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그래픽=안혜나 기자
▲ 그래픽=안혜나 기자

시사·보도 프로그램에서 ‘패널’은 만물상과 같은 역할을 한다. 교수·변호사·평론가 등 이름표를 달고 모든 사건·사고에 대한 논평과 해설을 한다. 대담 분야는 무궁무진하다. 변호사들은 법적 조언뿐 아니라 일반 사건·사고에 대한 해설을 내놓고, 신문방송학과 교수가 층간소음·임산부 배려석 관련 사건에 대해 논평하기도 한다. 여러 방송사 프로그램에 출연하는 패널도 있다.

이는 종합편성채널 출범의 영향이 크다. 종편 출범 이후 데일리 시사 프로그램이 늘어나면서 패널 출연도 덩달아 증가하게 된 것이다. 이와 관련해 한국언론진흥재단은 시사·보도 프로그램 패널들의 영향력과 문제점을 진단한 연구보고서 ‘방송 시사·보도 프로그램의 다양성 연구’를 지난 10월31일 발간했다. 연구진은 지상파·종편·보도전문채널 시사·보도 프로그램에 출연한 패널 1229명을 전수조사했다.

영향력 1위는 박지훈 변호사…패널 다수는 남성·50대

▲시사·보도 패널 영향력 상위 10인. 사진=방송 시사·보도 프로그램의 다양성 연구보고서.
▲시사·보도 패널 영향력 상위 10인. 사진=방송 시사·보도 프로그램의 다양성 연구보고서.

조사 핵심은 방송에 출연하는 패널들의 영향력 측정이다. ‘영향력’은 패널이 방송에 얼마나 자주 출연했는지를 뜻한다. 연구진은 패널 구성과 출연 횟수를 기준으로 영향력을 측정했다. 조사 기간은 2012년 12월1일부터 2022년 5월9일까지로 박근혜 정부와 문재인 정부 시기를 포함한다. 조사 대상은 종편 4사와 지상파 3사, KBS·MBC·SBS·TBS·YTN·CBS 라디오 채널, YTN·연합뉴스TV 등이다.

전체 패널 중 영향력이 가장 큰 패널은 박지훈 변호사다. 이어 홍인표 전 경향신문 논설위원·이종훈 정치평론가·이인철 변호사·양지열 변호사·김동환 대안금융경제연구소 소장·박용진 의원·차재원 부산가톨릭대 특임교수·김태현 변호사·김재원 전 의원 순이다. 박근혜·문재인 정부에서 영향력이 컸던 패널 각각 49명·46명을 선택해 성별·연령·직업을 분석한 결과 남성이 93.7%였으며 50대가 46.3%에 달했다. 직업은 국회의원이 30.5%로 가장 많았고, 변호사가 20%로 뒤를 이었다.

패널 영향력은 정권에 따라 큰 차이를 보였다. 박근혜 정부 시기 영향력 상위 10인은 홍인표·김동환·갈상돈 변호사·이종훈·황장수 미래경영연구소장·김헌식 문화평론가·민영삼 사회통합전략연구원장·김재원·황태순 정치평론가·박상병 정치평론가 등이다. 문재인 정부 시기 영향력 상위 10인은 박지훈·이종훈·이인철·양지열 변호사·곽우신 오마이뉴스 기자·최진봉 성공회대 교수·차재원·김형주 전 민주당 의원·김태현·이준석 전 국민의힘 대표 등이다. 이종훈 평론가를 제외하곤 상위 10인의 면면이 모두 바뀌었다. 박근혜 정부 시기에는 시사평론가가, 문재인 정부 시기에는 변호사와 교수가 자주 등장한 것으로 나타났다.

박근혜 정부 높은 영향력을 기록한 일부 시사평론가들은 정권이 바뀐 후 방송에 출연하지 않고 유튜브로 진출했다. 황태순·황장수·민영삼 등으로 이들은 주로 문재인 정부에 대한 비판적 콘텐츠를 만들고 있었다. 연구진은 “충성도 높은 보수 성향의 구독자를 확보하면서 굳이 방송 프로그램에 패널로 출연할 필요성을 느끼지 못하게 된 것으로 보인다”고 분석했다.

종편 패널, 여러 방송사 프로그램 중복 출연

▲10년간 종편 패널 네트워크 분석 결과. 사진=방송 시사·보도 프로그램의 다양성 연구보고서.
▲10년간 종편 패널 네트워크 분석 결과. 사진=방송 시사·보도 프로그램의 다양성 연구보고서.

종편의 경우 남성 패널이 압도적으로 많았으며 2명 중 1명은 50대였다. 직업은 국회의원이 29.3%로 가장 많았다. 이어 시사평론가 15.9%, 변호사 12.2% 순이다. 여성의 경우 40대 이하 젊은 층을 선호했으며 변호사 직군이 많았다. 연구진은 “전문성을 우선 고려해서 채널을 선택한다면 성비를 인위적으로 맞출 필요는 없다”면서도 “그럼에도 불구하고 남성 편중 현상은 매우 심각하다”고 했다.

채널별 영향력 상위 5위 패널은 TV조선 최병묵 전 월간조선 편집장·이현종 문화일보 논설위원·송국건 영남일보 서울본부장·여상원 변호사·김경진 전 의원, MBN 차재원·서정욱 변호사·김복준 한국범죄학연구소 연구위원·양문석 민주당 지역위원장·최명기 전문의, 채널A 이현종·김태현·장예찬 청년재단 이사장·최진봉·김정봉 전 NSC 정보관리실장, JTBC 이철희 전 의원·박용진·신범철 국방부 차관·김종배 시사평론가·김경협 의원 등이다.

JTBC에서 국회의원이 가장 많이 출연했다. 연구진은 “밤샘 토론이나 썰전 같은 시사 프로그램의 패널로 자주 등장했기 때문”이라고 했다. 시사평론가는 TV조선과 MBN에서 많이 출연했다. 채널A는 동아일보 기자를 많이 출연시켰다.

▲두 개 이상 채널에서 영향력 30인에 포함된 패널. 사진=방송 시사·보도 프로그램의 다양성 연구보고서.
▲두 개 이상 채널에서 영향력 30인에 포함된 패널. 사진=방송 시사·보도 프로그램의 다양성 연구보고서.

종편에선 특정 패널이 여러 방송사 프로그램을 중복 출연하는 경우가 자주 발견됐다. 종편 영향력 상위 20위 안에 든 패널 중 여러 채널에 중복출연한 패널은 31명이다. 송국건·고영신 한양대 특임교수·김형주·차재원·민영삼·황장수 등은 TV조선과 MBN 두 채널에서 영향력 있는 패널이었다. 최진봉은 MBN과 채널A에서 영향력이 컸다. 세 개 이상의 채널에서 영향력이 있는 패널은 정혁진 변호사와 김형주다.

연구진은 “패널은 복잡한 현안을 쉽고 친절하게 풀어주고 다양한 관점에서 해법을 제시해주는 중요한 사회적 기능을 하고 있다”며 “그러나 소수 패널의 중복 출연은 방송의 질적 저하를 초래한다는 점에서 방송의 품질과 신뢰를 떨어뜨리는 요인이다. 이들의 논평은 정파성도, 전문성도 아닌 그저 ‘질 낮은 방송’이라는 비판에 직면할 것”이라고 비판했다.

지상파 패널도 남성·50대 편중…국회의원이 32.5%

지상파의 경우 국회의원이 32.5%로 가장 많았다. 종편과 마찬가지로 남성 출연자가 86.1%로 다수를 차지했으며 50대는 49.7%에 달했다. 채널별 패널 직업 차이가 발견됐는데, MBC는 변호사와 교수를 상대적으로 많이 출연시켰다. KBS는 언론인과 국회의원, SBS는 시사평론가를 많이 출연시켰다. 지상파 패널 영향력 상위 10인은 김성완 시사평론가·최영일 시사평론가·김재원·양지열·김형준 명지대 교수·박시영 윈지코리아 대표·홍성걸 국민대 교수·박상헌 박사·박용진 의원·유시민 전 의원 등이다.

▲지상파 채널 패널 전체 네트워크 분석 결과. 사진=방송 시사·보도 프로그램의 다양성 연구보고서.
▲지상파 채널 패널 전체 네트워크 분석 결과. 사진=방송 시사·보도 프로그램의 다양성 연구보고서.

YTN·연합뉴스TV 등 보도전문채널 영향력 상위 10인 패널은 최창렬 용인대 특임교수·김성완·최영일·양지열·차재원·황장수·정태근 전 의원·장성호 건국대 교수·백성문 변호사·고영신 등이다. 보도전문채널 패널 직업은 교수 30.2%, 국회의원·시사평론가 각각 15.9%, 변호사 14.3%, 정치인 11.1% 순이다.

라디오에선 국회의원 패널이 42.7%에 달했다. 라디오는 전화로도 출연할 수 있기 때문에 일정상 부담이 많은 국회의원들이 자주 출연하는 것으로 보인다. 출연 국회의원 10명 중 6명은 진보정당 소속이었다. 연구진은 “시사 이슈를 다루는 라디오에서 현안 관련 정책입안자인 국회의원의 의견을 듣고 싶어 하는 것으로 여겨진다”며 “진보정당 의견에 더 귀를 기울였다고 볼 수 있다”고 했다. 연구진은 지상파의 경우 국회의원 정치적 성향이 한쪽으로 기울지 않았다면서 “라디오는 모든 청취자를 소구해야 하는 강박에서 벗어날 수 있어서 이념적 편향성이 나타난 것으로 보인다”고 했다.

또한 라디오는 종편(0.5%)·지상파(2.6%)보다 일반 시민을 패널로 섭외하는 경우(4.1%)가 많았다. 연구진은 “소상공인, 자영업자, 학부모 등 다양한 단체 종사자들이 출연해 현안과 관련해 목소리를 전달했다”며 “라디오는 TV 방송보다 다양한 사회구성원 입장과 관점을 담아내고 있다. 국회의원부터 각 분야의 전문가, 일반 시민에 이르기까지 복잡한 현안에 대한 다양한 목소리를 접할 수 있는 거의 유일한 공적 매체”라고 밝혔다.

▲라디오 패널 영향력 상위 10인. 사진=방송 시사·보도 프로그램의 다양성 연구보고서.
▲라디오 패널 영향력 상위 10인. 사진=방송 시사·보도 프로그램의 다양성 연구보고서.

라디오 채널별 영향력 상위 5인 패널은 KBS 임상훈 인문결연구소장·홍익표 의원·김기식 더미래연구소장·김민하 평론가·박용진, MBC 홍인표·이종훈·박지훈·김동환·이인철, SBS 이종근 평론가·김태현·양문석·윤희웅 오피니언라이브 센터장·김광진 전 의원, CBS 김수민 평론가·김민하·민동기 기자·박수현 전 국민소통수석·김완 한겨레 기자, TBS 양지열·하태경 의원·정세현 전 장관·박시영·최배근 건국대 교수, YTN 박지훈·이준석·장용진 아주경제 사회부장·윤희웅·박주민 의원 등이다.

▲종편4사 시사대담 프로그램 진행자. 기사 본문과는 상관 없습니다. (시계방향으로 JTBC‧TV조선‧채널A‧MBN순)
▲종편4사 시사대담 프로그램 진행자. 기사 본문과는 상관 없습니다. (시계방향으로 JTBC‧TV조선‧채널A‧MBN순)

정치권 가는 패널…“공정하고 객관적으로 바라볼 수 없는 이유”

연구진은 교수·변호사·평론가 등 영향력이 크고 여러 방송에 중복 출연하는 패널들이 선거 국면에서 공천에 도전하는 경우가 있다면서 “일부는 당의 공천을 받아 정계 진출에 성공하지만 본선 경쟁에 들지 못하고 탈락하는 이들은 다시 기자, 변호사, 교수 등의 직함을 달고 방송사의 패널로 출연해 현안을 논평한다. 그래서 이들이 폴리널리스트라는 비판을 받는 것이고, 이들의 발언을 공정하고 객관적으로 바라볼 수 없는 이유”라고 했다. 실제 종편 패널로 활발한 활동을 이어가던 양문석 위원장은 21대 총선, 8회 지방선거에 출마해 낙선한 후 다시 패널로 활동 중이다.

연구진은 패널이 방송을 통해 ‘공신력’을 얻고 있다고 설명했다. 연구진은 “패널이 정치 분야에서 활동할 생각이 있다면, 방송에서 얻은 인지도와 신뢰도가 정치 영역에서 본인의 입자를 강화하는 데 긍정적인 영향을 끼친 것으로 보인다”며 “방송의 시사·보도 프로그램에 자주 출연하면서 시청자들에게 중요한 인물이라는 인식을 심어주고, 방송 출연을 통해 공신력을 얻으면서 이들은 향후 자신의 정치적 입지를 확고히 했을 뿐 아니라 정치인으로 활동하지 않더라도 정치·시사 분야에서 영향력을 행사하는 데 어느 정도 영향을 미친 것은 부인할 수 없다”고 밝혔다.

연구진은 방송사가 특정 패널을 중복 출연시키는 건 제고할 필요가 있다고 제언했다. 연구진은 “방송에 출연하는 패널이 본인 전문성에 부합하지 않은 이슈에 대한 의견을 개진하는 경우가 많다”며 “전문성이 담보되는지 확신할 수 없다. 여러 매체와 채널에 중복출연하는 패널 중에서는 본인의 전공 분야와 무관한 다양한 이슈에 대해 의견을 개진하는 사례를 적지 않게 볼 수 있다”고 했다.

이번 보고서는 홍주현 국민대 미디어광고학부 부교수가 책임연구를 맡았다. 공동연구자는 조인숙 국민대 미디어광고학부 겸임교수·이종임 서울과학기술대 IT정책전문대학원 강사, 보조연구자는 이승리 중앙대 미디어커뮤니케이션학과 석사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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