국내 한 경제신문에서 기자로 일하고 있는 A씨는 5개월 전까지만 해도 B 인터넷매체 6개월 계약직 기자였다. 그는 B사에 입사할 때만 해도 6개월 계약직 후 정규직 전환을 약속받았다.

하지만 6개월 계약이 종료된 시점에서도 회사는 아무런 통보 없이 계속 일을 시켰다. 결국 회사 사정이 어려워지면서 A씨는 한 달을 더 일하고 ‘계약종료’로 직장을 잃었다. 

A씨가 계약만료 통보를 받은 시점은 퇴사하기 불과 10일 전쯤이다. 편집국에선 한 달 전 미리 통보하지 못해 퇴직 위로금이라도 주겠다고 했지만 인사팀은 계약직이므로 그럴 의무가 없다며 월급만 지급하겠다고 했다. 

A씨는 미디어오늘과 인터뷰에서 “회사가 나를 구성원으로서가 아닌 회사 사업에 따라 언제든 채용하고 버릴 수 있는 부품처럼 생각했다. (정규직 전환이 안 된다고) 미리 알려줬으면 덜 상처받았을 텐데, 정규직 단물을 주다가 단칼에 잘리니까 영락없는 실업자 신세가 됐다”고 말했다. 그는 현재 다른 매체에 입사했지만 B사에 같이 입사했던 다른 동기는 직장을 구하지 못해 대학원에 진학했다.

언론사 입사를 준비하는 C씨는 지역일간지 D사 3차 면접까지 합격했지만 한 달간 진행된 4차 실무평가 후 지난달 최종합격자 명단에서 제외됐다. C씨만이 아닌 함께 실무평가를 봤던 지원자 3분의 2가 탈락의 고배를 마셨다.

   
▲ 일러스트=권범철 만평작가
 

“6개월 후 정규직 약속하고선 계약직이라 위로금도 안 줘”

D사는 면접 합격자들에게도 실무평가 후 최종 몇 명을 뽑는다는 얘기를 하지 않았다. 이 같은 채용 과정의 불투명성이 가져온 피해는 컸다. 탈락자 대부분이 언론사 공채가 집중됐던 D사 장기 실무평가 기간에 타 언론사 지원을 포기해야 했다.

D사는 면접 합격자들에게도 실무평가 후 최종 몇 명을 뽑는다는 얘기를 하지 않았다. 지원자들은 살아남기 위해 경쟁하면서도 혹시나 모를 기대감에 부풀었다. 그러나 채용 과정의 불투명성이 가져온 피해는 컸다. 탈락자 대부분이 언론사 공채가 집중됐던 D사 장기 실무평가 기간 타 언론사 지원을 포기해야 했다.

이에 대해 C씨는 “같이 실무평가를 봤던 지원자 중에는 D사 지역에 거처가 없는 친구도 있어, 숙식 제공도 아닌 상황에서 3분의 1만 뽑는다고 했으면 안 갔을 수도 있었을 것”이라며 “회사 입장에선 영혼까지 바치는 사람을 뽑는 게 이득이겠지만, 다음에도 이런 식으로 채용을 진행한다면 좋은 지원자들이 기피하는 상황이 발생할 수 있다”고 지적했다.

신입 사원 채용 과정에서 철저히 ‘갑’인 회사의 이익만을 생각해 취업 시장의 좁은 문을 통과하려는 ‘을’ 지원자들의 희생을 강요하는 언론사가 갈수록 증가하는 추세이다.

최근 채용이 진행 중인 언론사 중에도 정규직 전환율의 차이는 있지만 장기간 계약직(인턴) 채용 후 정규직으로 전환한다거나, 짧게는 2주에서 길게는 2달가량을 실무평가 후 최종합격자를 선발하는 곳이 많다. 

   
▲ 지난해 4월 TBC 대구방송 채용공고
 

최근 신입기자 공채를 진행한 연합뉴스TV(뉴스Y)는 근무조건으로 ‘1년 계약직 후 정규직 전환’을 명시했으며, 연합인포맥스는 “인턴 6개월 기간 내 근무성적 우수자는 바로 정규직으로 채용한다”고 공지했다. 머니투데이는 2개월 편집국 취재기자 실습평가 후 최종합격자를 발표할 방침이며 CBS는 5차 최종면접 합격자에 대해 2주 동안 ‘예비합격자’로 임용, 6차 전형 평가와 심사를 거쳐 최종합격자로 선발한다고 밝혔다.

이 중에는 결격사유가 없는 한 정규직 전환을 약속한 곳(뉴스Y)도 있지만, 언급된 언론사 외에도 정규직 전환 비율이나 최종합격 인원을 지원자들에게 공개하지 않는 곳이 대부분이다.

“장기 인턴·실무평가제, 사상검증으로 변질될 우려도”

이 같은 언론사 채용 방식에 대해 한 신문사 편집국장은 15일 미디어오늘과 인터뷰에서 “통상적으로 영어나 논술 평가만으로 그 사람의 재능을 충분히 못 볼 측면이 있어 심층적으로 현장 실무 능력을 보면서 평가하는 게 맞을 것 같아 이런 채용 방식을 도입했다”며 “신입 공채의 경우 기존에 직장을 다니던 지원자가 위험을 감수해야 하는 부담이 있는지, 최종선발 인원 사전 공지가 필요한지 등을 검토해 보겠다”고 말했다.

한 지역일간지 총무부 관계자도 “아무래도 짧은 2~3일만으론 지원자를 평가하는 데 한계가 있어 올해 시범적으로 장기 실무평가제도를 도입했는데 내부에서도 너무 길다는 얘기가 있었다”며 “우리도 좋은 인재를 뽑으려고 하는 것이므로 응시생들의 불편을 고려해 다음 채용 때는 다양한 지적을 반영토록 하겠다”고 밝혔다.

언론사들의 장기 인턴(실무) 평가 후 채용 방침에 대해 남재일 경북대 신문방송학과 교수는 15일 미디어오늘과 인터뷰에서 “인턴제도로 인한 심적·물리적 경쟁이 치열한데 이런 방식의 채용은 다른 언론사에 갈 수 있는 기회도 박탈한다”면서 “채용하는 사용자에 비해 상대적으로 약한 노동자를 이용하는 ‘갑질’이 갈수록 심해지고 있다”고 비판했다. 

남 교수는 “순수하게 합리적인 잣대로 뽑는 게 아니라 조직에 순응적인 사람을 찾거나 사상검증을 하는 등 불합리한 방식으로 변질될 소지도 있다”며 “정당성이 약한 불확실한 장기 실무 평가는 지원자에게 굉장히 많은 희생을 요구하며 비민주적인 조직일수록 적응도를 강조하게 마련”이라고 지적했다. 

그러면서 남 교수는 “증가하는 채용 부담을 지원자들에게 떠넘기기보다 언론사에서 새로운 채용에 대한 내부적 비전을 가지고 그에 따른 리스크를 부담하는 게 맞다”고 강조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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