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근무시간에 뭐하고 있어. 근무시간엔 일을 해야지 뭐하고 있어.”

박노황 신임 연합뉴스 사장의 쩌렁쩌렁한 고성이 사장실 복도를 가득 메웠다. 냉랭해진 분위기 속에서 노조 집행부 10여 명은 편집총국장제 사수를 위한 피케팅을 접고 자리를 떠났다. 26일 오전 8시 30분 연합뉴스에서 벌어진 일이다. 

언론노조 연합뉴스지부(연합뉴스지부)는 이날 오전 8시께부터 연합뉴스 사옥 사장실 앞 복도에서 편집총국장제 사수와 공정 보도를 위한 피케팅을 진행했다. 박 사장의 첫 출근길에 조합원의 뜻을 직접 전하겠다는 취지였다. 편집총국장제도는 편집권 독립을 보장하고 있다는 평가를 받는 제도로서 연합뉴스지부가 지난 2012년 103일 파업을 통해 얻어낸 성과물이다. 

   
▲ 언론노조 연합뉴스지부(연합뉴스지부)는 26일 오전 8시께부터 연합뉴스 사옥 사장실 앞 복도에서 편집총국장제 사수와 공정 보도를 위한 피케팅을 진행했다.
 

<관련기사 : 연합뉴스 사장 “편집총국장제, 경영권 침해하는 불합리 요소”>

20여 분 있다 사장실 복도에 들어선 박 사장은 조합원을 지나친 뒤 오정훈 연합뉴스지부장과 인사와 악수를 나눴다. 오 지부장은 “(편집총국장제와 관련해) 대화로 잘 풀었으면 한다”는 뜻을 전했고, 박 사장도 웃음을 머금은 채 호응하는 듯했다. 

하지만 그는 복도에서 피케팅을 하고 있는 집행부를 향해 “근무시간에 뭐하고 있어”, “근무시간엔 일을 해야지”라며 몇 차례 고성을 질렀다. 예기치 못한 박 사장의 흥분에 사측 관계자도 당황하는 모습을 보였다. 그의 출근을 저지한 것도 아니었음에도 박 사장은 노조 행위를 용납할 수 없다는 입장을 내비쳤다. 충돌을 우려한 오 지부장은 집행부를 이끌고 철수했다. 

   
▲ 박노황 연합뉴스 사장(오른쪽)은 복도에서 피케팅을 하고 있는 집행부를 향해 느닷없이 “근무시간에 뭐하고 있어”, “근무시간엔 일을 해야지”라며 몇 차례 고성을 질렀다. (사진=김도연 기자)
 

첫 출근길부터 노조의 의사표현을 아이 혼내듯 윽박지른 그였지만, 1989년에는 편집권 독립을 위한 연합통신의 파업 전면에 서기도 했다. 연합뉴스지부가 지난 25일 발행한 노보에 따르면, ‘89년 투쟁’은 피켓을 들고 사내를 순례하고 차장단 동참을 촉구하는 규찰대를 조직하기도 했다. 파업 비참가 조합원 명단을 특보를 통해 공개하기도 하는 등 치열하게 진행됐다. 

노보에 따르면, 당시 사진자료 등을 보면 박노황 쟁대위원은 사내외 피케팅이나 선전전 등에 적극 참여한 것으로 보이며, 파업기간 조합에 성금을 냈다는 기록도 남아 있다. 그는 파업 이듬해 쟁의부장을 맡는다. 박 사장은 90년대 중반에도 노조 7기 집행부 운영위원으로서 제작국장 직선제 등 편집국 독립을 위한 활동에 힘을 보탰다. 

박 사장은 지난 25일 취임사를 통해 “회사의 경영권과 인사권을 심각하게 침해하고 있는 편집총국장제와 같은 불합리한 요소들은 과감히 개선할 것”이라며 편집총국장제 폐지를 시사한 바 있다. 

이보다 앞서 연합뉴스지부를 만나 “노조가 편집총국장 인사에 3분의2 이상 참여해서 절반이 안 됐다고 떨어뜨리는 임면동의제도는 인사‧경영권 침해”라고 말한 것으로 전해졌다. 2012년 103일 파업의 유발자로 꼽히고 있는 박 사장의 강경 일변도가 향후 연합뉴스 편집권에 어떤 영향을 끼칠지 구성원들은 촉각을 곤두세우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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