헌법재판소의 통합진보당 정당해산 선고가 하루 앞으로 다가오면서 긴장감이 흐르고 있다. 해산 선고가 기각되거나 해산 선고 결정이 내려질 경우 모두 정치적 후폭풍이 만만치 않기 때문이다. 

만약 해산 선고가 내려지면 한국 정치사 처음으로 법의 판단에 따라 정당이 해산되는 일로 기록된다. 과거 독재정권 시절 정당 해산 ‘조치’는 정권에 맞선 반대파를 탄압하는 수단이었다. 이승만 정권은 진보당 조봉암 선생이 북한과 내통했다는 혐의로 진보당을 해산시켰고 박정희 정권은 유신헌법으로 국회를 해산시켰다. 

통합진보당이 정권에 위협적이진 않지만 박근혜 정부가 통합진보당을 활용해 위기를 타개해 온 것은 분명하다. 국정원 댓글 사건으로 정권의 정당성 문제가 불거지자 이석기 내란 음모 사건이 터졌고, 통합진보당 정당 해산 문제로까지 이어졌다. 선거 국면에서 다른 야당과의 선거연대도 '종북정당'으로 매도당하면서 외면을 당하고 색깔론 공세에 시달렸다. 

현재 파문이 지속되고 있는 정윤회 문건 논란도 통합진보당 선고 일짜가 19일로 잡히면서 급속히 냉각되는 분위기다. 박근혜 정부 입장에선 상당한 호재로 작용하고 있다. 정부와 집권여당은 정치적 해석을 경계하고 있지만 통합진보당 해산 선고가 내려지면 급속히 공안정국으로 전환되면서 표현의 자유를 위축시킬 것이라는 전망이 나오고 있다. 

통합진보당 해산이 기각되더라도 박근혜 정부 입장에서 큰 손해는 없다. 무리한 정당 해산 시도라는 비판이 쏟아지겠지만 끝까지 정부는 이제 종북 세력의 활약을 막지 못할 것이라며 정치적 공세를 정당화시킬 것으로 예상된다. 

'통합진보당이 없었으면 박근혜 정부는 어땠을까'라는 비아냥도 나온다. 헌법재판소가 정치적으로 정당 해산 청구를 기각할 수 없을 것이라는 전망이 나오는 것도 박근혜 정부가 통합진보당 해산에 따른 정치적 효과를 기대하고 있기 때문이다. 

선고 쟁점은 크게 두 가지이다. 통합진보당이 북한 정권과의 유사성을 가지고 있고, 이것이 민주적 기본질서를 헤칠 수 있는 실체적 위협을 가지고 있느냐다. 

정부는 "정당의 목적과 활동이 기본적 민주 질서에 위배될 때 헌재에 정당 해산을 재소할 수 있다"는 헌법 제8조 4항을 들어 진보당의 '진보적 민주주의' 강령이 현 정권을 타도하고 연방제 통일을 목표로 하고 있다고 강조한다. 정부는 통합진보당이 북한식 사회주의를 실현하고자 하는 것이라고 주장했다. 

정부는 또한 현재 진보당의 강령으로 정권을 잡으면 북한식 사회주의 목적을 가진 정당으로 탈바꿈할 수 있다고 주장했다. 먼 미래의 알 수도 없는 일을 가정으로 위협이 될 것이기 때문에 해산시켜야 한다는 논리이다. 반면 진보당은 "사회주의 이상과 가치의 승계를 강령에 명시했을 때는 문제 삼지 않다가 오히려 이를 폐지한 이후 위장이라며 문제 삼는 모순된 주장을 하고 있다"고 반박했다. 

헌재가 해산 심판 청구를 기각한다면 비례성의 원칙을 인용할 가능성이 높다. 정부가 통합진보당에 위헌성이 있긴 하지만 집권 가능성이 적고 구체적인 폭력의 징후가 없기 때문에 해산시키는 것은 너무하다는 주장을 철저히 무시하고 있는 것도 비례성의 원칙이 기각 결정의 근거가 될 수 있기 때문이다. 정부는 독일이 공산당을 해산할 때도 집권 가능성과 실체적 위협에 대해 판단하지 않았다고 강조하고 있다. 반면 진보당은 정당 해산이 '참새를 잡는데 대포를 쏘는 격'이 되면서 한국 민주주의에도 악영향을 미칠 수 있다고 주장한다. 

지난 1년 동안 정부와 진보당의 변론을 취재해왔던 통합진보당 기관지 <진보정치> 권종술 편집장은 18일 미디어오늘과 인터뷰에서 "일부 강령이나 당원들의 기고글에서 민주적 기본 질서를 헤치고 헌법에 위배되는 내용이 있지만 당의 공식적인 입장으로 귀속될 수 없다고 판결할 수 있다"고 전망했다.

   
▲ 지난 17일 국회에서 열린 ‘통합진보당 강제해산 반대와 민주주의 수호를 위한 2차 원탁회의’에서 참가자들이 ‘정당해산은 민주주의가 아닙니다’라고 적힌 피켓을 들고 있다. 사진=통합진보당 제공
 

진보당 내부에서는 정당 해산에 찬성하는 재판관이 5명, 반대하는 재판관 4명이 되면서 해산 청구가 기각될 수 있다는 기대를 걸고 있다. 정당 해산은 9명 재판관 중 6명 이상 찬성으로 결정된다. 

일례로 지난 3월 민주노동당에 후원금을 냈다는 혐의로 기소돼 재판을 받은 정진후 정의당 의원(전 전교조 위원장)은 공무원과 교사의 정치활동을 금지하고 있는 현행 정당법과 국가공무원법에 대해 헌법 소원을 제기했다.

헌법재판소는 "공무원의 정치적 중립성과 교육의 중립성 확보를 위해 정당가입을 금지한 것은 과잉금지원칙에 어긋나지 않는다"며 정당법과 국가공무원법에 대해 합헌 결정을 내렸지만 박한철 소장과 3명의 재판관은 "공무원과 교원의 정치행위를 규제한 것은 정당하지만, 정당가입까지 금지한 것은 과잉금지원칙에 어긋난다"는 위헌 의견을 냈다. 

9명의 재판관 중 진보 개혁적 인사로 3명을 꼽고 있지만 판사 출신의 재판관들이 기존 보수적 판결 입장을 깨고 해산 반대에 손을 들어주면 5대 4로 기각이 될 수 있다는 것이다. 하지만 진보당 관계자는 "법리 내용으로 보면 기각이 될 수 있는 여지가 많지만 정치적으로 보면 기각 판결이 나올 수 없다"며 조심스런 입장을 밝혔다. 

정당 해산이 선고되면 진보당 의원 5명의 의원직 상실로 이어질 지도 불확실하다. 정당 해산에 따른 후속 조치 법이 없기 때문이다. 예를 들어 진보당의 국고 보조금을 환수하려고 해도 당원들이 내는 당비가 포함돼 있어 이를 구별할 수 없다는 의견도 있다.

진보당은 선고 일짜가 잡힌 직후 이정희 대표를 수장으로 한 ‘통합진보당 강제해산 저지 민주수호 투쟁본부’로 당 조직을 전환시키고 농성에 돌입했다. 19일 오전 헌법재판소 앞으로 전국 당원들이 집결하고 선고 이후 촛불 집회를 개최할 예정이다. 

이정희 대표는 이날 오후 연석회의에서 "국민의 피어린 민주항쟁으로 탄생한 헌법재판소가 민주적 다원성을 부정하는 세력의 전횡에 제동을 거는 판결을 내려주기를 간절히 호소한다"고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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