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윤석열 대통령이 26일 용산 대통령실에서 14회 국무회의를 주재하고 있다. 사진=대통령실
▲윤석열 대통령이 26일 용산 대통령실에서 14회 국무회의를 주재하고 있다. 사진=대통령실

천안함 침몰 14주기를 맞아 윤석열 대통령이 아직도 우리 사회 일각에서 북한의 천안함 폭침을 부정하고 있다며 이들이 안보를 흔들지 않도록 힘을 모아야한다고 밝혔다. 국민의힘도 일부 천안함 사건 의혹제기를 했던 이들을 천안함 음모론자들로 규정하고 이들이 국회에 입성하려 한다고 비판했다.

그러나 이 사건을 12년 동안 심리해온 대법원 확정 판결(항소심 판결문)을 보면, 법원은 북한 소행이라는 것을 인정하면서도 정부가 발표한 두가지 근거에 대해 여전히 과학적으로 규명되지 않아 받아들이기 어렵다고 선을 그었다. 또한 정부 발표와 다른 침몰원인 가설을 제기하는 이들에 대해서도 “천안함 사건은 공공의 관심사”이며 “각자의 지식과 경험으로 나름의 원인을 제시할 수 있다”고 판결했다.

윤석열 대통령은 26일 국무회의 발언에서 14년 전, 북한 잠수정의 어뢰 공격으로 우리의 천안함이 폭침당했다는 점을 들어 “아직도 우리 사회 일각에서는 북한의 천안함 폭침을 부정하고 있다”며 “사실 왜곡과 허위 선동, 조작으로 국론을 분열시키면서, 나라를 지킨 영웅들과 참전 장병들, 유가족들을 모욕하는 일까지도 서슴지 않고 있다”고 비판했다. 윤 대통령은 “이는 국가안보를 무너뜨리고, 국민 안전을 위협하는 일”이라며 “강력한 안보가 뒷받침되지 않는다면, 우리의 자유, 평화, 번영은 물론, 자유민주주의와 시장경제라는 우리의 정체성도 지킬 수 없다”고 밝혔다. 윤 대통령은 “반국가세력들이 국가안보를 흔들고 국민의 안전을 위협하지 않도록, 우리 모두 힘을 모아야 하겠다”고 촉구했다.

박정하 국민의힘 중앙선대위 공보단장도 이날 오후 천안함 사건 직후부터 의혹을 제기했던 민주당의 박선원, 노종면 후보를 지목해 “북한의 천안함 폭침을 부정했던 이들이 22대 국회에 입성하려고 있다”며 “‘천안함 음모론’에 동조한 조한기 후보까지, 천안함 용사와 역사 앞에 부끄럽지 않으냐”고 반문했다.

앞서 신상철 전 천안함 민군합동조사위원이 사건 직후 정부 발표에 의혹을 제기하면서 좌초 충돌설을 주장했다가 2010년 5월 국방부장관 등으로부터 명예훼손 혐의로 고발을 당했다. 신 전 위원은 그해 8월 검찰에 기소되어 1심(2016년 1월25일)에서 징역 8월, 집행유예 2년을 선고받았으나 항소심(2020년 10월6일)에서 무죄판결로 뒤집어진 뒤 대법원에서 무죄를 확정받았다.

▲윤석열 대통령과 한동훈 국민의힘 비상대책위원장이 지난 22일 서해수호의 날 천안함 유가족 등을 위로한 뒤 경기도 평택 해군 제2함대사령부 내에 있는 천안함 함미 선체 절단면 앞에서 현장을 둘러보고 있다. 사진=대통령실
▲윤석열 대통령과 한동훈 국민의힘 비상대책위원장이 지난 22일 서해수호의 날 천안함 유가족 등을 위로한 뒤 경기도 평택 해군 제2함대사령부 내에 있는 천안함 함미 선체 절단면 앞에서 현장을 둘러보고 있다. 사진=대통령실

대법원 3부(주심 대법관 노정희)는 지난 2022년 6월9일 원심(항소심) 판결을 두고 “논리와 경험의 법칙을 위반하여 자유심증주의의 한계를 벗어나거나, 비방할 목적, 거짓 또는 허위의 사실 및 피해자 특정 등에 관한 법리를 오해한 잘못이 없다”며 검찰의 상고를 기각해 판결이 확정됐다. 이에 서울고법 형사5부(재판장 윤강열 부장판사)의 판결문이 최종 확정 판결문이 됐다.

판결문의 기초사실을 보면, 천안함은 2010년 3월26일 21시22분경 백령도 서남방에서 북서 방향으로 6.7노트의 속도로 기동하면서 통상적인 경계임무를 수행하다가 백령도 서남방 2.5km 해상에서 강력한 폭발음과 함께 함체는 두동강으로 절단되어 함수는 정전과 동시에 함체 일부 격실에 기름과 해수가 유입되면서 우현으로 90도 기울어지기 시작했다.

이후 정부 합동조사단은 조사보고서에서 “천안함은 어뢰에 의한 수중폭발로 발생한 충격파와 버블효과에 의해 절단되어 침몰되었다. 폭발위치는 가스터빈실 중앙으로부터 좌현 3m, 수심 6~9m 정도이고, 무기체계는 북한에서 제조, 사용 중인 고성능 폭약 250kg 규모의 CHT-02D 어뢰로 확인되었다”고 밝혔다. 1심 재판부는 정부 합동조사단의 보고서상 침몰원인 판단을 100% 수용했다. 그러나 항소심 재판부 판단은 다소 달랐다.

항소심 재판부는 판결문에서 “원심의 판단 중 ‘흡착물질’과 ‘스크루 휨 현상’에 관한 부분은 과학적 규명이 여전히 필요한 영역이라고 판단되므로 그대로 받아들이기 어렵다”고 판단했다. 재판부는 그러나 “이 논거를 제외한다고 해도 천안함이 북한의 어뢰 공격으로 인한 수중 비접촉폭발로 발생한 충격파와 버블효과에 의해 절단돼 침몰했다는 사실은 충분히 증명되었다고 봄이 타당하다”고 밝혔다.

▲신상철 전 천안함 합동조사위원의 항소심 판결문. 일부 강조표시. 사진=법원 판결문
▲신상철 전 천안함 합동조사위원의 항소심 판결문. 일부 강조표시. 사진=법원 판결문

재판부가 인정한 의혹 가운데 첫 번째는 흡착물질 분석결과다. 재판부는 “합조단의 흡착물질에 관한 조사결과를 그 자체로 과학적 사실로 받아들이기는 어렵다”며 “이를 지적하는 피고인과 변호인의 주장은 이유 있다”고 밝혔다.

재판부는 첫째 “폭발시 급속한 용융 냉각을 거쳐 생성된 비결정질 알루미늄 산화물이라는 합조단 주장에 반론을 제기한 학자들이 ‘정량분석을 통해 흡착물질이 비결정질 수산화알루미늄 계열’이라고 분석하고 생성 기원에 대해서는 ‘천안함 선체의 알루미늄 부식 또는 해저 부유성 점토광물이거나 기원을 알 수 없다’고 보고 있다”고 제시했다. 둘째 “알루미늄을 포함한 폭약이 수중에서 폭발한 경우 어떤 물질이 생성되는지에 관한 기존의 연구가 없고, 어뢰추진체 등에서 발견된 흡착물질이 기존 특정 물질이라고 확인된 바 없어 과학계에서는 여전히 흡착물질 조성에 관한 논쟁이 진행되고 있다”고 설명했다. 셋째 “흡착물질의 조성과 관련해 과학적 사실의 진위가 어느 쪽으로든 판명되지 않은 상태에 있다”며 “이런 경우 법원에서 흡착물질의 조성이 어떠한지 과학적으로 규명하는 것은 한계가 있을 수밖에 없고 일방의 주장을 과학적 사실로서 단정하는 것도 바람직하다고 볼 수 없다”고 했다.

재판부는 “천안함 우현 스크루가 현재와 같은 형태로 변형된 원인이 과학적으로 규명됐다고 보기는 부족하다”고도 판단했다. 재판부는 “천안함 우현의 스크루 변형 형상은 현재까지 학계에 보고된 바 없는 손상 형태”라며 “노인식 충남대 교수의 1차 시뮬레이션은 스크루가 회전 중 급정지하면 관성력에 의하여 변형될 수 있다는 스웨덴 조사단의 가설에 기초한 것이나, 1차 시뮬레이션 결과는 스크루의 실제 변형 형상과는 반대 방향으로 휘어진 것으로 나타났다”고 지적했다. 재판부는 노 교수가 법정에서 진술한 내용을 비춰볼 때 노 교수의 시뮬레이션 결과들로는 천안함 우현 스크루의 ‘S자’ 휨 현상에 대한 설명이 이뤄지지 않았다고 봄이 타당하다”고 밝혔다.

▲천안함 함미 우현의 스크루(프로펠러)가 앞쪽 방향으로 휘어져 있다. 2015년 3월 촬영. 사진=조현호 기자
▲천안함 함미 우현의 스크루(프로펠러)가 앞쪽 방향으로 휘어져 있다. 2015년 3월 촬영. 사진=조현호 기자

다만 재판부는 이 두가지를 제외하고 신상철 전 의원이 제기한 다른 많은 의혹에 대해서는 인정하지 않았다. 재판부는 △물기둥이 없었다(의문이 생기지만 견시병이 못 볼 수 있고, 백령도 초병의 섬광 목격 진술을 종합할 때 물기둥 없다는 주장 받아들일 수 없다) △화약냄새 등 다른 폭발현상이 없었다(냄새를 맡지 못할 가능성도 있다) △죽은 물고기떼(강한 조류와 시계의 제한) △시신과 부상자 상태(절단면 부근 생존자 큰 상해 입어) △멀쩡한 형광등(구조 설계로 충격 덜 미쳤을 가능성) 등 주요 의혹을 받아들이지 않았다.

또한 생존자 58인의 최초 진술서 원본 기재 내용상 폭발보다 충격이라는 진술이 많다는 의혹을 두고도 재판부는 “잘 모르겠다는 진술도 20명에 달하고, 희생자들이 침몰원인에 대해 상이하게 판단하고 있다는 점은 각자의 지식이나 경험의 영향에 따른 것”이라고 판단했다. 어뢰 추진체가 침몰사건과 무관할 것이라는 의혹도 받아들이지 않았다.

하지만 재판부는 정부 발표(북한 어뢰 공격)와 다른 침몰 원인을 주장하는 것이 명예훼손죄에 해당하는지를 설명하면서 이 같은 의견제시가 공적 관심사에 해당한다고 밝혔다. 재판부는 “천안함 침몰 사고는 대한민국 해군 초계함이 북방한계선 인근에서 경계근무 중 갑자기 침몰하여 승조원 중 46명이 사망 실종된 초유의 사건으로서 국민적 관심이 집중될 수밖에 없는 사건”이라며 “사고 원인과 그 조사과정, 군과 정부의 대응이 적절했는지 여부는 당연히 국민의 감시와 비판의 대상이 되는 공적인 영역이 될 수밖에 없다”고 판단했다.

▲서울고법 형사5부가 지난 2022년 10월6일 명예훼손으로 기소된 신상철 전 천안함 합동조사위원의 항소심 판결문 가운데 77쪽. 일부 강조표시. 사진=법원 판결문
▲서울고법 형사5부가 지난 2022년 10월6일 명예훼손으로 기소된 신상철 전 천안함 합동조사위원의 항소심 판결문 가운데 77쪽. 일부 강조표시. 사진=법원 판결문

재판부는 “이러한 공적 관심 사안은 나라의 주인인 국민의 감시와 비판의 대상이 되므로, 국민은 자신의 지식과 경험을 바탕으로 다양한 정보를 취사선택하고 이를 분석하여 자신의 의견을 제시할 수 있고, 이 의견들이 공론의 장에서 상호 검증을 거침으로써 이를 통해 자연스럽게 자정작용이 이루어질 수 있도록 보장되어야 한다”고 강조했다.

재판부는 “천안함 사건과 같은 경우 일반 국민은 정부와 군, 언론에서 제공하는 정보를 기초로 하여 정부와 군의 활동을 비판하고 감시할 수밖에 없다”며 “신 전 위원이 공적 관심사안인 천안함의 침몰원인과 관련하여 나름 자신의 의견을 제시한 것은 그 진실을 밝힌다는 공공의 이익을 목적으로 하는 것으로서 비방의 목적이 부인된다”고 밝혔다.

▲지난 2015년 12월 국방부 조사본부에 전시됐던 어뢰추진체 프로펠러. 이른바 흡착물질로 불리는 백색분말이 붙어 있다. ⓒ연합뉴스
▲지난 2015년 12월 국방부 조사본부에 전시됐던 어뢰추진체 프로펠러. 이른바 흡착물질로 불리는 백색분말이 붙어 있다. ⓒ연합뉴스

신상철 전 위원의 항소심과 대법원 재판 변호를 맡았던 김종귀 변호사는 26일 미디어오늘에 “합조단 조사 결과에 의문이 많았고 여론조사에서도 조사 결과를 신뢰하지 않는다는 여론이 높았던 사건”이라며 “재조사 의견도 많았는데 석연찮은 조사 결과를 무기로 과학적 의문들까지 싸잡아 음모론으로 치부하고 있는 것은 비정상”이라고 지적했다. 김 변호사는 천안함 침몰을 대하는 현 정부여당의 모습을 두고서도 “과학적 규명이 필요함에도 이념적 무기로 악용하는 비과학적 행태”라고 덧붙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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