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신문고뉴스’의 이계덕 기자는 최근 경찰로부터 전화 한 통을 받았다. 밤11시가 넘은 시각. 자신을 종로경찰서 소속 경찰관이라 밝힌 이는 “기사를 보고 문의사항이 있어 전화하게 됐다”고 말을 꺼냈다. 

경찰이 언급한 기사는 한 인터뷰 기사였다. 지난 18일 세월호 1주기 추모 집회에서 한 남성이 태극기를 불태웠고 몇몇 언론이 이를 보도하면서 논란이 커졌다. 경찰은 ‘국기모독죄’를 이유로 수사를 진행 중이다. 이계덕 기자는 이 남성의 지인을 인터뷰한 기사를 썼고. 이에 경찰이 연락을 취한 것이다.

형법 105조 ‘국기, 국장모독죄’는 “대한민국을 모욕할 목적으로 국기 또는 국장을 손상, 제거 또는 오욕한 자는 5년 이하의 징역이나 금고, 10년 이하의 자격정지 또는 700만 원 이하의 벌금에 처한다”는 내용이다. 

경찰관은 이 기자에게 “태극기를 태운 사람에 대해 알고 싶어서” 전화했다고 밝혔다. 이 기자가 “기자에게 물어보는 것은 적절하지 않다”고 지적하자 경찰은 “수사를 하긴 해야 하는데 뭐 아는 게 있어야지. 답답해서(그랬다)”라고 답한다. (관련 기사 : <기자에게 밤중에 전화해 집회참가자 신원묻는 경찰>

   
▲ 4월 20일자 조선일보 1면
 

이런 상황에 처하면 기자는 경찰의 수사 협조에 응해야할까? 이 청년은 21일 슬로우뉴스와 인터뷰했다. 이 청년을 인터뷰한 슬로우뉴스 편집장 민노씨는 23일 미디어오늘과 통화에서 “아직 경찰로부터 연락은 못 받았다”면서 “경찰이 나한테 당연히 협조요청을 할 줄 알았다. 그래서 일부러 인터뷰이의 연락처를 받지 않고 제3자를 통해 인터뷰를 잡았다”고 말했다.

이런 사안에서 적용되는 개념이 ‘취재원비닉권’이다. 언론기관이나 언론인이 취재원에 관한 정보를 제3자에게 공개하지 않고 비밀을 지킬 권리다. 언론계에서는 언론윤리상으로 취재원비닉관을 받아들이고 있으나 한국 법에는 이에 대한 규정이 없다. 미국의 경우 36개주에 서‘방패법’(Shield Law)라 불리는 취재원보호법이 있고 프랑스도 2008년 관련법을 제정했다. 

‘민주사회를위한변호사모임’ 언론위원장을 지낸 김기중 동서양재 변호사는 이런 사안의 경우 “수사에 협조할 이유도 의무도 없다”고 말한다. 김 변호사는 “적극적으로 범인을 숨겨주거나 도피시켜주면 처벌대상이 될 수 있으나 범죄수사대상의 연락처를 안다고 해서 반드시 공개할 의무는 없다”고 밝혔다. 

법학박사인 심석태 SBS 기자 역시 “헌법21조 언론의 자유와 언론윤리 차원에서 거부하면 된다”며 “법적으로 따질 문제는 아니고 기자가 취재윤리를 고려해 판단할 문제”라고 설명했다.

심 기자는 또한 “법에 규정이 없기에 응할 의무도 없지만 거부할 권한도 없는 셈”이라고 지적했다. 그러다보니 수사기관이 수사를 위해 기자나 언론을 상대로 취재원을 밝히라고 요구하는 사례는 빈번하다. 

청와대가 ‘정윤회 문건’을 보도한 세계일보 기자 등을 명예훼손으로 고소하고, 검찰 수사가 해당 기자와 취재원 신원 파악에 맞춰진 것이 대표 사례다. 검찰은 휴대전화 통화내역과 위치추적 자료 등을 뒤졌으나 해당 기자는 취재원을 밝히지 않았다. 

   
▲ 지난해 12월 검찰이 청와대 ‘정윤회 문건’을 보도한 세계일보를 압수수색할 것으로 알려지자 서울 종로구 신문로2가 세계일보 사옥 앞에는 이를 취재하기 위한 취재진이 몰려들었다. 세계일보 사옥 정문에 진입을 차단하는 셔터가 내려져 있다. 사진=김도연 기자
 

재판으로 가면 상황은 복잡해진다. 방송사 기자 A씨는 “예전에 취재원을 밝히겠다며 검찰에서 소환장을 받은 적이 있다. 그러나 거부했다. 참고인을 강제로 수사할 수 있는 근거는 없다”며 “그랬더니 검찰이 재판에서 증인으로 신청을 했더라. 판사한테 증언을 안 하겠다고 했더니 다행히 판사가 증인 채택을 안 해서 거기서 끝났다”고 말했다.

문제는 증인 채택을 했을 경우다. 형사사건의 재판에서 비밀보장을 위해 증언을 거부할 수 있는 몇몇 직군들이 있다. 의사, 변호사, 변리사, 간호사, 그리고 피고인의 가족 등이다. 그러나 기자는 포함되지 않는다. 김기중 변호사는 “기자는 증언거부권이 인정되지 않는다. 거부할 경우 과태료를 물거나 감치에 처할 수 있다”고 설명했다.

이런 애매한 상황을 해결하고자 한국에서도 ‘취재원 보호법’이 발의됐다. 국회 교육문화체육관광위원회 소속 배재정 새정치민주연합 의원은 지난 17일 ‘취재원 보호법’을 발의했다. 수사기관이나 법원 등이 언론사에 정보를 제공한 취재원을 알아내기 위해 강압을 사용하지 못하도록 하는 법이다.

관련 기사 : <이거 누구한테 받았어? 취재원 보호 법제화한다>

그러나 설사 취재원보호법이 제정된다 해도 논란의 여지는 남아있다. 미국의 취재원보호법은 ‘국가 안보에 긴급하고 현실적인 위험’이 있다고 판단하면 예외적으로 취재원 공개를 허용하고 있다. 지난 2005년 6월 미국 중앙정보국(CIA) 비밀요원이 신분이 누설된 사건과 관련돼 취재원을 밝히지 않았다는 이유로 주디스 밀러 뉴욕타임즈 기자가 구속 수감된 사건이 있었다.

배재정 의원이 발의한 취재원보호법도 “언론보도가 3년 이상의 징역에 해당하는 범죄를 구성하는 경우” “3년 이상의 징역에 해당하는 범죄로 언론보도의 기초가 된 자료 또는 정보를 입수한 때”를 예외사항으로 두고 있다. 

경찰이나 검찰이 태극기 소각 청년에 대한 수사를 진행할 경우 그의 언론 인터뷰는 수사의 중요한 참고사항, 일종의 ‘자백’이 될 수 있다. 

태극기 소각 청년을 인터뷰한 슬로우뉴스 편집장 민노씨는 “수사에 협조하지 않는다는 이유로 기자를 처벌하기는 대단히 어려울 것이다. 그렇지만 (국기모독죄가) 형법에 존재하는 죄이고, 태극기 태운 걸 국가존립에 관한 사항으로 볼 지도 모르겠다”며 “시국이 어수선해서 심리적으로는 대단히 압박감을 느낀다. 무섭다기보다 귀찮은 것”이라고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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