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난 28일 시정 연설하려 국회본청에 입장하던 박근혜 대통령은 “살려달라”고 호소하던 세월호 유가족들에게 눈길 한 번 주지 않은 채 그냥 지나쳤다. 박근혜 대통령의 이 모습을 보며 기자는 ‘섭공호룡(葉公好龍)’이란 중국고사를 떠올렸다. 겉으로만 좋아할 뿐 속으로는 두려워한다는 뜻을 담고 있는 ‘섭공호룡’은 춘추시대 섭나라 왕 ‘섭공’의 이야기로, 작가 최인호의 소설 ‘공자’의 제 4장 상가지구(喪家之狗)에 실감나게 묘사되어 있다.

   

▲ 28일 시정연설을 하려 국회본청으로 들어가는 박근혜 대통령.  사진=금준경 기자

 

 

“섭공은 야심가로 마음 속으로 은근히 패권을 꿈꾸고 있었다. 그래서 섭공은 권력의 상징인 용을 매우 좋아하고 있었다. 섭공은 집안 곳곳에 용의 그림을 붙여두고 침구나 이불, 심지어 속옷에까지 용을 수놓고 있었다고 한다. 그렇게 천자의 상징인 용을 가까이 하고 좋아하면 자연 더 큰 권력이 자신에게 찾아올 것이라고 기대하고 있었기 때문이었다.

섭공이 용을 좋아하고 있다는 사실이 세상에 널리 알려지자 마침내 하늘에 있던 진짜 용이 이 소식을 듣게 되었다. 진짜 용은 섭공이 얼마나 자신을 좋아하는지 확인하기 위해서 직접 그의 집을 방문한다. 주인공인 섭공은 용그림에다 용무늬의 벽지 등을 장식하고 있다가 진짜 용한 마리가 창문으로 머리를 들이밀며 들이닥치자 혼비백산하여 도망치고 말았는데...”

최인호는 섭공호룡의 고사는 오늘의 정치현실에도 적합한 비유라고 덧붙여 말하고 있는데, 정말 무릎을 탁치게 하는 식견이다.

“겉으로는 용을 좋아한다, 사랑한다 하면서 진짜 용이 나타나자 혼비백산하여 도망친 섭공처럼 겉으로는 백성을 좋아한다. 백성을 위한다 하면서 실제로는 자신의 사리사욕을 취하는 권력의 속성은 진짜 백성의 고통과 백성의 실체가 드러나면 도망쳐버리는 정치가들의 허명(虛名)과 일맥상통하는 것이다.”

세월호 참사초기, 대통령은 눈물까지 흘리며, 진상규명을 철저히 하겠다고 다짐했다. 유가족들이 원한다면 언제든지 또 만나겠다고 약속했다. 하지만 지금 대통령의 모습은 어떤가. 세월호 사고 초기 7시간 동안 단 한 번의 대면보고도 받지 않은 대통령의 무사안일이 드러나고, 행적의혹이 제기되자 자신과 청와대 측근들에게 정치적 불똥이 튈까봐 피하고 있다. 유가족이 현장에서 “살려달라” 고 이야기했는데도, 그 소리에 눈길 한 번 주지 않았다는 것은 박 대통령이 의식적으로 유가족들을 똑바로 마주치기가 두려웠던 것이다. 용을 좋아한다던 ‘섭공’이 용의 진짜 모습에 놀라 도망치는 모습과 무엇이 다른가. 

   

▲ 28일 시정연설을 위해 국회를 방문한 박근혜 대통령이 눈길한번 주지 않고 국회본청에 입장하자 세월호참사 유가족들이 눈물을 흘리고 있다. 사진=금준경 기자

 

 

박 대통령은 시정연설에선 경제 살리기를 강조하며 “우리 국민들과 국민의 민의를 대변하고 계신 의원님들의 협력과 신뢰가 필요하다”고 주장했다. 대통령은 자식을 잃고 고통에 빠진 불우한 국민에게조차 진정성 있는 신뢰를 주지 못한 채, 이들의 눈길이 두려워 도망치려 하면서, 국민의 협력과 신뢰가 필요하다는 말잔치를 벌이고 있다. 남은 임기 동안 정말 국민의 협력과 신뢰가 필요하다면 대통령이 세월호의 국민들에게서 도망치지 말고 직접 눈을 마주쳐서 신뢰 회복의 진정성을 보여 주어야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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