수사기관 등이 개인의 통신자료조회 시 신속한 수사를 해치지 않으면서 오남용을 피할 수 있도록 사전 통제 수단을 고민하고, 통신자료 취득에 대한 사후 통지 규정을 마련해야 한다는 주장이 나왔다.

18일 국회입법조사처는 ‘통신자료 제공에 대한 헌법불합치 결정과 입법과제’ 제목의 보고서에서 △통신자료조회 시 구체적인 사후 통지로 실효성 확보 △보관 기간 등 사후관리 규정 마련 △통신자료조회 시 사전 통제 강화 △전기통신사업자의 재량에 대한 검토 등을 주장했다. 해당 보고서는 김나정 국회입법조사처 입법조사관보와 박소영 입법조사관(변호사)이 작성했다.

앞서 지난 7월21일 헌법재판소는 전기통신사업법에 따라 수사기관 등이 영장 없이 통신자료를 수집하는 행위가 △영장주의 △명확성 원칙 △과잉금지원칙 및 적법절차 원칙 등에 위배돼 이용자들의 개인정보자기결정권을 침해하는지 살폈다. 그 결과 헌법재판소는 적법절차 원칙에만 헌법불합치 결정을 내렸다.

▲유남석 헌법재판소장 등 재판관들이 지난 7월14일 오후 서울 종로구 헌법재판소 대심판정에서 열린 공개변론에 자리하고 있다.사진=민중의소리.
▲유남석 헌법재판소장 등 재판관들이 지난 7월14일 오후 서울 종로구 헌법재판소 대심판정에서 열린 공개변론에 자리하고 있다.사진=민중의소리.

전기통신사업법 83조인 ‘통신비밀의 보호’ 조항을 보면 전기통신업무(SKT, KT, LG 등)에 종사하는 사람들은 수사기관이 이용자의 성명, 주민등록번호, 주소, 전화번호, 아이디, 가입일 또는 해지일 등의 정보(통신자료)를 요청하면 그 요청에 따를 수 있다. 수사기관이 통신자료 조회를 하는 것 자체는 문제 되지 않는다.

시민들 역시 누구나 통신사를 상대로 ‘통신자료 제공 사실 확인서’를 요청할 수 있다. 그러나 통신자료조회를 당한 이용자에게 이를 먼저 알리진 않는다. 해당 법 조항은 2023년 12월31일까지 개정되지 않으면 효력을 잃게 된다.

보고서는 “헌법재판소가 유일하게 헌법에 합치되지 않는다고 본 부분은 사후 통지절차 미비로 인한 적법절차원칙 위배”라며 “정보 주체에 대한 통지는 당사자가 자신의 정보가 제공된 사실을 확인하고 그 정당성 여부를 다툴 수 있는 전제조건이 된다. 따라서 통신자료 취득에 대한 사후 통지절차를 마련하지 않은 것에 대한 입법적 조치가 필요하다고 봤다”고 설명했다.

보고서는 “기본적인 인적사항에 불과한 단편적 정보라 하더라도 다른 정보와 결합되면 민감정보가 될 수 있고, 특히 주민등록번호가 모든 행정 체계의 기본이 되는 것을 감안할 때, 통신자료가 통신사실확인 자료보다 가벼운 정보로 여겨져야 하는지 생각해 보아야 한다”며 “통신자료 제공 제도의 감독을 강화하는 방안을 모색할 필요가 있다”고 조언했다.

▲ 지난해 TV조선 보도 갈무리. 수사기관의 무분별한 통신자료 조회는 박근혜 정부 때부터 지속적으로 논란이 됐다.
▲ 지난해 TV조선 보도 갈무리. 수사기관의 무분별한 통신자료 조회는 박근혜 정부 때부터 지속적으로 논란이 됐다.

우선 법률에 통신자료 취득에 대한 사후 통지 규정을 마련해야 한다. 보고서에 따르면 사후 통지제도의 실효성을 확보하기 위해서는 취득 사유·취득 시점 등을 구체적으로 밝히고 적절한 시기에 지체없이 통지하도록 규정할 필요가 있다. 보고서는 “적절한 시기에 대해서는 수사의 밀행성 등을 고려해 원칙적인 기한을 정하되 이를 유예할 수 있는 사유와 기간을 구체적으로 명시하는 방안을 고려할 수 있다”고 했다.

또 수사기관이 얻은 이용자들의 통신자료조회 정보를 보관하는 기간, 폐기절차 등을 규정해야 한다. 보고서는 수집한 통신자료를 재사용하지 않도록 최소한의 기간만 보관하고 이후 폐기하도록 명시해야 한다고 지적했다. 폐기 전이라도 취득한 통신자료를 그 취득의 목적이 된 범죄와 관련된 범죄 수사 등 일정한 목적 외에 사용하는 것을 금지하는 규정을 검토할 필요가 있다고 했다.

또한 보고서는 수사기관의 통신자료조회 시 ‘사전 통제’를 강화해야 한다고도 주장했다. 보고서는 “이번 결정에서 통신자료제공 제도에 대한 영장주의 적용의 필요성을 인정하지 않았다. 하지만 통신자료 역시 통신사실확인자료와 마찬가지로 개인의 식별성 및 정보 간 결합 등을 통해 오·남용될 수 있는 위험이 있다”며 “적절성 심사, 내부 통제 강화 등 신속한 수사를 해치지 않으면서 오·남용을 피할 수 있도록 하는 사전 통제 수단을 고민할 필요가 있다”고 당부했다.

수사기관 등에 이용자들의 통신자료를 제출하는 전기통신사업자의 재량에 대한 검토도 필요하다. 보고서는 “현행법은 전기통신사업자가 수사기관 등의 통신 자료제공 요청에 ‘따를 수 있다’고 규정하고 있다”면서 “하지만 전기통신사업자의 입장에서는 요청 서면만으로 수사기관 등의 요청 사유가 적절한지 판단하기 어렵고, 전기통신사업자에게 실질적인 심사를 요구하는 것은 국가나 수사기관이 부담해야 할 책임을 사인에게 전가시키는 것이 된다”고 했다.

사업자 입장에선 수사기관의 요청에 따를 수 있다는 내용의 조항을 강제적인 조치로 여길 수 있기에 논의가 필요하다는 지적이다.

보고서는 “대법원도 전기통신사업자의 실질적 심사의무를 인정하지 않은 바 있다”며  “사업자가 아닌 수사기관 등이 통신자료 요청에 대한 책임을 지는 방향으로 개정함으로써 통신자료제공이 과도하게 이뤄진 경우 국민이 그 공권력의 행사에 대해 직접 다툴 수 있게 하는 방안을 검토할 필요가 있다”고 조언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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