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야근해도 한 달에 90만원 밖에 못 받는데 차라리 너처럼 알바하는 게 나은 거 같다.” 친구들이 재희(가명.23)씨에게 하는 말이다. 재희씨는이 말에 어느 정도는 동의하지만 또 동의하지 못 한다. 자신의 일상이 ‘온전한 선택’이 아니라 ‘강제된 선택’ 이기 때문이다. 그는 3년 전 대학을 자퇴했고 지금은 약국에서 물약을 통에 담는 일을 한다. 시급은 6000원. 하루 5시간 근무이고 토요일은 격주로 일한다. 

이렇게 해서 버는 돈은 한 달에 60만원에서 70만원 사이다. 고정지출로 휴대전화 단말기 할부금 16만원과 휴대전화 요금 4만원, 교통비 5만원이 나간다. 끼니는 모두 집에서 해결한다. 대신 가끔 마트에서 장을 본다. 그리고 남는 돈은 저금을 하려고 노력한다. 목표는 한 달에 20만원이다. 하지만 지금 통장에 있는 돈은 30만원 수준이다. 치과 치료로 모아두었던 돈이 ‘뭉텅뭉텅’ 빠져나갔다. 

외식이나 커피는 친구를 만났을 때뿐이다. 친구는 한 달에 3번 정도 만난다. 친구를 만날 때 쓰는 돈은 한번에 2만5000원 정도다. 쇼핑은 두세 달에 한 번씩 한다. 돈을 모아뒀다가 할인 기간에 맞춰서 사는 편이다. 최근에 구매한 옷은 SPA브랜드의 2만4500원짜리 청바지다. 문화생활이라고 할 수 있는 건 출퇴근 전 하는 웹서핑이 전부다. 적게 일해 적게 벌고, 적게 쓰는 삶이다.  

하지만 재희씨 일상에서 볼 수 있듯 그는 노동 외 시간을 ‘여유롭게’ 보내지는 못했다. 자기계발도 사회적 관계 유지도 모두 돈이 없으면 안 된다. 그리고 그는 이 강제된 선택의 가장 큰 이유로 터무니없이 낮은 시급을 꼽았다. 그는 적정한 대가를 받을 수 있다면 더 오래 일할 생각이 있다. 그는 “적은 돈을 받으면 ‘이 돈 받으려고 이 고생을 하나’라는 생각에 의욕도 떨어진다”고 말했다. 

재희씨는 자신의 삶에 만족하지 않는다. 달관할 수 없다고 했다. 그는 “알바로 한 달 70만원을 버는데 만족하는 사람이 있다면 그 사람은 서민층이 아닐 가능성이 높다“고 말했다. 언제든 벗어날 수 있는 안전망이 있을 거라는 짐작이다. 재희씨는 이어 ”만약 내가 내 상황에 달관하게 된다면 그건 내가 진정으로 달관하는 게 아니다. 사회가 나를 포기하게 만든 결과일 것“이라고 말했다. 

   
▲ 청년유니온 회원들이 지난 해 9월 홍대 인근의 커피전문점, 편의점, 옷가게 등지에서 일하는 아르바이트생들에게 송편을 나누는 캠페인을 진행하고 있다. 기사 내용과는 무관함. 사진=연합뉴스
 

“만족한다면 그건 달관이 아니라 포기일 것”

그렇다면 어느 정도 ‘적정한 대가’는 받지만 고용은 불안한 2030대는 어떨까. 서울대를 수료한 건웅(가명.30)씨는 오전 9시쯤 일어나 집에서 밥을 먹고 오후 1시까지 웹서핑이나 게임을 한다. 오후 2시부터 10시까지는 학원에서 중고등학생을 대상으로 수학을 가르친다. 일은 일주일에 4일만 한다. 그렇게 해서 버는 돈은 한 달 140만 원 정도다. 시급으로 따지면 1만원이 조금 넘는다.  

가장 큰 지출은 월세 50만원이다. 휴대전화 요금과 함께 사는 고양이 두 마리에 들어가는 비용 정도가 고정지출이다. 외식은 거의 하지 않고 반찬만 사 먹는다. 쇼핑은 계절마다 한번씩, 상설 할인 매장에서 한다. 문화생활은 영화가 전부인데 2~3주에 한 번씩 집 앞 영화관에 간다. 일주일 중 일하지 않는 3일은 대개 집에서 컴퓨터 게임을 하며 보낸다. 연애는 하지 않는다. 

대기업에 취업할 생각은 원래 없었다. 취업준비에 들어가는 1~2년이 아까웠다. 성격상 주류에 편입하고 싶은 생각도 별로 없었다고 했다. 이 선택을 하기 전부터 건웅씨는 자신의 학벌이 ‘최소한의 임금’을 보장해줄 것이란 사실을 알고 있었다. 그는 “아르바이트 등 다른 비정규직에 비하면 나는 적당히 받는 것 같다”고 말했다. 그는 자신의 처지가 나쁘다고 생각하지 않는다. 

하지만 건웅씨는 “변수가 생긴다면 이런 식의 삶은 고수하기 힘들 것 같다”고 말했다. 그가 말하는 변수는 결혼, 양육, 질병 등이다. 그는 “아프면 큰일 나는 것”이라고 말했다. 현재 그가 가입한 보험은 없다. 더 큰 문제는 그가 자신의 삶의 질이 더 나빠질 것이라 전망하는 데 있다. “지금이 내 인생에서 소득이 가장 높은 시기일 것이다. 2년 뒤 새로운 일자리를 구한다면 더 불안정한 형태일 것 같다. 그래서 지금 더 바짝 모아야 할 것 같다.”

“내가 선택한 건 맞다. 그렇다고 만족하는 건 아니다. 이 수준의 돈과 생활로 만족이라는 말은 나올 수 없다. 이런 생활에 만족한다는 건 ‘난 고통을 즐겨요’라는 거랑 같은 거라고 생각한다.” 만약 취업 준비에 오랜 시간을 들이지 않아도 됐다면 어땠을까? 그는 “지금과 다른 노동형태를 선택할 수 있었을 것 같다”고 말했다. 

   
▲ 조선일보 2월 24일자 11면 기사
 

“달관세대? 1년 그렇게 살아보니…”

서영(가명.29)씨는 하고 싶은 일을 배우기 위해 1년간 과외 등을 하며 생활한 경험이 있다.  ‘왜 취업을 안 하냐’는 시선에도 자신이 하고 싶은 일을 택했다는 자부심이 있었다. 서영씨는 “사실 직장인들보다 하고싶은 일을 하는 내가 우월하다는 생각도 있었다. 나는 활동가면서 예술가라고 생각했다”고 말했다. 

낮에는 영화 작업을 하고 저녁에는 과외를 했다. 운이 좋으면 주말에 촬영 아르바이트를 하기도 했다. 촬영 아르바이트는 수입이 짭짤했다. 하루 일하고도 30만원씩 벌었다. 서영씨의 평균 수입은 한 달 70만원 정도였고 많을 때는 200만원에 달했다. 서영씨 스스로도 일하는 시간 대비 버는 돈은 나쁘지 않았다고 생각했다. 

서영씨가 이 길을 택한 건 학벌과 부모님이라는 안전망이 있기에 가능한 것이었다. 서울 소재 명문대를 졸업한 그는 ‘한 달짜리 계약이라 불안하긴 하지만’ 언제든 과외를 구할 수 있었다. 동생과 함께 사는 투룸의 보증금과 월세는 부모님이 부담했다. 주거와 관련해 그가 부담하는 비용은 공과금이 전부였다.  

하지만 늘 불안에 시달렸다. 그 역시 건웅씨가 말한 ‘변수’가 두려웠다. “제일 두려웠던 게 ‘아프면 어떡하지’였다. 실제 주변 프리랜서들을 보면 40대 50대가 되니까 몸이 고장나더라. 그때 어른들에게 자주 들었던 말이 ‘자유적금이라도 들라’는 것이었다. 그런데 당시 나는 내 몸은커녕 함께 사는 고양이 병원비도 없어서 돈을 빌려야 했다.”

결국 서영씨는 1년 만에 영화 작업을 그만뒀다. 지금은 중소기업에서 한 달에 200만원 정도를 받으며 일한다. 야근도 잦고 주말에 당직 해야한다. 자신의 노동에 대한 적정한 대가를 받고 있다고 생각하지 않는다. 그럼에도 다가오지 않은 미래에 대해 걱정하지 않는다는 점이 이전보다 낫다고 했다. 그는 한 달에 50만원씩은 저금하고 있다. 

서영씨가 그 1년을 겪으며 깨달은 게 있다. 그는 “달관할 수 있는 사람은 크게 두 종류다. 첫째, 부모님이 부자라서 미래 변수가 걱정 없는 사람. 둘째, 복지국가의 국민”이라고 말했다. 그러면서 그는 "과외 같은 한달 계약직이 아닌, 모든 노동의 최저임금이 1만원이고 무상의료가 갖춰진 나라였다면 나는 영화를 그만두지 않았을 것"이라고 덧붙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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