얼마 전 ‘언론 보도기준을 바꾸자 베르테르 효과가 크게 감소했다’는 내용의 기사를 접했다. 유명인의 자살이 일반인들에게 영향을 크게 미칠 수 있다는, 이른바 ‘베르테르 효과’는 너무나 잘 알려진 이론이다. 반면 최근 우리나라 연구팀이 밝힌 바와 같이 미디어는 자살률을 낮추는 데도 기여 할 수 있다. 이를 ‘파파게노 효과’라 한다. 파파게노 효과의 대표적인 사례로 오스트리아 비엔나 지하철에서의 자살률 감소를 들 수 있다. 

1978년 비엔나에서 지하철이 개통되었을 때 그곳에서 자살하는 사람들이 빈번히 발생했다. 당시 언론은 이러한 죽음을 종종 선정적인 방식으로 보도하곤 했는데, 이는 심각한 사회문제를 야기했다. 1980년대 지하철에서 자살 시도를 한 사람들의 수가 급증한 것이다. 그러자 오스트리아 자살 예방 협회는 ‘베르테르 효과’와 자살 보도가 모방 자살로 이어질 가능성을 인식시키기 위해 언론사들을 찾아가 캠페인을 벌였다. 

이후 비엔나 언론은 관련 사건에 대한 언론 보도를 자제하고, 기사에서 덜 감정적인 어조를 채택하는 등 사람들이 이러한 선택에 이르지 않도록 접근 방식을 변경했다. 그 결과, 바로 이듬해 자살률이 급격히 감소했다. 

그러나 이제는 언론뿐 아니라 소셜미디어에서도 자살 관련 정보를 접할 수 있게 되면서 언론이 자살 보도 준칙을 지키는 것만으로는 베르테르 효과를 막을 수 없게 됐다. 2014년 배우 로빈 윌리엄스의 자살이 그런 사례다. 그의 사망 이후, 평소보다 자살률이 10%가량 증가했는데, 미국자살예방재단(AFSP)는 그 원인으로 언론 보도와 함께 SNS에서 펼쳐진 애도의 물결을 꼽았다.

자살 보도 준칙은 자살 방법에 대한 명시적인 설명, 특히 헤드라인에서 자살의 원인이나 세부 사항에 대한 추측을 피하도록 제안하고 있다. 그러나 당시 이 사건을 보도하면서 워싱턴포스트는 “로빈 윌리엄스의 죽음은 우울증의 힘과 자살의 충동성을 보여준다”는 제목을 달았고, 뉴욕타임스는 “로빈 윌리엄스가 스스로 목을 졸라 사망했다”는 제목으로 보도했다. 저널리즘의 모범사례로 알려진 미국의 주요 언론사들마저 자살 보도 준칙을 따르지 않은 것이다.
 

▲게티이미지.
▲게티이미지.

언론보다 소셜미디어의 위력은 더 막강했다. 미국 아카데미협회는 로빈 윌리엄스의 죽음을 애도하기 위해 공식 트위터 계정에 “지니, 넌 이제 자유야”라는 문구를 올렸는데, 소셜웹 분석업체인 Topsy에 따르면 이 트윗글은 30만 번 이상 리트윗되어 약 6900만 명에게 도달되었다. AFSP는 이 간단한 문구가 죽음을 낭만화함으로써 모방자살을 확산했을 가능성이 있다고 간주했다.

이처럼 로빈 윌리엄스의 자살로 베르테르 효과가 확인되자 유럽의 언론과 자살예방 관련 단체들은 이러한 현상 재발을 막기 위해 토론회를 마련하거나 소셜미디어 이용자들을 대상으로 캠페인에 나서기도 했다. 예컨대 스위스 저널리즘 아카데미는 자살예방단체 및 정부 관계자, 언론인들을 함께 초대해 자살 보도 워크숍을 개최했다. ‘Stop Suicide’라는 스위스의 청소년 자살예방 단체는 소셜미디어 사용자들을 위한 교육 도구를 선보였는데 주로 소셜미디어에서 관련 주제의 게시글을 작성하거나 공유할 때 어떤 점을 주의해야 하는지, 자살을 어떤 관점으로 바라봐야 할 것인지, 자신이나 주변 사람이 그런 고민에 빠져있을 때 어떻게 대처해야 할 것인지 등을 담았다.

아쉽게도 오래전부터 OECD 국가 중 압도적 수치로 자살률 1위를 기록하고, 다른 사회보다 소셜미디어 이용률도 높은 우리 사회에서는 이런 시도를 찾기 힘들다. 언론 보도가 베르테르 효과를 감소시켰다는 것에 만족할 게 아니라 여전히 민감한 주제로 남아있는 자살에 대한 대중의 인식을 제고하기 위해 어떻게 해야 하는지, 우리사회도 이제 그런 고민을 시작하면 어떨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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