되지 않았다는 점 등을 고려해 무죄를 선고했다. 강 전 의원은 지난 2010년 7월 대학생들과의 저녁 식사 자리에서 “다 줄 생각을 해야 하는데, 그래도 아나운서 할 수 있겠느냐”는 발언을 했다. 

서울 서부지방법원 형사 제2부(오성우 부장판사)는 29일 강 전 의원에 대한 파기 환송심에서 아나운서 모욕죄에 무죄를 선고했다. 앞서 1·2심은 “여성을 비하하고 여성 아나운서들 개개인에게 수치심과 분노의 감정을 불러일으키기에 충분한 경멸적인 표현에 해당한다”며 징역 6월 집행유예 1년을 선고했다. 하지만 대법원은 원심을 깨고 2심 법원인 서울지방법원으로 이 사건을 돌려보냈다. 

이번 파기환송심 재판부도 해당 발언의 문제점은 인정했다. 재판부는 “여성 아나운서에게 수치심과 분노의 감정을 불러일으키기에 충분한 경멸적인 표현”이라며 “매우 부적절하고 저속”하다고 판단했다. 이어 재판부는 “국회의원이자 변호사로서 청소년에게 왜곡된 직업관과 가치관을 불러 올 발언”이라고 밝혔다. 

   
▲ 강용석 전 국회의원. 사진=강용석 전 의원 블로그
 

또 재판부는 강 전 의원의 그간 행동에 대해서도 “여러 발언형태 및 고소를 남발하는 것을 보면 정치 목적을 실현하려는 의도가 있었다고 감안해도 건전한 문제제기라기보다는 사회적 혼란과 분열만 가중시키는 트러블메이커와 다름 없었다”며 “또 피고인은 법정 마지막 진술에서 ‘할 말이 없다’고 했는데 진정으로 잘못을 뉘우치는지 의문이 들기도 한다”고 지적했다. 

그럼에도 재판부는 해당 발언에 무죄를 선고했다. 피해자가 특정되지 않아 아나운서 개개인의 사회적 평가를 저하시킬 정도가 아니라는 것이다. 재판부는 △여성 아나운서들에 대한 사회적 평가를 근본적으로 변동시킬 것으로 보이지 않으며 △개별 피해자들에게는 비난의 정도가 희석돼 개개인의 평가에 영향을 미칠 정도가 아니고 △아나운서협회와 합의에 이르렀다는 점 등을 고려했다고 밝혔다. 

그러면서 재판부는 강 전 의원에게 “건전한 지성인으로 복귀하기 위해서 필요한 것은 저질스럽고 정제되지 않은 말은 하지 않는 ‘말의 다이어트’”라며 또한 “신체와 외모의 성형이 아니라 마음과 말의 성형이 필요하다는 점을 환시키며 피고인이 우리 사회의 해피메이커가 될 수 있을지는 이제 피고인의 몫으로 남긴다”고 말했다.

한국아나운서연합회는 이날 오후 유감 성명을 발표했다. 아나운서연합회는 성명에서 “판결문의 표현상 죄가 없다는 것이 아니라, 모욕의 대상을 개별 아나운서 구성원으로 특정하기 어려워 모욕죄를 적용하기 모호하다고 판단한 만큼 여성 아나운서 일반을 대상으로 모욕적인 발언을 한 부분에 대해 평생 반성하고 살기를 촉구한다”며 “이번 판결이 강 전 의원의 과거 발언에 면죄부를 준 것이 아니다”고 지적했다.

한 여성 아나운서는 미디어오늘과의 통화에서 “사적인 자리에서 했던 이야기이지만 어쨌든 공론화가 됐다”며 “아직도 아나운서 관련 기사에는 강 전 의원의 발언을 인용한 댓글이 달린다. 경솔했던 발언”이라고 비판했다. 한 남성 아나운서도 “말 같지도 않은 소리였다”며 “그 일은 언급이 그만 됐으면 좋겠다”고 밝혔다.

한편 강 전 의원이 해당 발언을 보도한 중앙일보 기자를 고소했으나 무혐의로 결론이 나자 중앙일보 기자로부터 무고 혐의로 고소당한 것에 대해 재판부는 벌금 1500만원을 선고했다. 재판부는 “(강 전 의원이) 사건 발언을 하였음에도 이를 부인하며 오히려 기자를 무고하는 범행을 저질렀다”고 판단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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