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 최고의 예능이란 수식어가 붙는 MBC ‘무한도전’이 23일 10주년을 맞는다. 2005년 4월 23일 황소와의 줄다리기로 시작한 ‘무모한 도전’이 여기까지 올 줄은 김태호PD도, 유재석도, 시청자도 몰랐다.

무한도전은 MBC의 대표프로그램이자 방송광고시장의 대표프로그램이다. 코바코 관계자는 “구매력 있는 20-49 타깃시청률이 지상파 프로그램 중 최고수준이고 프로그램 몰입도 역시 늘 상위권이다. 성수기에는 무한도전 광고 하나당 2억5000만~3억원까지 치솟는 경우도 있다”고 말했다. 무한도전은 MBC를 먹여 살리고, 지상파의 건재함을 드러내는 상징적 콘텐츠다. 

무엇이 무한도전을 대체 불가능한 위상으로 만들었을까. 무한도전은 우리가 일상에서 느꼈던 희로애락의 감정을 아이템·캐릭터·스토리·자막 등으로 풀어냈다. 예능프로그램이 말초적 재미 외에도 사회적 공감을 지향했다. △봅슬레이 특집 △WM7 레슬링 특집 △조정 특집 등 장기기획에 담긴 휴머니즘과 △돈가방을 갖고 튀어라 △여드름브레이크 △술래잡기 같은 추격전의 짜임새를 넘어서는 무한도전의 강점은 ‘현실참여’였다. 

   
▲ MBC '무한도전'이 24일로 방송 10주년을 맞았다.
 

2009년 ‘여드름 브레이크’편에서는 멤버들의 미션 장소로 서울 지역 곳곳의 재개발 지역을 선정해 이명박정부의 재개발정책을 환기시키고 시청자에게 난개발의 황망함을 상기시켰다. 2011년 12월 종합편성채널 4사의 개국 직전 방송된 ‘TV전쟁’편 역시 동시에 개국한 7개의 방송국이 생존을 위해 상대 방송을 종파시키는 추격전을 벌이며 방송시장의 무한경쟁 체제를 은유적으로 풀어냈다. 

2008년 초 무한도전은 ‘반장선거’ 편을 통해 우회적으로 대선결과를 풍자했다. ‘실용주의 개그’를 주장하며 기호2번으로 당선된 박명수는 과거의 권력자인 유재석에게 폭력을 휘둘렀고, ‘허무하게…새 시대는 이렇게 오나?’란 자막이 달렸다. ‘코리안 돌+아이 콘테스트’ 편에서는 이명박 대통령을 닮은 일반인을 ‘돌+아이’로 선정하는 파격을 선보이기도 했다. 2008년에는 광우병 논란을 패러디하는 자막도 자주 등장했다. 당시 이명박정부에 대한 사회적 여론을 반영하는 ‘시청자와의 소통의지’였다.  

2009년 말 방영된 ‘갱스오브뉴욕’ 편에선 고(故) 노무현 대통령을 떠올리게 하는 장면도 연출됐다. ‘5년간 활약했던 보스가 사망했다’는 설정부터 멤버들이 노란 넥타이를 달고 있어서였다. 2011년 말에는 박근혜 대선후보를 띄워줬던 TV조선을 겨냥해 ‘형광등 100개를 켜놓은 듯한 미모’라는 자막을 사용했다. 시청자는 현실과 예능이 절묘하게 만나는 지점에서 카타르시스를 느꼈다. 

   
▲ MBC '무한도전'의 한 장면.
 

무한도전은 사회적 참사의 치유에 동참하기도 했다. 세월호 참사 이후였던 2014년 5월 5일 방송에서 유재석은 ‘선택 2014’ 특집에 리더 후보로 등장해 “위기인데도 불구하고 위기인 것을 모르는 것이 진짜 위기다. 그것보다 더 큰 위기는 위기인걸 알면서도 아무것도 하지 않는 것이다. 그리고 아무것도 하지 않으면서 나 혼자 살려는 것, 바로 그것이 우리에게 닥친 가장 큰 재앙이다”라고 말했다. 수천 건의 기사보다 강렬했던 한마디였다. 

2007년 삼성 유조선의 태안기름유출사고로 서해안 생태계가 파괴됐을 당시엔 멤버들이 태안 사고현장을 찾아 복구현장을 함께하고 도서관을 짓기도 했다. 2014년 레이싱 특집 때는 사회적소수자들의 목소리를 담은 광고를 차량에 부착하며 눈길을 끌었다. 2015년 어린이집 보육교사의 유아 폭행사건 이후에는 멤버들이 일일 보육교사가 되어 보육노동자들에 대한 사회적 여론 전환에 나섰다. 

무한도전은 “그 어떤 방식보다 효과적인 선거체험 교육”(김교석 대중문화평론가)을 선보이기도 했다. ‘선택 2014’편 리더 후보였던 정형돈은 “이 사회의 절대다수는 평범한 사람들이다. 한 사람의 카리스마, 한 사람의 현란한 말솜씨가 아닌 절대 다수가 세상을 바꿀 수 있는 기회를 주시기 바란다”고 말했다. 6·4지방선거를 앞두고 예능이 시민의 민주주의적 감수성을 깨우는 놀라운 순간이었다. 

   
▲ MBC '무한도전'의 선택2014특집 편.
 

이런 무한도전이었기에 지난 10년간 굴곡도 많았다. 방송통신심의위원회로부터 표적심의 논란이 일만큼 잦은 심의를 받았다. 하지만 ‘품위 유지’ 자막이나 “착하지만 모자란 형”과 같은 유행어 제조로 받아쳤다. 유재석은 2011년 MBC방송연예대상 시상식에서 “방통위(방통심의위)에 계신 위원님들에게도 큰 웃음을 드릴 수 있게 노력 하겠다”고 수상소감을 밝혔다. 무도다운 방식이었다. 

무한도전은 2010년과 2012년 공정방송을 위한 전국언론노조 MBC본부 파업으로 무려 8개월간 결방되며 최대 위기를 겪었다. 닐슨코리아에 따르면 2011년 1월부터 파업 직전인 2012년 1월까지 무한도전은 월 평균 16.6%의 시청률을 나타냈지만 파업 이후 재방송을 내보내면서 9.8%(2월)→6.9%(3월)→6.0%(4월)→5.0%(5월)→4.8%(6월)로 김재철 MBC사장의 평판처럼 추락했다. 하지만 제작진은 시청자에게 떳떳하게 돌아가기 위해 인내했다.

이런 ‘무도정신’은 역설적으로 무한도전과 유재석을 통해 한국사회의 상식과 올바른 리더십을 소비하는 기이한 현상을 낳기도 했다. 이는 무한도전에 대한 시청자들의 엄격한 도덕적 잣대에서 확인할 수 있다. 김태호 PD의 경우 노홍철의 하차 · 식스맨 특집 등 프로그램을 둘러싼 논란부터 후배 권성민 PD의 해고까지 피로감이 남다른 상황이다. 하지만 무한도전은 지상파 플랫폼이 무너지는 상황에서도 ‘토토가’ 편으로 시청률 22.2%(닐슨코리아, 전국기준)를 기록하는 등 여전히 인기를 얻고 있다. 

유재석은 “무도는 내 인생을 바꿔준 프로그램”이라며 여전히 수목금을 비워둔다. 어느덧 10년을 함께 해온 멤버들과 제작진 간의 신뢰는 무한도전을 지탱하는 힘의 원천이다. 가장 무도다운 방식, 10년을 이어온 그 힘은, 땀과 열정이다. 김태호PD는 MBC 다큐멘터리 <토요일 토요일은 무도다>에서 “앞으로 또 많은 논란과 위기가 있겠지만 보란 듯이 떨쳐내고 이겨 내겠다”고 말했다. 

유재석은 200회 특집에서 “1년에 걸친 장기 프로젝트를 준비하고, 사진을 찍어 기부하는 일들이 예능프로그램의 일이 아니라고 생각하는 순간 아무것도 새로워질 건 없다”며 “우리는 믿는다, 끊임없이 도전하는 사람만이 새로운 것을 만들 수 있다는 것을” 이란 명대사를 남긴바 있다. 김태호 PD는 2014년 3월 26일 모 대학 특강에서 무한도전을 두고 “10년째에 멋있게 콘서트하면서 퇴장하는 모습을 그리고 있다”고 말했다. 그들의 멋진 퇴장을 기대한다. 무한도전은 올해 연말에 우주여행 특집을 기획하고 있다.

저작권자 © 미디어오늘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