헌법재판소가 19일 통합진보당 해산심판 및 정당활동 정지 가처분 신청 사건에 대해 통합진보당의 해산을 선고했다. 박한철 소장을 포함한 재판관 8인은 해산청구 인용을, 김이수 재판관은 기각 의견을 제출하면서 재판관 9인 중 6인 이상이 찬성해 해산이 결정됐다.

해산 결정은 이석기 의원 내란 음모 사건이 크게 작용했다.

해산 찬성(인용) 의견을 낸 8인의 재판관은 결정 이유를 통해 통합진보당의 강령인 '진보적 민주주의'에 대해 "특정한 내용을 담고 있다고 보기 어렵다"면서도 "진보적 민주주의는 이른바 자주파에 의해 피청구인 강령이 도입됐다"고 밝혔다.

경기동부연합, 광주전남연합, 부산울산연합의 주요 구성원들을 자주파, 진보당의 주도세력이라고 보고 "우리 사회가 특권적 지배계급이 주권을 행사하는 거꾸로 된 사회라는 인식 아래 대중 투쟁이 전민항쟁으로 발전하고 저항권적 상황이 전개될 경우 무력행사 등 폭력을 행사하여 자유민주주의 체제를 전복하고 헌법 제정에 의한 새로운 진보적 민주주의 체제를 구축하여 집권한다는 입장을 가지고 있다"는 것이다. 8인 재판관은 "이들의 이러한 입장은 이석기 등의 내란 관련 사건으로 현실로 확인되었다"고 덧붙였다.

이들은 내란 사건의 근거가 됐던 지난해 5월 모임에 대해서도 "회합을 주도한 이석기의 경기동부연합의 수장으로서의 지위 및 이 사건에 대한 피청구인(통합진보당)의 전당적 옹호 및 비호 태도 등을 종합하면 이 회합은 피청구인의 활동으로 귀속된다"고 판단했다.

8인 재판관은 "내란 관련 사건에서 피청구인 구성원들이 북한에 동조하여 대한민국의 존립에 위배를 가할 수 있는 방안을 구체적으로 논의한 것은 피청구인의 진정한 목적을 단적으로 드러낸 것으로 표현의 자유의 한계를 넘어 민주적 기본질서에 대한 구체적인 위험성을 배가한 것"이라며 "우리 사회의 민주적 기본질서에 대해 실질적인 해악을 끼칠 수 있는 구체적 위험성을 초래하였다고 판단되므로, 우리 헌법상 민주적 기본질서에 위배된다"고 밝혔다.

결국 이석기 내란 음모 사건이 진보당 해산의 결정적 근거가 된 셈이다. 

8인 재판관은 정당해산결정이 비례의 원칙에 위배되는지 여부에 대해서도 "정당 해산 결정으로 민주적 기본질서를 수호함으로써 얻을 수 있는 법익은 정당해산 결정으로 초래되는 피청구인의 정당 활동 자유의 근본적 제약이나 민주주의에 대한 일부 제한이라는 불이익에 비하여 월등이 크고 중요하다"고 판단했다.

이들은 "피청구인 주도세력(경기동부연합 등 통합진보당 자주파)은 언제든 그들의 위헌적 목적을 정당의 정책으로 내걸어 곧바로 실현할 수 있는 상황에 있다"며 "따라서 합법정당을 가장하여 국민의 세금으로 상당한 액수의 정당보조금을 받아 활동하면서 민주적 기본질서를 파괴하려는 피청구인의 고유한 위험성을 제거하기 위해서는 정당해산 결정 외에 다른 대안이 없다"고 밝혔다.

   
▲ 이정희 대표 등 통합진보당 지도부가 19일 헌법재판소 대심판정에 들어서고 있다.
이치열 기자 truth710@
 

8인 재판관은 현재 진보당 소속 5인의 국회의원 의원직도 상실돼야 한다는 의견을 밝혔다.

이번 통합진보당 해산 청구 사건은 헌법 8조 4항에 근거하고 있지만 후속 조치인 해산 정당 소속 의원들에 대한 후속 조치 내용은 관련된 법 규정이 없는 상황이다. 

이들은 "해산되는 위헌정당 소속 국회의원이 의원직을 유지한다면 위헌적인 정치이념을 정치적 의사 형성 과정에서 대변하고 이를 실현하려는 활동을 허용함으로써 실질적으로는 그 정당이 계속 존속하는 것과 마찬가지의 결과"라며 "해산 정당 소속 국회의원의 의원직을 상실시키지 않은 것은 결국 정당해산제도가 가지는 헌법 수호 기능이나 방어적 민주주의 이념과 원리에 어긋나고 정당해산 결정의 실효성을 확보할 수 없게 된다"고 밝혔다.

재판관 9인 중 유일하게 해산 청구 기각 의견을 낸 김이수 재판관은 8인의 재판관과 정반대의 입장을 밝혔다. 김 재판관이 제출한 기각 결정 이유는 정부(청구인)의 주장을 조목조목 반박하는 형식으로 이뤄졌다. 

김 재판관은 '진보적 민주주의' 강령에 대해 "진보적 정치세력들에 의하여 수십 년에 걸쳐 주장되고 형성된 여러 논리들과 정책들을 선택적으로 수용하고 조합한 것으로서 실질적으로 광의의 사회주의 이념으로 평가될 수 있으나, 민주적 기본질서에 위배되는 내용을 담고 있지는 않다"고 판단했다.

또한 김 재판관은 "피청구인(통합진보당)이 우리 사회의 문제를 구조적인 것으로 인식하여 구조적이고 급진적인 변혁을 추구하고 있다고 하더라도 단순히 확립된 질서에 도전한다는 명분으로는 민주 국가에서 금지되는 행위가 되지 않는다"고 밝혔다.

김 재판관은 진보당의 강령과 활동이 북한과 유사하다는 정부의 주장에 대해서도 "정부와 권력에 대한 비판적 정신과 시각이 북한과의 연계나 북한에 대한 동조라는 막연한 혐의로 좌절되는 일이 재발하지 않도록 하기 위해서는 북한의 주장과 유사하다는 점만으로 북한 추종성이 곧바로 증명될 수 있다고 보아서는 안된다"고 밝혔다.

다만, 김 재판관은 이석기 의원 내란 사건에 대해 "국민의 보편적 정서에 어긋나는 것 일뿐 아니라 이러한 모임을 되풀이하거나 구체적 실행으로 나아갈 개연성 등을 고려하면 이러한 모임을 되풀이하거나 구체적 실행으로 나아갈 개연성 등을 고려하면 민주적 기본질서에 위배된다"면서도 "이 사건 모임이나 그 모임에서 이루어진 구체적 활동으로 인한 민주적 기본질서 위배의 문제를 피청구인 정당 전체의 책임으로 볼 수는 없다"고 밝혔다.

김 재판관은 비례 원칙에 대해서도 "피청구인(진보당)의 해산결정으로 인해 초래될 사회적 불이익은 민주 사회의 순기능에 장애를 줄 만큼 크다"며 8인의 재판관과 정반대의 의견을 밝혔다.

김 재판관은 "피청구인(진보당)에 대한 해산결정은 우리 사회가 추구하고 보호해야할 사상의 다양성을 훼손하고 특히 소수자들의 정치적 자유를 심각하게 위축시킬 수 있다"고 강조했다.

김 재판관은 또한 "피청구인(진보당) 소속 당원들 중 북한의 대남혁명론에 동조하여 대한민국의 민주적 기본질서를 전복하려는 세력이 있다면 형법이나 국가보안법 등을 통해 그 세력을 피청구인의 정책결정과정으로부터 효과적으로 배제할 수 있다"면서 국회의원 의원직 상실에 대해서도 "국회는 이를(국가질서 훼손) 스스로 밝혀내 자율적인 절차를 통해 그들을 제명할 수 있는 길도 열려 있다"고 밝혔다.

김 재판관은 마지막으로 "정당해산제도는 비록 그 필요성이 인정된다고 하더라도 최대한 최후적이고 보충적인 용도로 활용되어야 하므로 정당 해산 여부는 원칙적으로 정치적 공론의 장에 맡기는 것이 적절하다"고 밝혔다.

이번 해산 찬성 결정은 항소 중인 사건이 이석기 내란 음모 사건을 주요 근거로 인용하면서 논란이 예상된다. 

형사 재판부는 이석기 의원의 내란 음모 혐의에 대해서는 무죄를 선고했고 RO의 실체가 있다고 인정하지 않았다. 그런데 헌법재판소가 이 의원의 발언과 활동을 진보당으로 귀속시켜 해산을 결정하는 것이 맞느냐의 의문이 나온다. 

이에 대해 김정원 헌법재판소 선임부장연구관은 "헌재의 판결과 내란 음모 사건은 별개의 문제"라면서도 "RO 실체 형사 판결 사실 중에 헌재가 인정한 사실은 이석기 의원의 내란과 관련된 활동이다. 내란과 관련된 활동이 민주적 기본 질서에 위배되는지 사실을 인정한 것으로 이해하면 된다"고 말했다.

최종 변론 기일 후 채 한달도 안돼 선고일이 잡으면서 정치적 의도가 있는 것 아니냐는 지적에 대해서도 헌법재판소는 "헌재 사건은 1~2심이 존재하지 않고 최종심이기 때문에 1년에 걸쳐 변론 기일이 여러 번 진행된 사정이 있고 변론 종료 후에 지금 시점을 가리켜 너무 빠르다든지 급하게 했다고 해석하는 것은 어렵다"고 해명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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