박근혜 대통령 보좌관 출신으로 막후 실력자로 지목돼온 정윤회씨가 자신과 관련된 여러 의혹을 제기한 시사저널 보도에 대해 가족이 정신적 충격을 겪었으며, 이혼에 합의하는 등 가정 파탄을 초래했다고 주장했다. 시사저널은 이혼소송을 제기한 이후에 보도했는데도 가정 파탄 책임을 언론에 떠넘기고 있다고 반박했다.

서울중앙지법 민사합의25부(재판장 장준현 부장판사)는 19일 정씨가 시사저널을 상대로 제기한 명예훼손 손해배상청구소송 첫 재판에서 정씨측 대리인과 시사저널 대리인의 입장을 듣고 추후 재판일정을 정했다. 

20일 정윤회씨의 소장과 시사저널의 답변서 및 담당변호사 등에 따르면, 정윤회씨는 시사저널 보도로 가정이 파탄났다는 취지의 주장을 폈다. 정씨가 문제삼는 시사저널 기사는 3월 26일자 <박 대통령 ‘비서실장’으로 불리는 정윤회는 누구>, 3월 19일 <박지만 “정윤회가 날 미행했다”>, 7월 9일 <박지만은 파워게임에서 밀렸다>, 4월 9일 <정윤회가 승마협회를 좌지우지한다>, 6월 20일 <정윤회씨 딸, 아시안게임 대표 선발 ‘특혜’ 논란> 등으로, 모두 사실이 아니라는 주장이다.

정씨를 박 대통령 ‘비서실장’으로 불린다고 표현한 보도를 두고 정씨는 소장에서 “정치권에서 떠돈다는 낭설·의혹 도는 ‘여권 한 인사’라고 취재근거를 들고 있으나 이는 취재팀의 자작으로 보여지고, 합리적 근거나 신뢰성 있는 취재원이 아니다”라고 했으며, 박 대통령의 동생 박지만씨가 권력 내부의 파워게임에서 밀렸다는 보도에 대해 정씨는 “어느 하나 확인된 것이 없다는 점을 스스로 인정하면서도 그 이유를 정씨가 베일에 가려있기 때문이라고 주장하고 있으나 이는 날조나 다름이 없다”고 비난했다.

가장 관심을 끈 박지만 미행의혹 보도에 대해 “정씨의 미행사주를 발설했다고 한 박지만 회장에게 확인하지도 않았고, 오토바이 기사 자술서도 입수치 못했으며, 그와 접촉한 바도 없었던 반면, 정씨는 취재진인 피고들에게 이런 사실이 허위임을 분명히 밝혔다”며 “‘복수의 여권 관계자’, ‘여권내의 풍설’을 들고 있으나 믿거나 말거나 식 ‘카더라’”라고 주장했다.

   
지난 3월 19일자로 발행된 시사저널 보도사진.
 

승마협회 영향력 행사 및 특혜논란 보도에 대해서도 정씨는 자신과 승마협회 관계자들이 사실이 아니라고 밝혔는데도 허위로 보도했다고 주장했다.

정씨는 소장에서 자신에 대해 “1998년 4월 대구 달성군 보궐선거 때 박근혜 의원의 비서로 정치권과 처음 인연을 맺었다가 2007년 초 사직한 이후 정치권을 벗어나 평범한 시민으로 살아왔을 뿐, 박 의원 또는 박 대통령이나 비서들과 상호 연락·교류·접촉한 바가 전혀 없다”며 “딸 정유연이 승마선수로 활동하도록 부모로서 격려와 지원을 했을 뿐, 누구도 정유연의 국가대표 선발 경기들에 관여한바가 전혀 없다”고 밝혔다.

소장에서 정씨는 시사저널 보도로 인해 “정신적 충격과 고통을 겪어오다가 (자신과) 처는 가족의 최소한의 명예와 평범한 서민으로서의 인간다운 삶을 지키기 위해 지난 5월 경 이혼에 합의했다”며 “시사저널로 인해 치명적으로 명예를 훼손당했고, 생업에 종사하며 평범한 일상을 영위할 수 없게 됐으며 가정의 파탄과 사랑하는 딸의 심적 상처와 장래에 미칠 악영향에 대한 염려로 정신적 고통을 받았다”고 주장했다.

이를 두고 시사저널과 기자들은 이날 법정에 제출한 준비서면에서 정씨가 공인임이 자명하며 오래 전부터 제기돼온 의혹을 취재해 국민에게 전달할 권리가 있다고 반박했다.

시사저널 기자들은 정씨에 대해 “사회적 관심의 대상인 공적인 존재로, 공직에 있지는 않지만 2007년 이후부터 현재까지도 정치권에서 상당히 영향력이 있는 인물로 추정돼 언론에서 현재까지 지속적으로 언급되고 있다”며 “공적인 존재라는 것은 자명한 사실”이라고 밝혔다.

시사저널은 “공적인 존재인 정씨에 대한 각종 의혹 및 사건에 대해 적극적 관심과 감시가 필요함에도 일반 국민들로서는 그에 대한 정보를 얻기 쉽지 않아 언론이 그 역할을 다해 의구심을 해소할 수 있어야 한다”며 “공적인 존재에 대한 의혹이 존재한다는 사실을 보도하는 것 자체가 봉쇄돼서는 안될 것”이라고 설명했다.

   
시사저널 3월 19일자 보도 온라인판에 실린 정윤회씨 사진
 

정씨와 관련한 각종 의혹에 대해 시사저널은 “수년간 동일한 의혹을 꾸준히 받는 등 정씨 스스로 어느 정도 자초한 것으로, 수인(감수)해야 한다”며 “보도 내용은 공공의 이익을 위한 것으로 그 내용이 진실하거나 시사저널이 이를 진실하다고 믿을 만한 상당한 이유가 있었으므로 위법성이 없다”고 밝혔다.

박지만씨 미행이 사실무근이라는 정윤회씨 주장에 대해 시사저널과 기자들은 준비서면에서 “신뢰성이 있는 각기 다른 세 명의 취재원으로부터 정씨가 박 회장을 미행했다는 얘기를 듣고 한 달 이상 취재기간을 거쳐 이 같은 내용을 진실이라고 믿고 게재한 기사”라며 “박지만 회장으로부터 기사에 대한 정정 청구나 항의를 받지 않았다”고 말했다. 이들은 “정씨와 전화인터뷰 내용을 모두 상세히 적시해 반론과 해명이 충분히 게재되도록 했다”고 설명했다.

시사저널 기자들의 대리인인 박제연 변호사(법무법인 다올)는 20일 미디어오늘과 인터뷰에서 “검찰이 박지만씨를 소환하는데 부담을 느껴 서면으로 알아보고 있는데 아직 회신을 받았는지는 모르겠다”며 “검찰에서도 취재원(박지만씨를 미행했다는 오토바이 기사)을 밝혀달라고 하지만 우리는 밝힐 수 없다는 입장”이라고 말했다. 

정윤회씨를 마치 ‘베일의 인물’로 조작했다는 주장에 대해 시사저널측은 “2007년 대선 당시부터 현재까지 많은 언론으로부터 베일에 가려진 인물로 평가받고 있었으며, 최근에도 정씨에 대한 보도가 앞다퉈나오고 있다”고 반박했다. 

시사저널 보도로 가정파탄이 일어났다는 주장에 대해 박제연 변호사는 “(정씨) 부인이 이혼조정 신청을 한 건 3월 27일이고 승마선수인 딸의 아시안게임 대표 선발 특혜 논란 등 가족과 관련된 기사가 나간 시점은 4월 이후”라며 “시기 자체가 전혀 맞지 않는데도, 마치 우리 기사로 본인이 가정파탄에 이르렀다면서 파탄의 원인을 피고에 돌리고 거액 위자료를 청구한 것은 부당하다”고 지적했다.

이번 소송을 제기한 데 대해 박 변호사는 “정윤회씨가 스스로 평범한 시민에 불과하다고 말하는 것도 이해하기 어려우며, 공인으로서 제기받은 의혹을 충분히 취재해 알리는 것 자체를 봉쇄하겠다는 것은 언론자유를 침해하는 것”이라고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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