근로기준법 개정안, 법인세법 개정안, 노동관계조정법 개정안, 노동인권교육 활성화법, 유해화학물질관리법 개정안, 저소득층 취업지원법, 산업재해보상보험법 개정안…. 은수미 더불어민주당 의원(52)이 19대 국회에서 대표 발의했던 법안의 일부다. 은 의원은 남양유업 갑질 논란 이후 을지로위원회(을을 지키는 길 위원회)를 주도했으며, 삼성전자·현대차·쌍용차 등 노동자들의 투쟁현장에 늘 함께했다. 그녀는 ‘비정규직 수호천사’로 불렸다.

4.13총선을 앞둔 은 의원은 지금 30년 된 2층짜리 황색 빌라와 좁은 비탈길로 가득한 성남시 중원구를 누비고 있다. 중원구 상대원1동 주민이 된지는 어느덧 14개월째다. 성남은 1970년대 가난한 민중들이 강제이주로 만든 도시다. 1990년대 좌파운동권의 상징에서 2000년대 노동전문가, 2010년대 국회의원으로 활약한 은수미 의원이 성남으로 간 까닭은 무엇일까. 18일 오후 성남시 중원구 선거사무소에서 은수미 의원을 만났다.

▲ 20대 총선거에서 성남시 중원구에 출마한 은수미 국회의원. ⓒ은수미 의원실
“강제이주로 탄생한 민중의 도시 성남, 은수미 정치의 출발”

은 의원은 “성남이 은수미 정치의 출발점이 될 것”이라며 자신감을 보이고 있었다. 요즘은 사람들과 악수할 때마다 기를 받는다고 했다. 비례대표 초선 의원인 그녀는 성남에서 재선을 노리고 있다. 그는 헌법재판소의 ‘통합진보당 해산’ 판결 이전부터 성남 중원구를 지역구로 낙점했다. 지난해 성남시 중원구 재보궐 선거에 출마했으나 당내 경선에서 탈락했다. 14개월 전 가장 자주 들었던 말은 “왜 왔냐”는 질문이었다.

“제가 겪은 많은 도시는 몇 평, 몇 호 같은 숫자로 기억되지만 중원에는 옛날 골목이 있고, 사람들의 이야기가 살아있다. 성남 주민들은 자신들의 주거지를 놔두고 성남으로 왔고, 서울의 개발붐에 기여했다. 국가를 위해 기여한 숨은 공로자들이 아무런 대가를 받지 못했다. 이들이 당당한 시민으로 살아가는 것이 대한민국의 미래를 결정한다. 중원은 내 정책과 꿈과 맞닿는 도시다. 중원 시민들을 대한민국의 표준 시민으로 만들고 싶다.”

그녀는 요즘 고민은 “사람의 이야기가 살아있는 골목을 어떻게 인간적인 방식으로 바꿔낼까”다. 현대 중원구 상대원2동과 금광동1지구는 재개발이 결정됐다. 은 의원은 “불가피한 경우는 재개발해야하지만, 재개발을 원하지 않는 주민들이 많다. 재정착률이 10%밖에 안 된다”고 말했다. 그녀는 “개발이익을 얻을 수 없고, 개발이익을 얻어 본 적 없는 사람들이 만든 도시는 어떻게 발전해야하는가, 진지한 고민을 하게 된다”며 도시재생을 언급했다.

“성남의 복지시설은 상당히 확충됐고 중원구를 비롯한 본시가지에 대한 지원도 이뤄지고 있다. 4만 명의 노동자가 일하고 있는 성남 하이테크벨리에선 이제 재생사업을 시작한다. 전통시장 재생, 골목 재생, 산업단지 재생이 이뤄져야 할 시점이다. 도시를 바꾸는 건 오랜 시간이 걸리는 문제다. 강남이나 분당처럼 부수고 올려 세울 수 있는 문제가 아니다. 이곳은 강남처럼 재개발 싹쓸이를 원하는 사람이 없다. 지금도 제조업이 살아있는 곳이다.”

그녀가 성남시민에게 자주 듣는 말은 “너무 힘들다”, 그리고 “선거 이후 나 몰라라하지 말라” 이 두 마디다. “성호시장 분들이 그랬다. 성호시장 바꾸겠다고 말한 것만 30년이 넘었다고. 당장 뭘 바꾸겠다는 건 믿지 않는다며 시작만 해달라고 하시더라.” 은 의원은 강제이주로 성남에 정착한 시민들이 재개발에 의한 강제 이주를 두려워하고, 학부모들은 교육에 대한 고민이 많다고 말했다. “상대원1동 우리 집에서 아직 녹물이 나온다”며 주거환경 개선도 강조했다.

▲ 은수미 더불어민주당 국회의원. 사진=이치열 기자 truth710@
“악법을 막는 게 일의 전부가 아니다”

은수미 의원이 재선에 도전하는 이유는 명확했다. “큰 정치인이 되어 정치적 힘을 갖고 싶다. 세상을 바꾸고 싶어서다.” 은 의원은 “19대에선 정책적 전문성을 발휘했다고 생각한다. 세상을 바꾸려면 세력을 형성해야 하는데 그건 못했다. 정치를 반만 했다”고 자평했다. 그녀는 “정부의 노동악법은 저지할 수 있다. 하지만 악법을 막는 것보다 중요한 건 불평등을 없애고 공정한 세상을 만드는 것이다. 막는 게 일의 전부가 아니다. 허물어져 가는 집에서 사람이 죽는 건 막을 수 있다. 중요한 건 새로운 집을 지어주는 것이다”라고 강조했다.

19대 국회에선 ‘새 집’을 지어주지 못해 힘들었던 순간이 많았다. “삼성전자서비스 사장을 불러서 국정감사를 하고 있었는데 질의가 끝나고 삼성전자서비스 하청기사가 스스로 목숨을 끊었다는 문자를 받았다. 그 때는 정말 막막했다.” 그녀는 그 때 “의정활동이 사람들에게 희망을 주고 있는 걸까 자문하게 됐다”고 말했다. 쌍용차 대량해고 사태도 마찬가지였다. 인도 마힌드라까지 가보고, 보좌진이 말려도 쌍용차 질의를 밀어붙였지만 이제 간신히 몇 명 복직했다. “쌍용차 조합원 몇 명이 고맙다고 했지만 항상 미안한 마음”이라고 했다.

세월호 참사 당시에는 의원직을 던지고 싶었다고 했다. 무력감 때문이었다. “세월호 사건을 거치면서 폐렴에 걸렸다. 그 당시 단식을 했다. 단식이라도 안 했다면 (심리적)탈출구가 있었을까 싶다.” 그녀의 결론은 “의원 그만 둘 자신 있으면 정치를 하자는 결심”이었다. “경험적 두려움, 경험적 공포는 살갗 밑에 쌓인다. 세월호도 그렇다. 아이가 죽은 경험은 없어지지 않을 것이다. 나도 고문 경험, 무력한 경험…이런 것들이 살갗 밑에 쌓였다. 힘들고 두렵지만 용기를 내야 한다. 매일 아침마다 ‘두려워하지 마, 너보다 훨씬 고통 받는 사람들이 있어’라고 스스로에게 말한다.” 그녀가 요즘 미친 듯이 지역구를 누비는 이유다.

▲ 2013년 12월 국회청소노동자 직접고용촉구 기자회견 당시 은수미 의원(맨 오른쪽). 사진=이치열 기자 truth710@
“세상이 나를 크게 써줬으면 좋겠다”

은수미 의원은 군인의 딸로 남부럽지 않게 자라 서울대 사회학과에 입학한 엘리트였다. 그러나 노동운동에 투신했다. 구로공단 봉제공장에서 1년6개월 간 ‘봉희’라는 이름으로 살았다. 봉희의 삶은 오늘날 정치인 은수미의 자양분이 됐다. 사회주의노동자동맹(사노맹) 사건으로 수감된 강릉교도소에선 구더기가 나오는 변기 옆에서 밥을 먹고 살았다. 구로공단에서, 강릉교도소에서, 은수미는 노동자와 제소자를 대표해 임금인상·노동환경 개선·하루 한 번 목욕 등을 인권개선을 요구했다. “내가 아픔을 이겨내는 방식은 그분들을 대신해 행동하는 것뿐이다. 사람이 아픈 게 싫다. 주변사람이 행복해야 나도 행복하다”는 이유가 용기의 원천이었다. 그녀가 “세상이 나를 크게 써줬으면 좋겠다”고 말한 배경도 여기 있다.

20대 국회에서도 그녀의 관심사는 ‘노동’이다. 우선 노동조합과 노동자를 압박하는 손해배상소송과 가압류를 금지하는 ‘노란봉투법’ 입법과 재벌개혁 일환으로 최고경영자(CEO)등 고위임원에 대한 최고임금제 도입을 시급한 과제로 보고 있다. 은 의원은 “경영자들은 지금 수십억씩 연봉으로 가져가고 있는데 최저임금과 중위소득자 임금이 높아지면 경영자 임금도 높아지는 구조가 필요하다”고 강조했다.

20대 국회에선 법인세법 개정안과 실직자·구직자에 대한 사회적 안전망 확충도 은 의원의 주요 과제다. 법인세법 개정안은 대기업 사내유보금을 투자로 돌려, 일자리와 근로자 임금을 늘리게 하겠다는 취지로 기업이 사내유보금을 통해 자산운용을 할 경우 이를 기업 활동 소득과 분리해 38%의 높은 세율을 물리는 법안이다. 해고나 실직으로 고통 받을 때 사회적 안전망을 확충하는 법안도 중요하다. 은 의원은 “청년구직자들이 제대로 된 일자리 경력이 없어도 6개월간 월 40만~50만 원을 받으며 직업훈련을 할 수 있게끔 도와줘야 한다. 청년들에게 우선 실시한 뒤 자영업자 등 전 국민에게 확대해나가야 한다”고 밝혔다.

그러나 당장 주류 언론부터 노동 이슈를 외면하거나 ‘쉬운 해고’를 ‘청년일자리 창출’로 왜곡하고 있다. 은 의원은 19대 국회를 거치며 주류 언론에 대한 기대를 일찌감치 접은 눈치였다. “SNS(소셜네트워크서비스)가 없었으면 나는 정치 못했다. SNS에서는 나에 대한 언급량이 높다고 하는데 주요 언론에선 거의 언급되지 않았다. 재벌문제와 노동문제를 주로 언급한 탓이라고 생각하고 있다.”

그녀는 하나의 사례를 들려줬다. “과거 한 대기업의 유해물질 문제를 폭로했는데 진보성향 신문에서도 이 내용이 사회면으로 작게 실린 적이 있다. 내가 너무 힘이 없는 탓이라 생각하고 재선이 되고 볼 일이라 생각하고 있다.(웃음)” 그녀는 “선배들은 언론을 통해 유명해지려면 재벌구조를 건드리지 말고 재벌의 혼외자식 같은 큰 거 한방을 터뜨리라고 조언 하더라”고 말하며 웃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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